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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선원 <안거방함록(安居芳啣錄)>은 선학원의 설립정신을 확립하고 체계화하고자 했던 청정 수좌들의 의지와 선종부흥의 면모를 보여주는 자료다.”
4월 7일 서울 정법사에서 열린 한국불교선리연구원(원장 법진) 제1차 월례발표회에서 ‘선학원 중앙선원 <안거방함록>과 선종부흥’을 발표한 법진 스님은 1997년 발견된 <안거방함록>을 최초로 공개하고 이 같이 주장했다. 방함록(芳啣錄)은 결제 기간 중 선원에서 안거하는 선승들의 법명과 성명, 본사 등을 적어 두는 명단을 말한다.
<안거방함록>은 97년 선학원 중앙선원 3층 법당에서 발견된 2권의 책을 일컫는다. 1권에는 1934년 동안거부터 1942년 동안거까지, 2권에는 1942년 하안거부터 1967년 하안거까지의 안거 참여자와 소임자가 수록되어 있다.
<안거방함록>이 특히 주목되는 점은 재가 여성 수행자의 명단이 출가수행승의 명단과 동일하게 기록되어 있다는 점이다. 법진 스님이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1권에 기록된 안거 참여 대중은 수좌 302명, 재가여성 55명이며 2권에는 수좌 351명, 재가여성이 148명 동참했다. 하지만 부인선원의 안거는 1949년 동안거를 마지막으로 기록이 보이지 않으며, 한국전쟁 후에도 이어지지 않고 있다.
<안거방함록> 기록 기간 중 참여 대중수가 가장 많았던 때는 1934년 동안거와 35년 하안거, 동안거 기간인데 이때는 각각 선학원이 재단법인 조선불교선리참구원으로 인가를 받은 해(1934년)와 제3차 조선불교선종수좌대회가 열린 해다. 이후 안거 동참자 수는 점차 감소되다가 평균 15명으로 유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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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근거를 토대로 스님은 “<안거방함록>은 근현대 한국 불교계의 동향과 선종의 정체성과 중흥의 면모뿐만 아니라 실천수행의 지침까지도 파악할 수 있는 소중한 자료”임을 강조했다.
한편, 서재영 조계종 불학연구소 선임연구원이 논평에서 지적한 ‘결재 대중이 증가하지 않은 원인’에 대해서, 당시 방부를 들였던 인환 스님(前 동국대 교수)은 “중앙선원의 규모가 매우 작아 15명 정도가 생활하기에 적정했지만, 서울에 종무를 보러 온 스님들도 동참해 선방에는 늘 30~40명이 함께 수행했다”고 회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