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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6일, 중국 달마굴 앞.
9년 면벽 끝에 달마 스님과 혜가 스님의 조우가 이루어졌던 현장에서 한국 불자들은 1500년의 세월을 뛰어 넘어 달마 스님과 만났다. 3월 5일 한국을 출발한 불자들은 모두 60여명. 이들은 중앙신도회 산하 불교인재개발원이 마련한 초조 달마 스님부터 육조 헤능 스님의 발자취를 따라 온 이들이다. 선의 대중화와 사회화를 위해 기획된 육조단경 강좌에 함께 했던 이들도 있었고, 대구 보광선원에서 동안거를 회향하고 곧바로 참여한 이들도 있었다. 멀리 부산에서 결혼 33주년을 기념하며 동참한 부부도 있었다. 순례단에는 벌써 네 번째 중국의 선종사찰을 답사하며 ‘선종 사찰 전문 가이드(?)’를 자청한 고우 스님도 함께였다. 선의 사회화를 위해 육조단경, 금강경 강좌 등으로 바쁜 일정을 보내고 있는 고우 스님의 발걸음이 중국까지 이른 것이다.
선의 원류를 찾아 한국을 떠나온 지 이틀째였던 이날, 한국의 불자들은 팔 한쪽을 잘라 붉은 피로 신심(信心)과 구법(求法)의 붉은 심인(心印)을 새겼던 혜가로 다시 태어나고 있었다. 달마 스님의 기다림은 길었고 이곳을 찾은 한국 불자들의 순례길도 멀고 멀었다. 그러나 1500년과 한국과 중국이라는 시공(時空)은 문제되지 않았다. 어둡고 좁은 굴에 몸을 숨긴 달마 스님을 넓디넓은 중국 땅에서 혜가 스님이 찾아내었듯 구하고자 하는 이에겐 반드시 드러나고야 마는 것이 법의 현묘함이 아니던가! 주머니 속의 송곳이 주머니를 뚫고 나오듯 드러나고 마는 것이 법이요, 마음의 본질임을 달마굴 앞에서 깨닫는다. 아직도 끝나지 않은 달마 스님의 기다림을 온전히 느끼며.
달마굴을 나오던 한 불자는 이렇게 말했다. “내 마음이 불안하다고 그 불안을 해결해 달라고 하소연이라도 한번 해보고 싶었다. 그런데 막상 와보니 비바람이 들이치는 이렇게 좁은 곳에서 9년이나 앉아 제자를 기다렸다니 마음이 숙연해져서 불안한 마음이 오간 데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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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운기를 타고 한참을 달린 뒤 다시 가파른 계단을 걸어올라 도착한 달마굴에서 내려다보는 풍경은 장관이다. 오른편으로 눈길을 주면 혜가 스님이 머물렀던 이조암이 가늠되고 눈길을 아래로 던지면 일조암이 아늑하게 자리하고 있다. 좁은 길이 고불고불 달마굴로 이어지고 그 길을 걸었을 혜가 스님이 눈에 그려지는 듯하다.
마음의 본질을 찾아 나선 일행을 반긴 것은 중국 들판에 만개한 노오란 유채꽃이었다. 스승 반야다라의 뜻을 받들어 동토(東土)에 선(禪)의 씨앗을 심었던 초조 달마 스님과 그 선맥(禪脈)을 이은 중국 선사들의 발자취를 좇아 나선 길, 그 길 위에 만발한 봄꽃은 너른 대륙에 선의 꽃을 피웠던 선사들의 전법게를 절로 떠오르게 해주었다.
인도의 27조 반야다라는 <마음에서 모든 종자가 생기고 인연의 일로 다시 이치가 난다. 과만하여 보리가 원만해지니 꽃이 피어 세계를 일으키도다.>라는 전법게로 달마 스님을 중국으로 떠나보냈다. ‘꽃이 피어 세계를 일으키리라’던 반야다라의 예언은 그대로 실현됐다. 이어 인도 28조이자 중국 선의 초조인 달마 스님은 다시 혜가 스님에게 <내가 본래 이 땅에 온 것은 법을 전해 어리석은 이를 제도하려는 것이다. 한 송이의 꽃에 다섯 꽃잎이니 열매는 자연히 이루어지리라.>라는 전법게로 혜가, 승찬, 도신, 홍인, 혜능의 다섯 제자로 이어져 선의 열매가 맺힐 것을 미리 내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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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례단은 달마 스님과 다섯 꽃잎이 피고 졌던 자리를 따라 이어지는 길 위에 서 있었다. 첫날 석가장에 도착, 임제 스님의 주석사인 임제사와 조주선사 주석사인 백림선사를 둘러본 불자들의 순례길은 남쪽으로 향했다. 등봉, 정주, 숭산을 거쳐 신양에 이른 순례길에서 소림사와 달마굴, 일조암, 이조암을 참배했고, 당나라 시대 스님들의 부도탑인 탑림을 지나는 대장정이 시작됐다.
3일째 삼조사인 산곡사를 향했던 일행 앞에 뜻밖의 헤프닝이 일어났다. 삼조사 주지인 관용 스님을 비롯한 스님과 재가불자들이 환영식을 준비한 것이다. 이것을 본 고우 스님이 장삼을 벗으려 했다. 일순간 일행들은 술렁이기 시작했고 문경 대승사 철산 스님, 양산 조계암 상현 스님의 만류로 결국 고우스님이 참석하지 않은 채 환영식은 진행됐다. 이날 순례단의 마음에 거친 파도가 일었다. 웬만한 경계에는 흔들림이 없던 일행들도 이날 주지 관용 스님과의 차담 시간에 오갔던 철산 스님의 선문답에 마음자락이 걸리기도 했다.
“주지 스님이 환영식을 준비했으니 그냥 응해주면 될 것을 왜 저리시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는 최일덕 불자는 다음 날 고우스님의 설명을 듣고 마음의 불편함을 내려놓을 수 있었다. 천주산으로 향했던 4일째 일정 중 사조사 전법동에 앉아 짧은 참선시간을 갖기 전 고우 스님은 전날의 일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선은 본래 우리 마음의 본질인데 이렇게 땀 흘리며 중국까지 와서도 형식에 얽매여서야 되겠나 싶어 내 진짜 가사 한번 보여주려고 그랬지.” 불자들의 내면 깊은 곳에 울림으로 전해진 말이었다.
철산 스님의 손뼉 소리로 시작된 참선이 고요하게 이어졌다. 혜가 스님의 불안한 마음, 승찬 스님의 죄, 도신 스님의 속박된 마음이 스승과의 만남으로 일순간에 사라졌듯 ‘내가 있다’는 착각에서 비롯된 불안, 죄, 구속감의 마음에서 풀려나는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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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조사를 거쳐 육조사에서 이르러서 순례는 절정에 달했다. 중국에서도 가장 선풍이 많이 남아있는 남화선사에서는 혜능 스님의 진신불을 대하며 적지 않는 충격에 휩싸이기도 했다. “아직도 생생하게 살아 숨 쉬는 것 같다”며 놀라움을 금치 못한 한 불자는 “생과 사의 구분이 사라지는 경계를 드러낸 진신불을 참배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순례”라고 했다.
가는 곳마다 고우 스님의 주제가 있는 법문이 있어 이번 순례는 더욱 뜻 깊었다. 불안, 죄, 구속감 등 삶의 근원적인 문제에 대한 주제로 이어지던 법문이 남화선사에서는 ‘지혜’로 갈무리되고 있었다.
“구름이 걷히고 해가 나는 것이 지혜다. 없던 것이 생기는 것이 아니고 듣고 보는 이것을 벗어나서 있는 것도 아니다. 내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되면 반야는 드러나게 돼 있다.”
6박 7일 동안 중국 땅이 넓다는 실감을 톡톡히 한 순례였다. 6-7시간 이동은 보통이고 어떤 날은 12시간 버스로 이동을 감행해야 했을 만큼 빡빡한 일정이었다. 밤 12시를 넘기는 것은 예사고, 새벽 5시에 피곤한 몸을 일으켜야 하는 고단함도 마음의 본질을 찾고야 말겠다는 구법의지를 꺾진 못했다.
“선의 본류를 돌아보며 다시 발심하는 시간이 됐다”고 입을 모은 불자들은 “초조부터 육조까지의 도량을 돌아보며 뚜렷한 답을 찾지 못했지만 깨달음을 밖에서 구하지 않고 내 안에서 찾아야만 한다는 다짐을 새롭게 하게 됐다”고 말했다.
비가 추적추적 내린 3월 11일 아침, 혜능 스님의 출가 사찰인 광효사를 둘러보는 순례단의 마음에는 ‘돌아감’이 자리하고 있었다. 떠나온 곳으로 돌아가는 것, 그것이 진정한 회광반조(回光返照)이며 내면에서 시작돼야 할 순례길이다. 7일간의 순례길이 떠나옴과 돌아감이 둘이 아닌 ‘그 자리’로 회향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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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마, 혜가, 승찬, 도신, 홍인, 혜능 스님의 발자취를 더듬어 가는 것은 조사 스님들의 경지를 볼 수 있는 기회를 얻을까 함이고, 또 볼 수 없다 하여도 신심을 돋우고 발심해서 공부에 더 매진하기 위해서입니다.”
네 번째 중국 선종 사찰 답사에 나서 각 조사들의 수행이력, 전법 일화 등을 곁들인 주제가 있는 법문으로 순례단을 이끈 고우 스님은 “이번 순례가 선의 발자취가 허구가 아닌 실재임을 확인하면서 선의 가치를 깊이 느끼는 계기로 작용했으리라고 확신한다”고 강조했다.
스님은 “선은 어떻게 사는 것이 잘 사는 것인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지 방향을 제시해준다”며 “이번 순례로 개인의 수행을 보다 알뜰하게 하고 선을 사회화해서 우리 사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는데 일조를 하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또한 스님은 “선의 사회화는 멀고 거창한데 있는 것이 아니라 나부터 ‘내’가 있다는 착각에서 벗어나 존재원리를 바로 알아야 하고 그것을 내 가까운 이에게 전하는 것”이라며 선을 멀고 어렵게 느끼는 선입견을 무너뜨리고 일상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