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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계종 종정 법전 스님 재추대
원로회의에서 결의
법전 스님

조계종 종정에 법전 스님이 재추대됐다.

조계종 원로회의(의장 종산)는 3월 14일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 4층 회의실에서 제12대 종정추대회의를 열고 현 종정 법전 스님을 재추대하기로 결의했다.

세수 82세, 법랍 68년의 도림법전(道林法傳) 스님은 1926년 전남 함평에서 출생, 39년 영광 불갑사에서 설제 스님을 은사로 출가해 사미계를 수지했고, 49년 성철ㆍ청담 스님과 함께 봉암사 결사에 참여한 이래 제방의 선원에서 50안거 이상을 성만했다. 스님은 85년부터 해인사에 주석해 왔으며, 96년 해인총림 방장, 2000년 원로회의 의장을 맡았다.

비공개로 진행된 추대회의 후 조계종 기획실장 승원 스님은 “나라가 어려운 시기에 현 종정 스님이 재추대된 것은 다행이고 큰 복이라고 생각한다. 혼탁한 시대에 바른 가르침으로 올바른 길을 제시할 수 있는 어른이 재추대됐다는 것이 기쁘고 기대가 크다”고 밝혔다.

또 이날 추대회의가 2시간 이상 진행된 것에 “시간 많이 걸린 것은 어떤 방법으로 추대할 것인가 때문이었다”고 설명했다.

이와 관련 박희승 기획차장은 “회의 한 시간 정도는 직접 뜻을 밝힐 것인가 아니면 전례와 같이 전형위원회를 구성해 후보 추천권을 부여해서 추천된 후보에 대해 대중의 뜻을 물을 것인가에 대해 논의했다. 결국 합의로 전형위원 7명을 구성해 2명 후보를 추천 받아 압도적인 지지로 현 종정 스님을 재추대하기로 결론났다”고 덧붙였다.

이날 회의에는 종산 지혜 보성 도원 지종 활안 녹원 원명 이두 천운 동춘 진제 초우 혜정 고산 스님 등 15명의 원로의원스님과 총무원장 지관, 호계원장 법등, 중앙종회의장 자승 스님 등 총 18명이 참석했다.

다음은 현대불교신문에 실린 법전 스님의 법문.

454호[2004-01-01] 새해맞이 특별법석-조계종 종정 법전 스님

크게 발심하고 의심없이 정진하라

▲질문: 큰스님을 선객들은 절구통 수좌라 부르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평생 어떻게 수행하셨는지, 그간에 특히 기억에 남는 수행담이 있다면 무엇인지 말씀해 주십시요.

▲법전 스님: 나는 14살에 출가하여 17살에 수계를 했어. 이후 절에서 허드렛일이나 하면서 시간을 보내다 23살부터 강원을 거쳐 선방에서 수행을 하게 되었지. 그럭저럭 강원에서 문자를 깨치고, 선방을 거쳐 남들이 하는 이력을 마치게 되었지만 강원을 마친 이후는 죽 참선수행에 몰두해 왔어.

지금까지 가장 기억에 남는 수행이라면 아무래도 경북 문경군에 있는 사불산 상원사의 작은 암자인 묘적암에서 수행할 때일꺼야. 그때 33살로 기억하는데 갑자기 조급한 마음이 들기 시작했어. 이 나이 되도록 아직도 본래면목을 밝히지 못하고 밥만 축냈다고 생각하니까 밥통이 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조급함이야. 그래서 할일을 마치지 못하면 안 되겠다는 생각을 했어. 부모형제를 떠나 출가했는데 그때까지 입으로만 수행을 했다는 강한 회의감이 나를 짙누르고 있었던 거야. 그래서 어디가서 일대사를 해결할까 하고 인연처를 찾다가 고려말의 유명한 고승인 나옹 혜근 스님이 삭발한 상원사로 가야겠다고 생각을 했지.

당시 상원사 묘적암은 빈한하기 짝이 없었어. 그나마 칠성각을 보호하는 47명의 계원들이 있어서 근근히 명맥을 유지하고 있었지. 인근의 아낙들이 쌀자루를 이고 와서 기도를 하고 가는 것이 전부였어. 내가 그곳에서 정진을 하려는데 이들이 오면 방해가 될 것 같아. 그래서 당도하자마자 절문을 닫아버렸어. 칠성불공을 해줄 수 없으니 오지 말라고 선언해 버렸지. 다행인 것은 그곳에 쌀 2가마가 있었어. 그것이면 충분하다고 판단했지. 저 쌀이 떨어질 때까지 할일을 마치지 못한다면 살아야 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어. 30이 넘도록 허송세월 했는데 다시 식충이 될 수 없다는 마음은 결연했지.

일절 딴 신경을 안 쓰고 화두 하나에 매달렸지. 낮에는 썩은 나무 베다 나르고, 장작 패는 것 이외에는 화두에 전념했어. 밥 짓는 시간이 아까워 한꺼번에 잔뜩 해서 시렁에 바쳐 놓고 삼베 보자기를 그 위에 덮어 두었어. 배가 고프면 그것을 맹물에 말아 먹는 거야. 반찬이란 김치 두 쪽으로 충분했어. 밥그릇도 씻지 않고, 세수나 면도, 목욕도 하지 않았어. 방에는 찬 기운만 돌지 않을 정도로 해놓고, 이불도 없이 날이 새는지 밤이 오는지도 잊고 화두에 빠져 들었지. 그렇게 석달여 용맹정진을 한 뒤 죽지 않고 산에서 내려왔어. 그것이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이야. 한 가지 덧붙이자면 세상사 모든 것이 마찬가지야. 남이 놀 때 놀지 않고, 남이 게으를 때 게으르지 않으면 올 것이 반드시 온다는 사실을 의심해선 안돼. 수행하지 않으면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없다는 사실을 명심해야해.

불교를 믿든 아니면 다른 종교를 믿든 종교적인 삶을 살고자 하는 사람은 모든 것을 신앙적으로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해. 어설픈 잔꾀나 술수로는 해결되는 것이 아니야. 여러분들을 위해 재미있는 일화를 하나 소개하지.

중국 송나라 시대에 양지라는 스님이 계셨어. 이 분은 양지파라는 일파를 만드는 대종사가 되었는데 처음에는 자명 선사를 모시고 40년간 원주라는 직무를 수행하고 있었어. 원주는 절에서 대중스님들을 위해 밥 짓고 빨래하고, 아픈 사람 수발들고 하는 일이야. 그런데 양지스님이 원주를 살았던 절에는 스님들이 4천여명 거주하고 있었다고 해. 보통 10여명이 사는 선원에서도 원주를 두 철정도 하면 도망가려고 할 정도로 힘든 일이야. 그런데 40년을 원주로 살았다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니지.

양지 스님은 자명 선사를 모시고 원주로 살은 40년간 단 하루로 빠지지 않고 아침마다 자명선사를 찾아가 문안 인사를 했는데 인사를 한 뒤에는 반드시 도가 무엇인지 물었어. 특이한 것은 양지 스님의 한결같은 질문에 자명 선사의 대답 역시 한결같았다는 사실이야. “이 사람아, 원주나 잘하게” 이것이 40년간 이어지 자명 선사의 대답이었어.

40년이 지난 어느 날 양지 스님은 인내력의 한계를 보이게 되지. 그날 아침에는 양지 스님이 자명 선사에게 강하게 항의를 했어. “스님께 법을 배우고자 40년간 원주를 살았는데 스님은 법문은 안 해주고 원주만 잘 하라고 합니다. 도대체 이유가 무엇입니까?” 이에 자명 선사는 이렇게 대답해. “이 사람, 난 자네에게 항상 법문을 해 주었는데 그것이 무슨 말인가?” 이 대목에서 양지 스님이 확철대오했다는 거야.

▲사실 이러한 이야기는 평상심이 도라는 중국선종의 핵심을 가르쳐 주는 대목이다. 도라는 것이 세간을 떠나 특별한 곳에 있는 것이 아니며, 또한 특별한 무엇이 아니라는 사실을 자기 것으로 만드는데 많은 시간이 필요했던 것이다. 그러면서 큰스님은 경책을 잊지 않으셨다. 불자들이 양지 스님처럼 흔들리지 않는 신심을 가져야 참 불자가 될 수 있다는 거다. 포교도 마찬가지란다. 책만 보고 말만 해서는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수행이 몸에 익고 그로 인해 인격이 갖추어져야 포교가 가능하다고 강조한다. 그러면서 조주 스님의 이야기를 이어간다. 조주 스님은 마조도일 스님의 제자인 남전보원 스님의 제자이다. 강원도 영월 법흥사에 신라말에 흥령선원을 개창한 철감 선사의 스승이 남전 스님이므로 우리나라 불교와 무관하지 않다.

▲법전 스님: 중국에서 조주 스님은 80이 넘어 중국 천하를 유람하며, 공부 잘하는 스님에겐 찾아가 배우고 공부가 부족한 스님들에겐 가르쳐 주지. 어느 날 투자산에 살고 있던 투자 대동 스님을 찾아갔어. 법을 듣기 위해서 였지. 투자스님은 기름 때 묻은 옷을 입고 조주 스님을 맞이했어. 투자 스님은 ‘하루 일하지 않으면 하루 먹지 않는다’는 선문의 법규에 따라 깨 농사를 지은 뒤 기름을 짜 팔아 생계를 꾸려가고 있었어. 장삼도 가사도 입지 않고, 다 떨어진 누더기 옷에 기름 냄새가 진동하는 옷을 입고 있었지만 전혀 의식하지 않았어. 조주 스님이 그런 투자 스님에게 공손하게 질문을 했어.

“사람이 죽음 가운데서도 살아날 수 있는 경우는 무엇입니까?”
“밤에는 다니지 말고, 날이 새면 다니는 겁니다”
여러분들의 생각은 어떠한가? 적어도 이 얘기를 들으면 참 진리가 무엇인지를 알 수 있어.

▲질문: 스님께선 최근 <<백천간두에서 한 걸움 더>>라는 법문집을 출간하셨습니다. 스님 <백척간두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간 그 경계의 소식은 무엇입니까?

▲법전 스님: 그런 경계는 말로 설명될 수 있는 것이 아니야. ‘백척간두에서 한 걸음 더’라는 것이 무슨 뜻이야? 더 이상 나갈 수 없는 곳에서 더 나간다는 소리는 떨어져 죽는다는 말과 같아. 그런데 그렇게 해야 진리의 세계를 볼 수 있다는 것이지. 그곳에 무슨 말과 수사가 필요하겠어. 그 자리가 바로 진리인데 그것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야. 나를 떠나 부처나 조사가 따로 있다면 그것은 불교가 아니야.

▲질문: 스님 사불산 묘적암에서 수행할 때 화두에 몰두했다고 하셨는데 어떤 화두를 들었는지 궁금합니다.

▲법전 스님: 조주 스님의 ‘무’자 화두를 들었지. 무자 화두는 우리나라 선문에서 가장 많이 사용한 화두라 말할 수 있어. 조계종의 중흥 조사 중의 한분인 고려말엽의 태고보우 스님은 처음에 “모든 존재는 하나로 돌아간다면 그 하나는 어디로 돌아가는가?”라는 화두를 참구하여 깨달음을 얻었다고 해. 뒤에 중국에 들어가 석옥청공 스님을 만나게 돼. 석옥청공 스님은 임제 스님의 법손으로 알려진 인물이야. 작은 움막같은 천호암에서 늘 혼자 자연을 벗 삼아 수행하고 살았어. 황제가 법문을 청해도 나가지 않았지. 그런데 태고보우 스님을 만나자 한 눈에 법기임을 알아보고 인가를 해버렸어. 그리고는 “오늘부터는 다리 뻗고 잘 수 있겠다. 내 법은 태고 스님에게 전한다”고 했지. 태고 스님은 종지를 확실하게 세우셨어. 그런 그분도 무자 화두를 통해 본래면목을 확인했던 거야.

▲질문: 역대 조사스님들 중에서 어느 스님을 가장 존경하시는지요?

▲법전 스님: 수많은 조사스님들이 계시고, 그분들 모두에 대해 흠모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지만 그래도 한분만 꼽으라면 조주 스님을 꼽을 수 있지.

▲질문: 저 역시 조주 스님을 존경합니다. 그래서 그분이 계시던 관음원(지금의 중국 하북성 조현에 있는 백림선사)을 찾아가 하루 밤을 묵으며 그분의 향취를 맡고자 했던 적도 있습니다. 스님을 뵙게 되면 “모든 존재가 하나로 돌아간다면 그 하나는 어디로 돌아가는가?(萬法歸一 一歸何處)”에 대해 여쭙고 싶었습니다. 가르쳐 주시기 바랍니다.

▲법전 스님: 그래 좋은 질문이군. 내 가르쳐 줄터이니 내 앞으로 나오시게.

▲질문자가 스님 앞으로 나가자 스님께선 엎드리라고 하고는 질문자의 등을 세 번 두드렸다. 알았는가? 하는 스님의 말씀에 질문자는 말없이 합장 예배하고 물러나 앉았다.

▲질문: 큰스님, 참 불자가 되는 길은 무엇인지요?

▲법전 스님: 21세기는 부처님처럼 존경 받으며 사는 것이 불자들이 해야 할 역할이야. 부처님처럼 존경받는다는 것은 그렇게 살고 싶다고 해서 쉽게 될 수 있는 일은 아니지. 부처님 말씀처럼 실천궁행하며 살 때 가능한 이야기야. 예컨대 복 많이 달라고 억만금을 싸들고 해인사 법당에 찾아와 불공을 한다고 해서 그것이 진정 참불자가 되는 것이고, 부처님에게 복을 받아 가는 것은 아니야. 내가 살고 있는 주변, 여러분들이 살고 있는 서울 시내 구석구석을 찾아다니며 남을 위해 봉사하고, 서럽고 외로운 사람, 병들고 힘없는 사람들을 위해 내 마음과 내 가진 것을 나누워 주는 것이 진정한 불공이지. 그런 삶을 산다면 그야말로 성불은 하지 못해도 참 불자라 부를 수는 있는 거야.

여러분들이 참 불자가 되는 길을 물었는데 그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야. 우선 참다운 수행을 하려고 노력해야 돼. 수행하면 반드시 그 결과가 있어. 힘들더라도 의심하지 말고 해봐. 서산 스님은 “차라리 한 평생 천치가 될지언정 속빈 강정은 되지 않으리라”는 말을 했어. 그것은 문자법사가 되느니 차라리 천치가 되겠다는 의미인데 수행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것이야. 수행이라면 절에서 해야지 어떻게 집이나 직장에서 할 수 있느냐고 반문하는 사람도 있어. 그렇지만 그것은 틀린 생각이야. 자신이 게으르고 마음이 없다는 것을 표명하는 것이지. 참다운 수행은 선방에서만 하는 것이 아니야. 집이든 직장이든 시장이든 어디서든 할 수 있는 것이야. 나는 6.25 사변 때 경험했어. 해인사에 살았는데 해인사를 가운데 두고 양쪽에서 총알과 박격포탄이 날아 다녔지. 그 속에서 참선했어. 참선이란 전쟁터 안에서도 할 수 있는 거야. 그렇지 않은 사람은 조용한 곳에서도 참선할 수 없어.

두 번째 참 불자가 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발심하는 일이야. 이것도 쉬운 일은 아니야. 그렇지만 마음먹기에 달린 것이지. 부처님께선 인생의 무상함을 느끼고 출가하여 인천의 스승이 되었지. 사무친 마음이 있었기에 뼈를 깎는 수행을 했어. 그런데 요즘은 폼으로 출가하는 것 같아. 남 보기 좋으라고 절에 가고, 남을 의식해 참선한단 말이야. 그것은 잘못된거야. 진정한 발심이 있어야 해. 자발적으로 신심이 우러나서 생사문제를 해결하겠다는 굳은 발심 말이야.

▲이상의 질문을 마치자 스님은 그 자리에 참석한 대중들을 위해 화두를 주시겠다고 했다. 흰 종이에 <조주어록>의 한 구절을 복사한 것이었다. 내용은 어느 스님이 조주스님에게 ‘개에게도 불성이 있느냐?’고 묻자 ‘없다(無)’고 대답하는 것이다. 바로 무자 화두의 내용이다. 그리고는 “내게 화두를 배우려면 3천배를 해야 하는데 오늘은 단체로 왔으니 외상으로 화두를 준다”고 하시고, 뒤에 반드시 3천배를 하라고 당부하시며 너털웃음을 웃으신다.

▲법전 스님: 조주 스님의 무자 화두를 주었는데 이것을 깨치면 수행도 포교도 잘할 수 있으며, 참 불자가 될 수 있다고 확신하지. 간절한 마음으로 공부해야 돼. 여러분 중에 부처님을 친견한 적 있는 사람 손들어 봐. 조주 스님의 무자 화두를 관통하면 부처님을 친견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자기의 진면목을 알 수 있게 돼. 공부 열심히들 해.
정리=차차석 상임논설위원


“자기 절복으로 국민을
섭수해야 진정한 화합”

▲이 땅은 갈등과 이해의 충돌 속에서 각자의 목청만 돋우고 있는 현실임을 숨길 수 없습니다. 그 이유는 견화경(見和敬) 이화경(利和敬)이 없는 까닭입니다. 견화경은 견해를 함께 하는 것이요, 이화경은 이익을 함께한다는 말입니다. 동견(同見)과 동리(同利)는 서로의 참음을 통하여 서로 화합하고 서로 공경함을 만들어내는 원천이 될 것입니다.

▲정치인은 자기절복(自己折伏)으로 모든 국민들을 섭수(攝受)하고 포용하여 갈등을 통합하고 원융정신으로 진정한 화합을 이루어내야만 그 역할을 제대로 하고 있는 것입니다. 정치인마저 하나의 이기집단으로 자기 목소리만을 낸 것이 현재의 모든 불화합의 근원임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고인이 말하길 항산(恒産)이어야 항심(恒心)이라고 했습니다. 결국 마음의 문제도 경제와 바로 연결된다는 말입니다. 경제회복을 꾀하되 성장과 분배의 올바른 원칙을 확립하여 국민들의 동의를 얻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빈부격차의 해소에 만전을 기하면서 그늘지고 소외된 계층을 함께 살핀다면 이 역시 화합의 또다른 방편이 될 것입니다. 정부가 국민을 받들면 국민도 정부를 받들게 됩니다.

현대불교 창사 10년 축하
우선 현대불교신문의 창간 10주년을 진심으로 경하해 마지않습니다. 언론이 난무하는 시대지만 언론의 필요성은 재언을 요하지 않습니다. 특히 불교 언론인하면 언론인이자 불교인이라는 의미를 동시에 지니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한계를 지니고 있는 언론이라는 의미를 지님과 동시에 ‘전문지’라는 특수성을 지니고 있는 것이라고 봅니다. 세상이 전문가를 우대하는 시대이니만큼 전문지의 역할이 새삼 주목받을 날이 당도해 있다고 봅니다.
나는 여러분들에게 천수천안관세음보살과 같은 자세를 지녀야 한다는 말을 전하고 싶습니다. 국내외의 불교계 소식과 다양한 불교문화를 한 장의 종이 위에 펼쳐서 독자들에게 기쁨과 새로운 정보를 준다는 것 자체가 관세음보살의 천수천안이기 때문입니다. 여기에는 천개의 눈을 가진 관세음보살의 올바른 시각과 천개의 손을 가진 관세음보살의 자비로움이 전제되어 있는 것입니다. 바른 눈과 바른 손은 바른 법을 전하기 위해 갖추어야 하는 필수조건입니다.
언론은 잘못을 고쳐주는 파사현정의 파천검(破天劍)이 되어야 합니다.
남동우 기자 | dwnam@buddhapia.com
2007-03-14 오후 4:08:00
 
한마디
종정예하께서 사면조치를 단행하도록 하신 것은 예하로서의 제1과제를 던졌다고 봅니다. 문제는 지난 개혁과정을 '불사(= 佛行)'로 승화시키기 위해서는 사면이 이루어지고 그 가운데 억울한 피징계자가 있다면 종단은 그들을 위로하고, 얼마남지 않은 여생을 편히 보내도록하는 조치를 취하는 도리일것입니다. 왜냐하면 위법하게 종단을 장악하고 징계를 강행한 것은 불사일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그들의 눈물을 닦아주는 따뜻함이라고 압니다. 그들이 승려이지만 인간이였기에 눈물을 흘리는 연약함을 보이더랍니다. 90년대 종단장악과 징계는 결코 불사일 수는 없었습니다. 설사 그들 가운데 용서 못할 잘 못이 있었더라도 말입니다. 전세계인들을 슬프게 한 바미안의 석불파괴보다 더한 슬프고 불행한 한 사건이었습니다. 민주화와 개혁을 외쳐댄 출가와 재가의 불자들을 제외하고 말입니다.
(2007-03-24 오전 9:35:17)
64
종정예하께서는 종단의 현안이 무엇인지를 파악하여 다음 원로회의에 참석하여 협의 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종통의 승계와 관련한 내용을 비롯해 중대 발표를 하셔야 합니다. 종정은 조계종의 갈길을 올바로 지적해야합니다. 포로 수용소를 시찰하셨으면 6.25의 비극과 전쟁의 참화를 느끼셨을 줄 압니다. 조계종에도 6. 25와 같은 비극이 있었습니다. 거제도 위령탑에 참배하시듯 비극에 희생된 영혼들을 위한 천도제를 올리시지요. 해인사 주지도 그 책임자의 한 사람이니 함께 말입니다.
(2007-03-21 오후 12:01:09)
46
보리수의 말씀은 도를 넘고, 너무 지나치다고 본다. 누구에게든 기회를 주어야 한다. 좀더 기다려야한다. 김혜암 스님 같이 두분의 종정을 비법으로 끌어내리고 그 자리에 올라간 종정도 있고, 또 오도송도 있고 좌탈입망까지 했지만 종단을 혼란으로 빠뜨린 적이 있는 이성옹 노사와 같은 종정도 있지 않았는가. 법전 종정은 그 같은 일은 하지 않았지 않는가 싶다. 그다리려 봅시다.
(2007-03-18 오후 6:17:57)
85
우리 종정스님 제발 거짓은 하지 맙시다. 깨달았다는 오도송도 없는데 언제 법을 인가받았다는 것입니까? 성철 선사께서는 살아생전 어느누구에게도 법을 인가해 주신적이 없읍니다. 지금 해인사를 보십시오. 과연 누가 그렇게 해인사를 망쳐놨는지 바로 봐야할 것입니다. 요즘 제방에서는 해인사선원을 나왔다하면 방부를 받지 말자는 말까지 나올 정도입니다.성철스님께서 그렇게 높여놓은 위상을 법전스님께서는 개인의 사리사욕의 광장으로 만들어놓아 버렸습니다. 책임을 지고 물러나야 옳았습니다. 없는 법으로 여기저기 주워온 글들로 법문이라고 도배를 하고 납자 한명 제접할 줄도 모르고, 납골당 장사로 신성한 조계종 종정의 이름에 먹칠하고, 이제는 성철스님까지 욕되게 법을 인가받았다니, 눈먼 명예욕이 너무 지나친 것 아닙니까?
(2007-03-17 오후 6:56:04)
67
종산 원로회의 의장의 법전 종정 재추대전 행한 인터뷰가 갖는 의미를 알자. 오는 3월 26일부터의 중앙종회와 다음 열리는 원로회의 결과여하에 따라서는 중대한 발표가 있을 가능성이 높다. 법전 종정과 지관 총무원장을 비롯해 호계, 종회 등 종단 지도층에 있는 승려들은 종단의 현안이 무엇인지?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를 분명히 해야 할 줄 안다. 94년 서암 종정은 최측근이 취임전 종단의 현안 등에 대한 올바른 진단과 원로회의와 종회 등을 통한 합의 및 처리방안을 먼저 발표하라고 했다고 한다. 그리고 원로의장이 종정보다 중요한 자리이니 발표결과에 따라서는 취임을 그만드라고 했다고 한다. 그런데 그 측근의 말을 외면했다고 한다. 법전 종정은 선각스님에 대한 비판을 어떻게 받아드리는가도 하나의 관건이다.
(2007-03-17 오후 3:00:40)
106
법전 종정 재추대! 먼저 종단안정을 위해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종정은 영광스러운 자리임과 동시에, 그 만큼 무거운 짐을 져야하는 자리이다. 즉 조계종의 신성을 상징하고 종통을 승계하는 최고의 권위와 지위를 가진 자리라는 것이다. 법전 종정과 그 주변은 재추대에 기뻐할 것이 아니라 지난 5년간 이상과 같은 종정의 직무를 수행했는지 돌아보았으면 한다. 본종의 신성과 종통에 반하는 일들이 없었는가. 향산거사가 재기한 0승 문제를 비롯해 말사 주지직 거래 사건을 비롯해 본종의 불교정화이념에 반한 일들을 지적하고 바로 잡으려 했는가이다. 재추대를 영광스럽게 생각할 것이 아니다. 1기 5년을 그냥 넘어갔다고 보고 제2기가 중대한 문제에 부디치게 된다는 것을 법전 종정과 그 주변은 알기 바란다.
(2007-03-14 오후 6:5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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