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만여 명. 지난 한해 국내 템플스테이에 참가한 사람의 숫자다. 2002년 처음 시작된 템플스테이 프로그램이 더욱 전문ㆍ세분화 되어가는 가운데, 2월 10~11일 순천 송광사에서는 ‘성보 바로알기’를 주제로 템플스테이가 열렸다. 그간 사찰이 템플스테이의 ‘무대’ 역할을 했다면, 이번에는 어엿한 ‘주인공’의 자리를 얻은 것이다.
템플스테이 둘째 날인 2월 11일. 참가자들이 따뜻한 떡국으로 빈속을 채우고 일주문 앞에 모였다. 송광사 새벽예불의 장엄한 기운에 힘을 얻은 듯, 안내 책자를 보며 ‘예습’을 하는 참가자도 있다. 어제 입재식 후 가진 스님과의 대화 시간에 송광사가 우리나라 3대 사찰 중 16국사를 배출한 ‘승보(僧寶) 사찰’이라는 것도 알았고, 선원과 강원ㆍ율원을 갖춘 총림(叢林)이라는 설명도 들었다. 이제 사찰 구석구석을 돌아보며 송광사의 매력에 빠져볼 차례다.
일주문을 지나 경내로 들어가는 다리인 능허교에 이르자 안내를 맡은 일웅 스님이 다리 밑을 가리킨다.
“저기 다리 밑에 엽전 세 닢이 걸린 것이 보이시죠? 능허교와 우화각을 지을 때 보시 받은 돈이 남아 저곳에 걸어 놓은 것입니다. 시줏돈을 허투로 쓰지 말라는 말 없는 가르침이지요.”
우화각에 걸린 편액과 현판에 대한 설명을 들으며 대웅보전 앞에 다다랐다. 또 다시 스님의 질문이 이어진다. “다른 절과 달리 송광사에 없는 것 두 가지가 뭘까요?”
바로 탑과 풍경이다.
“송광사는 연못 위에 떠 있는 연꽃의 형상이라 탑을 세우면 가라앉는 기운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송광사 내에는 석조로 만든 탑을 세우지 않았습니다. 풍경을 달지 않은 것은 승보사찰로서 스님들이 수행에만 정진할 수 있도록 하는 배려라 생각됩니다.”
모두들 고개를 끄덕 끄떡. 1902년 고종황제의 왕실기도처로 건립된 관음전에서는 처마 밑에 숨은 그림처럼 써 넣은 ‘수(水)’자와 ‘해(海)’자를 찾아보며 ‘화기(火氣)’를 다스리려 했던 선조들의 노력도 느껴본다.
대웅보전에 들어 삼배를 하자 이번에는 불상 뒤편으로 참가자들을 데리고 간다. 부처님 진신사리를 모셔 놓았다는 그곳에는 좌복 하나와 시계가 놓여있다.
“이번에 강원을 졸업한 대교반 스님 한 분이 100일간 이곳에서 3000배 수행을 하셨습니다. 그 스님의 수행정신을 기리기 위해 좌복을 그대로 둔 것입니다. 여러분도 템플스테이 일정이 끝나면 이 자리에서 진실한 마음으로 기도를 해보세요.”
법당 밖으로 나오자 아침 햇살이 따뜻하게 내리쬐기 시작한다. 관람객들도 한두 명씩 경내를 거닐고, 참가자들은 성보박물관으로 자리를 옮겼다. 지금까지 사찰 외관과 건물을 살펴봤다면, 이번에는 송광사에 전해지는 문화재들을 알아볼 차례. 12년째 송광사 성보박물관을 맡고 있는 관장 고경 스님이 직접 ‘문화유산해설사’로 나섰다.
“1997년 개관한 송광사 성보박물관에는 국보 3점과 보물 110점, 지역문화재 38점 등이 보관되어 있습니다. 불상이나 탑 같이 화려한 문화재보다는 문서나 탱화 등이 많은 것이 특징입니다. 이 유물들은 지난 800여 년 동안 숱한 화재나 전란에도 불구하고 보존되고 있는 것들입니다. 이는 한두 사람의 성의나 역사적인 우연에 의해 이뤄진 것이 아닙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기록하고 전하는 성보를 지키려는 노력이 면면히 이어져온 덕분이지요.”
고경 스님의 설명에 따르면, 한국전쟁 당시 송광사 스님들은 성보가 훼손되는 것을 막기 위해 항아리에 넣어 땅에 묻어 놓아 전란을 피했다고 한다. 일제강점기 이후 잠시 혼란했던 틈에 불쏘시개로 쓰이던 편액이나 책상 덮개로 쓰이던 목판 등을 찾아내 무사히 전해지게 한 일화도 소개했다.
고려 고종이 진각국사에게 ‘대선사’호를 내려준 문서인 ‘고려고종제서’나 <거란본대장경>을 강화 선운사에서 송광사로 이운할 때 옮겨온 대장경 분류표지 패인 ‘경패’, 원감국사가 원나라 세조 쿠빌라이에게 받아온 것이라는 ‘티배트문법지’, 부처님께 공양물을 올릴 때 사용하던 용기인 ‘능견난사’ 등 국보와 보물들이 가득하다.
차근차근 설명을 듣지 않으면 문화재인지 아닌지도 구별할 수 없는 것들이 대부분이었지만, 도장 하나 문서 하나에 얽힌 일화와 역사를 옛날이야기처럼 차근차근 들려주는 고경 스님의 설명을 듣고 나니 이미 참가자들은 수백 년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있다. 보조국사 스님이 신었던 신발과, 대중들을 위해 밥을 저장했던 목조용기인 ‘비사리 구시’ 앞에 서자 참가자들의 상상력이 더욱 커진다.
“신발 크기로 보건데, 보조국사 스님은 키가 150cm 정도 밖에 안 됐을 것 같아.”
“이 통에 쌀 일곱 가마로 지은 밥이 들어간데. 몇 명이나 먹을 수 있을까?”
옛 유물을 통해 수백 년 전 송광사의 모습을 머릿속에 그려보는 참가자들. 이제 그들에게 성보란 ‘역사적 가치를 지닌 유물’이나 국보ㆍ보물 등으로 이름 지어진 좁은 의미의 ‘문화재’가 아니다. 송광사에 심겨진 나무 한 그루, 무심히 놓인 돌멩이 하나까지도 부처님 가르침을 이 땅에 이어지게 하고자 한 불자들의 노력이 담긴 ‘성스러운 보물’로 다가온다.
템플스테이 참가자 이경희(25)씨는 “평소 절에 가면 눈으로만 스윽 훑어보고 나오기만 해 아쉬웠다”며 “경내 구석구석을 살펴보고 설명을 듣고 나니 성보를 바로 볼 수 있는 눈도 기를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올해 대학 진학을 앞두고 참가했다는 권수자타(20) 한수진(20)양은 “복잡한 마음을 내려놓으려 송광사를 찾았는데, 성보에 대해 많이 알 수 있어 좋았다”며 “설명을 들을수록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뜻을 실감했다”고 소감을 밝혔다. 최연아(30)씨 또한 “그저 ‘문화재’라고만 여겼던 사찰의 여러 사물들이 부처님 가르침을 담아 전하는 ‘성보’라는 것을 느끼게 됐다”고 말한다.
송광사 김승년 포교과장은 “성보에 관해 좀 더 알고 싶어 하는 사람들을 위해 앞으로 정기적으로 ‘성보 바로알기 템플스테이’를 진행할 예정이다”고 밝혔다. ‘성보 바로알기 템플스테이’는 2월 24~25일에도 진행된다.(061)755-01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