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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고 가르칠 수 있어 '행복'
다도 포교사 김미려 원장
봉은사와 봉선사 다도반을 이끌고 있는 김미려 원장. 그는 <차인에게는 어떤 마음으로 차를 마시느냐가 가장 중요하다>고 말한다. 사진=박재완 기자

한겨울, 따뜻한 녹차 한 잔을 마신 기분이다. 맑은 찻물 속에 수행자의 형형한 눈빛이 담긴 녹차. 2월 5일, 서울 봉은사 다도반 수료식에서 만난 김미려(58) 원장(다예랑다도회)에게서는 녹차의 향취가 은은하게 배어 나왔다.

남양주 봉선사와 서울 봉은사의 다도반을 맡아 지도하고 있는 김 원장은 스스로를 ‘다도 포교사’라 지칭한다. 사찰 다도반 두 곳을 비롯해 91년부터 운영하고 있는 다예랑다도회, 인터컨티넨탈호텔 직원과 중국차 전문점 천재향의 티 소믈리에를 대상으로 한 강의까지. 그의 일과를 들여다보면 차를 통해 부처님의 가르침을 전하는 ‘다도 포교사’란 호칭에 자연스레 고개가 끄덕여진다.

한국차인연합회 이사를 맡고 있는 그이지만, 차와 인연을 맺은 사연은 평범하기 그지없다. 80년대 초, 중학교 1학년인 아들이 ‘잠이 많아 걱정’이라고 고민을 털어 놓자 담인 선생님이 “차를 마셔보라”고 권했다. 차라고 해봐야 국산 티백 녹차 밖에 모르던 시절, 김 원장은 ‘차’라는 새로운 세계에 호기심을 갖기 시작했다. 어린 시절 할머니를 따라 다니던 절에서 한두 잔씩 얻어 마시던 그 ‘맛없는 물’이 그의 인생 2막을 열게 해 준 것이다.

“당시 궁중요리전문가 故 황혜성 선생님께 요리를 배우며 차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어요. 홍차와 녹차가 같은 찻잎으로 만든 것이라는 것도 그때서야 알았을 정도로 차에 대해서는 무지했죠. 이후 화정다례연구원 신운학 원장님께 차를 배워 자그만 차회까지 열게 됐어요.”

2월 5일 서울 봉은사 다도반 중급 수료식에서 수강생들에게 수료장을 전달하고 있다. 제자들에게는 엄한 스승이지만 평소 늘 웃음을 잃지 않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사진=박재완 기자

호기심과 취미로 시작했던 차 생활은 그에게 ‘차 문화 포교’라는 사명감으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차 문화 전파를 위해 1990년 서울 압구정동에 문을 연 150여 평 규모의 전통찻집 ‘다예랑’은 국내 차인이라면 한 번쯤 들러야 하는 차계의 사랑방이 됐다. 차와 다구를 파는 것은 물론 차를 처음 마시는 사람들을 위해 무료 다도교실도 운영했다.

“그때만 해도 아직 차가 대중화되지 않았을 때잖아요. 손님 한 분 한 분마다 차의 종류부터 다기 사용법까지 전부 알려드렸어야 했어요. 그래도 ‘차를 알려야 한다’는 마음이 너무 커서 힘든 줄도 몰랐어요.”

하루 종일 손님에게 말을 해야 했던 탓에 성대 결절 수술까지 했던 김 원장은 2001년에는 서울 북촌에 ‘다담선’이라는 찻집을 냈다. 다예랑을 통해 차 문화를 대중화했다면, 다담선에서는 국내외 명차와 보이차를 소개하겠다는 생각에서다.

“매일 새로운 사람을 만나 차에 대해 이야기하는 생활은 즐겁고 환희심이 나기는 했지만, 지금 돌아보면 그만큼 나를 잊고 살았던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요. 차와 더 나아가 부처님 가르침을 더 배우고 싶은 마음도 들었고요.”

결혼 후 시댁의 종교를 따라 성당에 다녔던 김 원장은 15년 전 남편이 작고한 후 다시 절에 나가기 시작했다. 다예랑과 다담선을 정리한 김 원장은 남들에 비해 늦었다고 생각했던 만큼 더 부지런히 배움의 길을 걸었다. 짬이 날 때 마다 경전 강의를 들었고 한국차인연합회 다도정사 과정도 수료했다. 2005년에는 중국에서 실시하는 차 품평원 자격시험에 도전해 중급 품평원과 다예사 자격증까지 취득했다.

봉은사 다도반의 불수선차 시연 모습. 사진=박재완 기자

봉은사 다도반 김남희(34)씨는 이런 김 원장을 “진정한 외유내강”이라고 평한다. 평소 얼굴에 웃음 떠날 일이 없는 그지만, 다도 강의를 할 때면 그 누구보다 엄격하기 때문이다. 사범 과정을 수료하기 전까지는 무명옷만 입도록 하고 선후배 관계도 철저히 지키도록 한다.

“훈습(薰習)이라고 하지요. 차인들에게는 ‘몇 년 동안’ ‘어떤 차를’ 마셨는지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한 번을 마셔도 ‘어떤 마음으로 마시는지’가 남을 뿐이지요. 저를 비롯한 차인들 모두 바깥의 시선에 얽매이지 않고 차의 향취가 서서히 향취가 묻어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것이 바로 차의 정신이 아닐까요?”

2005년부터 봉은사와 봉선사에서 다도반 강의를 맡은 것도 이러한 ‘차의 정신’을 알림으로써 부처님 가르침을 전하고자 하는 뜻에서다.

“차회를 하며 이웃 종교인들을 만날 기회가 많습니다. 그분들이 차를 마시며 저에게 불교에 대해 물어보곤 하시는데, 제대로 대답을 하기 어렵다면 곤란하겠지요. 그럴 때 마다 제 자신이 더 공부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요즘 김 원장은 7살 손녀의 재롱을 보며 여유를 즐기는 대신, 포교사 고시 시험문제집을 붙잡고 있다. 내년에 포교사 고시에 합격하는 것이 1차 목표다. 일주일에 네 번 사찰 다도반을 지도하고 선재 스님의 사찰음식 강좌와 국어고전문화원(원장 윤경혁)의 차고전연구반, 불교전통문화원(원장 선혜)의 점다례법, 이시미문화원의 <논어> 강의까지 듣느라 하루 24시간이 모자란 김 원장. ‘배우고 가르칠 수 있어’ 행복하다는 김 원장에게서 배어나는 차의 향기는 끝없는 자기 개발과 스스로를 되돌아보는 마음자리에서 나오는 것임을 알게 된다.
여수령 기자 | snoopy@buddhapia.com
2007-02-26 오전 10: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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