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9. 7.1 (음)
> 종합
스스로 허물 드러내 삼배로 참회
석종사 시민선원 '자자' 현장
벽력같은 고성…"왜 밥 갖다 먹어"
석종사 시민선원에서 자자를 하고 있는 불자들.

“입승(立繩)이라는 중책을 맡았지만 잘한 것은 하나도 없는 것 같습니다. 열심히 한다고 해도 항상 부족한 점이 너무 많습니다.”

“입승은 부처님 법을 잘 따르고 스님도 한번 믿으면 철석같이 믿는 등 참 자랑할 것이 많은 사람입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혹독하게 이야기하겠습니다. (잠시 후)왜 밥을 갖다 먹어!”

벽력같은 소리가 일었다. 일순간 모든 것이 얼어붙었다. 숨조차 내 뱉을 수 없었다. 혼자 방에서 공양을 한 적 있었던 입승은 “참회합니다”란 말밖에 할 수 없었다. 충주 석종사 금봉선원장 혜국 스님의 불호령은 이걸로 끝이 아니었다. 거사 청중(淸衆) 차례였다.

“청중 소임을 맡았지만 대중화합을 잘 못한 것 같습니다. 그것에 대해 지적해 주십시오.”

“지적할 정도가 아니라 쫓겨나야 돼. 어떻게 청중이 대중들 앞에서 언성 높이는 모습을 보여. 앞으로 세 철 동안 방부 못 들여. 걸망지고 가!”

혜국 스님은 단호했다. 바늘 하나 들어갈 틈이 없는 것 같았다. 서슬 퍼런 기운이 석종사 보월당(시민선원)에 가득 찼다.

자신의 허물을 돌이켜보고 있는 불자들.
“거사 청중과 보살 청중 모두 세 번 큰 절하고 참회해. 다시는 안 그러겠다고.”

삭발일에 고성을 지르며 싸웠던 두 청중이 대중들 앞에 삼배로 참회의 뜻을 보였다. 그러자 혜국 스님의 얼굴도 조금 누그러지는 것 같았다.

"죄 놓았기에 죄에 자유스러워지는 것"

병술년 동안거 해제일 하루 전인 3월 3일. 석종사 시민선원에서 자자(自恣)가 열렸다. 자자란 안거(安居) 마지막 날 함께 안거를 보냈던 사람들끼리 안거 기간의 허물을 고백하고 잘못을 지적받는 의식이다. 혜국 스님이 자자에 대해 설명부터 하기 시작했다.

“자자란 자기 스스로 자신의 허물을 드러내 대중들에게 고백한다는 것입니다.”

혜국 스님은 부처님 예를 들었다. 부처님이 해제하는 날 결제 때 남몰래 좌복 하나 더 쓴 일을 고백했다. 누군가 좌복에 물을 흘려 얼룩졌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일이었지만 제일 먼저 무릎 꿇고 자신의 죄를 참회했다. 그러자 가섭과 아나율 등이 나서 “그게 무슨 잘못이냐”며 만류했다. 그러자 부처님은 “이런 사소한 잘못을 그냥 넘어간다면 큰 잘못도 넘어가버린다”며 그들의 손을 뿌리쳤다. 그렇게 다음 순으로 내려가면서 자기의 허물을 내놓고 지적하며 참회했다.

시민선원에서 불자들이 정진하고 있다.

“죄를 대중들에게 내놓았기 때문에 죄에서 자유스러워지는 것입니다. 자자를 선방에서만 할 것이 아니라 일반 가정에서도 한 번 해보세요. 단 다른 사람의 잘못을 지적할 때 자비심으로 해야지 감정이 개입되거나 악한 생각으로 한다면 자자를 망치게 됩니다.”

부처님 당시처럼 혜국 스님이 먼저 자신의 허물을 참회하기 시작했다.

"독하게 맺힌 것이 있어야"…공부 독려
“첫 번째, 선원장으로 결제중에 외부에 나가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어떤 이유에서든지 결제 중에 나가는 것은 참회해야 합니다. 두 번째, 대중을 움직이기 위해 소리를 자주 질렀지만 그것은 규칙을 세우고 법을 만들기 위해서였습니다. 하지만 수행자가 남에게 열 올리는 모습으로 보였거나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는 것으로 보였다면 참회합니다. 세 번째, 아침에 참석하기로 했으면 지켜야 하는데 몸이 많이 힘들어서 빠진 적이 있습니다. 참회합니다. 이것 말고 선원장으로 잘못한 것이 있으면 지적해 주십시오.”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남의 허물을 들추기보다 자신의 허물을 돌이켜보는 것 같았다. 그 다음 순서로 내려갔다.

거사 청중이 대중들에게 삼배로 참회하고 있다.

“몸이 안 좋다는 이유로 정진을 몇 번 빠졌습니다. 참회 드립니다. 또 포행 중 여러 신도님과 이야기를 한 적이 있습니다. 이 점도 참회 드립니다. 이 이외에도 저에게 허물이 있다면 지적해주시기 바랍니다.”

대부분 비슷한 유형이었다. 몸이 아파 몇 차례 정진을 빠뜨린 것에 대한 참회였다. 아침 공양 뒤 자주 잠을 청했던 한 스님도 혜국 스님의 날카로운 지적을 피할 수 없었다.

잘못을 지적하는 것만은 아니었다. 공부를 독려하기도 했다. “독하게 맺힌 게 있어야 이룰 수 있다”며 “맺힌 것을 채우도록” 채근했다. 또 “공부는 때로는 매몰차게 해야 한다”며 자신만의 길을 매몰차게 가도록 권유했다.

혜국 스님, 그릇 키우기 위해 악역 자처
혜국 스님이 죽비를 들고 자자를 설명하고 있다.
혜국 스님은 조각조각 난 죽비를 보여줬다.
“나는 이걸로 때리지만 성철 스님이나 전강 스님은 물푸레회초리 등으로 사정없이 때렸습니다.”

혜국 스님은 남에게 욕을 하면 인심 잃는 게 사실이지만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남에게 호되게 당하고 나면 그 사람 그릇이 엄청나게 커지기 때문이다.

스님은 “남의 충고를 받아들일 수 있는 능력이 실력”이라며 수행자들의 욕 듣는 그릇을 키우기 위해 악역을 자처한다고 설명했다. 여기에는 불문에 들어 가장 큰 영향을 줬던 지월 스님의 모습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해인사 유나 소임을 맡았던 지월 스님은 장군죽비로 정진하는 스님들의 자세를 교정해주곤 했다. 그러던 중 한 스님이 벌떡 일어나 지월 스님의 장군죽비를 분질러버리는 일이 발생했다. 어른 체면에 말이 아니었지만 지월 스님은 어디선가 장군죽비를 구해와 다시 지도에 나섰다. 이 모습을 본 혜국 스님은 ‘이것이 어른의 모습이구나’하고 감동을 받았다.

“요즘은 점검해 주는 사람이 없는 것이 아니라 점검받는 사람이 없다”는 혜국 스님은 “안 받기 때문에 못해준다는 것은 곧 점검해 줄만한 자격 있는 사람이 적다는 말”이라며 아쉬움을 나타내기도 했다.
충주 석종사=글ㆍ사진 남동우 기자 | dwnam@buddhapia.com
2007-03-07 오후 5:3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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