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10.23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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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마리 봉황처럼 위풍당당 '위봉송'
(75)완주 위봉사
위봉사 전경

우리나라 고유의 소나무는 줄기가 붉은 적송이다. 나무줄기 윗부분을 이루는 가지와 잎이 달린 모양새를 ‘수관(樹冠)’이라고 한다. 우리나라 적송도 지역에 따라 크게 여섯 종류로 수관이 나뉜다. 완주 위봉사(威鳳寺)를 중심으로 전북 산악지역에 보이는 소나무는 ‘위봉형 소나무’라고 일컬어왔다. 이번에 두 차례에 걸친 위봉사 조사도 자연 위봉송에 초점이 맞추어졌다.

위봉사는 고려 때 최용각(崔龍角) 거사가 창건한 것으로 보인다. 그는 신라 말에 완주지역으로 이주해온 경주 최씨 후손으로, 묘소와 재실이 위봉사에서 지척인 대아리에 있다. ‘위봉사’라는 이름은 최 거사가 세 마리의 봉황새가 맴돌고 있는 것을 보고 지었다고 전한다. 봉황은 고려 말에 두각을 나타낸 그의 세 아들을 가리킨다. 따라서 위봉사는 최씨 문중의 원찰로 초창되었을 개연성이 크다.

완주 송광사를 돌아보고 위봉사로 가다보면 고갯마루에서 위봉산성을 만난다. 풍패지향인 전주를 지키고 전주사고(史庫)의 실록과 태조의 영정을 옮겨와 보전하기 위해 임진왜란 이후에 쌓은 전주의 나성(羅城)이다.

위봉사 옛 사진

산성에서 보면, 위봉사 뒤로 추줄산이 가부좌를 틀고 있다. 가파를 ‘추’, 험난할 ‘줄’, 산 이름이 주는 의미와는 달리 산은 해발 524미터에 불과하다. 하지만 그 이름이 걸맞게 느껴지는 것은 추줄산을 시작으로 전북의 오지들이 이어지고, 백두대간 장안산(1230미터)에서 갈려진 금남정맥이 북으로 뻗어나기 때문이다.

실망스러운 것은 추줄산을 덮고 있는 나무들이 대부분 활엽수라는 사실이다. 위봉사 뒤에 자리한 한 뼘 정도의 푸른 솔밭도 전통의 위봉송(威鳳松)이 아니라 왜송(倭松)이라 불리는 리기다 소나무들이다. 눈을 의심하며 다시 살펴보았더니 위봉송으로 짐작되는 적송 몇 그루가 왼쪽 삼성각 뒤와 오른쪽 나한전 뒤에 서 있었다. 반갑고 그리운 마음에 단숨에 절로 내달렸다.

위봉사 사역(寺域)은 일주문과 담장을 경계로 경내외 두 구역으로 나누어진다. 위봉사 생태모니터링도 일주문 경내와 바깥의 좌우 청룡백호 구간을 조사하였다.

일주문-천왕문-봉서루를 이어주는 진입로 좌우로 조경공간이 있는데, 일본에서 들어온 베니철쭉을 비롯하여 남천, 라일락, 두충나무, 중국단풍, 노무라단풍 등 외래종이 눈에 많이 띄어 아쉽다. 수종 뿐 아니라, 사전에 설계 없이 심은 듯 배식도 어지럽고, 식재 밀도도 매우 높다.

목본 하층에도 서양민들레, 개망초, 소리쟁이, 광대나물, 개쑥갓, 망초 등 귀화식물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어서 안타깝다. 우리 야생화로는 개쑥부쟁이 한 포기가 봉서루 석축으로 도망가서 틈 사이에 뿌리를 내리고 있다.

완주 위봉사 위봉형 소나무

봉서루 누하의 어두운 계단을 오르면 넓은 마당 가운데 노송 한 그루가 청일점으로 자리하고 있다. 경내의 마당 조경으로 심은 나무들로는 소나무, 배롱나무, 은행나무, 매화, 목련, 처진올벚나무, 능소화 등이 있다. 아까 삼문 구간의 조경은 너무 답답해 숨이 막힐 지경인데 비해, 경내 마당의 조경수들은 소가 닭 보듯 서로 정감 없이 여기저기 흩어져 산만하기 그지없다.

관음전에는 해강 김규진의 글씨와 죽농 서동균이 친 난초가 있는 편액이 걸려 있다. 범종루 네 기둥에는 개구리, 물고기, 거북 등 물과 관련된 조각이 새겨져 있다. 화재를 막기 위한 벽사의 의미로 새긴 것이다.

위봉사는 다른 절에 비해 소방시설이 잘 갖추어져 있어서 인상적이다. 대광명전 옆에 비치된 소화전은 방화수를 공급하고, 방화사(防火沙)는 방화수로는 진화가 잘 되지 않는 화재 때, 소화기는 초기의 진화에 적당한 도구이다.

관음전 내원을 지나 삼성각으로 오르는 계단에 줄사철이 푸른색을 자랑하고, 삼성각 앞엔 옷을 다 벗은 배롱나무가 누드로 서 있다. 삼성각 주위로 키 큰 리기다들이 작은 군락을 이루고 있는데, 거기 위봉송 몇 그루가 섞여 있다. 나한전 뒷산자락에 서 있는 위봉송은 수관이 제법 의젓해서 위봉의 원형을 많이 닮아있다.

완주 위봉사 소나무와 전경

우리나라 소나무의 수관 형태는 지역적 차이, 개체변이, 생장속도 등에 따라 동북형, 금강형, 중남부평지형, 중남부고지형, 위봉형 등 6개형으로 구분한다. 위봉송은 수관이 좁고 줄기생장이 다소 저조하지만, 수형이 전나무를 닮아서 곧고 멋지다.

하지만 안타까운 것은 80년 전에 그득했던 위봉송이 위봉사 주변에서조차 거의 사라져 버렸다는 사실이다. 현재 위봉사 주변은 활엽수와 외래종 소나무가 판을 치고 있다. 활엽수림 사이에 듬성듬성 자리하고 있는 소나무들은 위봉송이 아니라 위봉사 마당에 있는 노송의 후계들로 보인다. 6. 25로 폐사 직전에 처한 위봉사를 원력으로 살려냈듯이 이제 위봉송 복원에 원력을 쏟을 때가 아닌가 싶다. 자연천이도 중요하지만, 문화역사보존지구의 숲은 생태계획 아래 복원되어야 마땅할 것이다.

관음전 뒤쪽 출입문을 나서면 2백여 미터 가량 포행하기 좋은 숲길이 나 있다. 식재된 잣나무 군락 빼고는 거의가 당단풍, 산벚나무, 들메나무, 갈참나무, 졸참나무, 감태나무 등 활엽수들로 덮여 있는데, 여기저기 간벌한 흔적도 있다.

일본산 베니철쭉

전설에 따르면, 위봉사 창건주인 최 거사가 절터를 찾기 위해 등나무 덩굴을 잡고 위봉산에 올랐다고 했는데, 어딜 돌아보아도 등나무는 눈에 보이질 않는다. 등나무 대신 다래나무가 한 두 줄기 보일 뿐이다.

위로는 위봉사의 상수원구역으로 철조망들이 덫처럼 어지럽게 얽혀 있다. 왼쪽 아래로 계곡이 흐르고 있는데, 수량이나 규모로 보아 계류급이다. 햇볕이 투영된 맑은 소에는 버들치들이 낮놀이를 하고 있다.

공양간 뒤로 난 출입문을 나서면 숲길이 나 있다. 관음전 뒤로 난 숲과는 조금 다른 모습이다. 참나무류로는 갈참나무, 졸참나무, 밤나무 등이 있다. 그 밖의 활엽수로는 다릅나무, 서어나무, 산벚나무, 쥐똥나무, 때죽나무, 느티나무, 생강나무, 들메나무, 물푸레나무, 팥배나무, 대나무 등이 주종을 보인다. 멀리서 보면 회색빛 활엽수 바다에 한 점 파란 쪽배처럼 소나무들이 아주 드물게 서 있다. 수령은 20년 안팎이다.

다릅나무=강영란 촬영
다릅나무는 높이 15미터에 줄기 지름이 1미터까지 자라는 큰키나무이지만, 이곳에서 관찰되는 다릅나무는 5미터 남짓한 어린 나무이다. 아까시나무와 비슷해서 나무껍질은 적갈색이다. 숲 바닥에는 노루발풀, 까실쑥부쟁이, 산괴불주머니, 양지꽃, 점나도나물 등이 파란 잎사귀를 여전히 지니고 있다.

위봉사 주변 숲은 생태적으로 이렇다 할 매력이 없다. 눈에 띄는 수종도 없고, 기억해둘 만한 큰 나무도 없고, 그냥 밋밋하다. 비록 겨울 숲이라 할지라도 숲에 들면 느낌이라는 게 있기 마련인데 위봉사 숲은 그게 아니다. 나무들이 빽빽하면서도 삭막하고, 삭막하면서도 어지럽고 답답하다.

위봉산성 서문께에서 성곽길을 따라 추줄산 정상으로 임도가 나 있다. 크고 작은 봉우리를 잇는 능선길 임도를 걷다보면 오른쪽 산자락 아래로 위봉사 사역이 내려다보이고 군데군데 허물어진 성곽도 눈에 들어온다.

이 지역의 출현하는 식물들은 사면(斜面)에 따라 약간 다르게 나타난다. 중복 아래에서는 상수리나무, 졸참나무가 우점하고, 중복 위 능선 부근에서는 떡갈나무, 굴참나무, 신갈나무, 산벚나무 등이 주요 수종으로 나타난다. 수령들은 20년 미만으로 모두 고만고만해서 그 무렵해서 산불이 있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말똥가리=원우 스님 촬영

말똥가리가 숲 위 허공중에 맴돌고 있다. 말똥가리는 잡목림에서 서식하는 우리나라의 겨울철새로서 환경부에서 지정한 멸종위기종Ⅱ급에 해당하는 맹금류(猛禽類)이다. 산지가 가까운 습지나 하천이 가까운 농경지나 야산 지역에서 곧잘 관찰된다.

위봉사 주변에서 관찰된 조류로는 오색딱다구리, 쇠딱다구리가 보이고, 박새류로는 박새와 진박새와 곤줄박이가 관찰되었다. 노랑턱멧새와 딱새도 포르륵 날아다닌다. 그 밖에 까치, 멧비둘기, 직박구리가 보이고, 어디선가 꿩소리도 들린다.

추줄산과 이어진 운장산 일대에는 위봉사 스님이 등장하는 호랑이 전설이 전승되고 있다. 예전에는 그만큼 인적이 드물고 숲이 깊었다는 이야기이다. 지금 위봉사 숲속에는 맹수 대신 개의 배설물만 눈에 띈다. 사나운 개들은 야생동물에게 두려운 존재이다.
위봉사에서는 멧토끼가 들어와 뛰어놀고, 고라니가 들어와 헌식대의 과일을 주워 먹는 아름다운 산중 풍경은 기대하기 어렵다.
김재일 사찰생태연구소장 |
2007-03-27 오후 3: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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