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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에 전남 해남 성도사에 ‘항일운동 유적지 기념관’이 건립된다.
성도사(주지 무애)는 최근 구한말 의병들이 봉기해 일본군과 격전을 벌였던 성도사에 항일운동 유적지 기념관을 건립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에 성도사는 2009년까지 국비 예산 450여억원을 들여 성도사 인근 부지 2만1000여 평에 의병 활동 기록, 최초의 농민운동 사료 및 유적을 전시하는 기념관을 조성할 계획이다. 연면적 1,900여평에 지하 1층, 지상 3층 규모로 건립될 기념관에는 항일운동 유적 전시실, 항일 의병 활동 기록들을 영상으로 볼 수 있는 영상실, 대강당 등이 들어선다.
무애 스님은 "기념관 설립을 통해 성도사가 일제시대 항일운동의 격전지 였다는 사실을 어린이 청소년들에게 심어주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일 것이다"며 "역사체험을 올바르고 효율적으로 할 수 있도록 내실있는 프로그램을 많이 만들어 놓을 것"이라고 밝혔다.
(사)운암김성숙선생기념사업회 민성진 사무국장은 “태허 스님(운암 김성숙)을 비롯한 불교계가 일제치하 민족의 독립을 위해 투신했음에도 불구하며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있는 것이 작금의 안타까운 현실”이라며 “성도사가 호국불교의 성지로 자리매김하는데 물심양면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강한 의지를 표명했다.
성도사는 현재 국가보훈처 및 광주광역시, 해남군 등에 사업계획을 제출했으며 결과는 오는 6월경 최종 확정된다.
▲성도사는?
백제때 창건된 것으로 추청되는 성도사는 고려, 조선시대를 거치면서 초의, 하의, 범해선사 등 수많은 고승들이 정진했던 곳으로 호남지역 대표적인 불교성지로 알려져 있다.
특히 이 절은 불교 유적지 뿐 아니라 구한말 의병 활동과 농민운동의 중심지로 역사적 가치를 간직하고 있다. 구한말 일제의 강제 병합이 되기 직전인 1909년 의병장 황일두 장군 등 의병 100명이 성도사에서 일본군들과 격전을 벌이다 식량이 떨어져 근처 심적암으로 후퇴하다 전원 순국한 역사적 장소이기도 하다. 또 일제 강점기인 1933년 전남지역 농민 대표들이 이 절에 모여 항일 농민운동의 핵심단체인 전남협의회를 결성했던 곳으로도 유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