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10.23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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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왕릉에서 불교를 읽다' 연재를 시작하며
①프롤로그(상) 왕의 무덤, 편히 잠들 수 없는 역사
조선왕릉의 기본구도가 처음 확립된 5대 문종의 현릉

최상의 법문은 죽음이다. 왕은 권력의 정점이다. 권력의 정점에 앉았던 이들의 죽음은 최상의 법문일까. 죽음 앞엔 누구나 숙연해진다. 하찮은 미물의 죽음 앞에서도 경건해진다. 500년 조선 왕조의 영욕을 온몸으로 받다가 이승을 하직한 왕들의 무덤을 찾아간다. 거기에 그들이 있다.

왕은 죽지 않는다. 아니 죽지 못한다. 육신은 소멸되었으나 그들의 행적은 불멸이다. 잊혀지길 원해도 잊혀질 수 없는 시퍼런 역사로 살아 있다. 피를 동반한 야심과 패기로 권좌에 올랐든, 얼김에 떠밀려서 왕이 되었든 불멸의 이름을 달고 높다란 봉분 이불 아래 누워 있다.

누워있는 그들을 깨워 권좌의 영광과 애환을 들어보자. 생존 당시에는 궐문 앞에도 얼씬거리지 못했을 테지만 이젠 발치까지 성큼 다가가 무례한 자세로 술잔을 건네고 담판을 지을 수 있다. 그때 왜 그리 난폭하셨수? 얼마나 재밌었수? 우째 자식이 그리 많수? 창살 없는 감옥이라 얼마나 고독했수? 장검 짚고 곁에 선 무인석을 향해, 근무 똑바로 서시오! 제멋대로 떠들어도 처형당하지 않는다. 그래서 죽음은 최상의 법문이다. 최상의 법문은 자비다.

조선 왕조 518년, 27대 역대 왕과 왕비, 추존 왕과 왕비가 있다. 이들의 무덤을 능(陵)이라 한다. 조선 왕릉은 현재 42기가 있다. 원(園)은 왕의 사친, 왕세자와 그 비의 무덤이다. 13기가 있다. 묘(墓)는 대군, 공주(왕의 적녀), 옹주(왕의 서녀), 후궁, 귀인 등의 무덤이다. 64기가 있다. 신분에 따라 분류한 능, 원, 묘를 합쳐 조선 왕조 왕족의 무덤은 모두 119기다. 분류상 서글픈 역사도 있다. 10대 연산군, 15대 광해군의 무덤은 능이 아니라 묘로 불린다. 회복될 수 없는 업보다.

능의 형식은 분묘 조성 형태에 따라 구분된다. 단릉은 왕과 왕비의 봉분을 별도로 조성한 단독 형태다. 장릉(단종), 건원릉(태조), 정릉(중종) 뿐이다. 쌍릉은 한 언덕에 왕과 왕비의 봉분을 나란하게 마련한 형태다. 삼연릉은 한 언덕에 왕, 왕비, 계비의 세 봉분을 나란하게 배치한 형태로 24대 헌종의 경릉(헌종, 효현왕후, 효정왕후의 무덤)이 유일하다. 동원이강릉은 하나의 정자각 뒤로 한 언덕의 다른 줄기에 별도의 봉분과 상설을 배치한 형태다. 성종 14년(1483) 정희왕후가 세조의 능 옆 언덕에 모셔짐으로써 동원이강 형식을 이룬 광릉이 효시다. 동원상하봉릉은 왕과 왕비의 능이 같은 언덕의 위아래에 걸쳐 조성된 형태다. 합장릉은 왕과 왕비를 하나의 봉분에 합장한 형태로 조선 초 <국조오례의>에서 정한 조선 왕실의 기본 능제다. 삼봉삼실의 삼합장릉은 왕, 왕비, 계비를 함께 합장한 형태로 유릉(순종)이 유일하다.

단릉이든 합장이든 권력의 성쇠, 역학관계에 의해 결정된다. 태조 이성계는 신덕왕후 강 씨를 지극히 사랑해 강비가 죽자 도성 안에 능을 만들었지만(정릉, 현재 영국 대사관 자리) 태조가 죽자 태종은 강비의 무덤을 양주 사한리(현 성북구 정릉동)로 이장해버렸다. 강비를 후궁으로 강등해 능을 묘로 격하시켰다. 죽으면 끝인 게 세속의 이치지만 권력과 연루되면 죽어도 끝이 아니다. 서울 중구 정동과 성북구 정릉동은 그런 사연에 의해 붙여진 지명이다.

영조는 조선 역대 왕 중 가장 오래 왕위에 있었다(52년). 영조는 생전에 현 서오릉 자리에 자신의 수묘(가묘)를 만들었지만 영조가 죽자 정조는 그것을 버리고 반대쪽 동구릉 쪽으로 가서 능을 조성했다. 그 자리는 100년 전 효종 왕릉이 있었던 자리다. 파묘한 자리에 할아버지 영조를 묻은 것이다. 아버지를 죽인 할아버지가 너무나도 미웠기 때문이다. 복수는 죽음으로 끝나지 않는다. 신하의 경우 부관참시(무덤을 파서 시체를 토막 내는 형벌)도 있다.

죽어서도 편히 눈 감지 못하는 자, 살아있는 자만큼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는 자, 그들의 이름이 왕이다. 권좌에 앉았다는 이유로 그들은 언제나 동시대인과 함께 산다.
어디들 계신가. 21세기에 다시 무덤을 파헤치고 옮기는 일이야 있을까만 참으로 편치 않다. 지명수배가 필요 없다. 그들의 소재는 만천하에 공개되어 있다. 그래도 권좌는 좋은 거여! 지금도 무수한 잠룡들이 하나 뿐인 그곳을 향해 전력질주 하고 있으니.
2007년은 1년 내내 ‘대선정국’이 시대 코드다. 조선 왕릉의 영욕을 통해 정국의 해법을 찾아본다.


■능상설도
왕릉의 기본구조
능상설도

죽은 자의 집이 무덤이다. 왕릉은 왕궁을 옮겨놓은 형상이다. 비록 상징화된 구조물이지만 있을 건 다 있다. 용상, 왕을 호위하는 문무관, 침전 근처까지 접근할 수 있는 내시도 있다.

1. 곡장(曲墻)-왕릉을 보호하기 위하여 삼면으로 둘러놓은 담장.
2. 능침-왕, 왕비의 봉분. 능상(陵上)이라고도 한다.
3. 병풍석-봉분을 보호하기 위하여 봉분 밑 부분을 두르는 12개의 돌. 병풍석에는 12방위 를 나타내는 십이지신상을 해당 방위에 맞게 양각하였다.
4. 난간석-봉분 주위를 보호하기 위하여 봉분 둘레에 설치한 돌난간. 가장 높은 기둥을 석주, 석주를 가로지른 돌기둥을 죽석(竹石), 죽석 중간을 받쳐둔 작은 기둥을 동자석이라 한다.
5. 지대석-병풍석의 면석 밑을 받쳐놓은 기초 부분.
6. 상계(上階)-능원은 장대석으로 구분지은 세 단계로 되어 있다. 가장 높은 상계는 왕, 왕 비의 침전인 능침이 자리한다.
7. 중계-문인석과 석마가 세워진 중간 단.
8. 하계-무인석과 석마가 서 있는 하단. 문을 숭상하는 정서를 알 수 있다.
9. 석양(石羊)-능침은 왕궁의 침전인데 이곳에 들어올 수 있는 신분은 내시뿐이다. 석양은 채홍사 임무를 담당한 내시이기도 하다.
10. 석호(石虎)-능침을 지키는 호랑이 모양의 수호신. 경호 임무를 맡은 내시다.
11. 망주석(望柱石)-봉분 좌우측에 각 1주씩 세우는 기둥. 그 기능에 대해서는 육신에서 분리된 혼이 육신을 찾아들 때 멀리서 봉분을 찾을 수 있도록 하는 표지의 기능을 한다는 설 등이 있다.
12. 혼유석(魂遊石)-일반인의 묘에는 상석이라 하여 제물을 차려놓는 곳이지만, 왕릉은 정 자각에서 제를 올리므로 혼령이 앉아 노는 곳이라 한다.
13. 고석(鼓石)-혼유석의 받침돌로서 모양이 북을 닮았다 하여 붙여진 이름.
14. 장명등(長明燈)-왕릉의 장생발복을 기원하는 뜻으로 세웠다.
15. 문인석-장명등 좌우에 있으며, 언제든지 왕명에 복종한다는 자세로 양손으로 홀을 쥐고 서 있다.
16. 무인석-문인석 아랫단에 석마를 대동하고 있으며, 왕을 호위하고 왕이 위험에 처했을 때 신속하게 대처한다는 뜻에서 장검을 짚고 위엄 있는 자세를 취하고 있다.
17. 석마-문인석과 무인석은 각각 석마를 대동하고 있다.
18. 예감-정자각 뒤 서쪽에 제향 후 축문을 태우던 곳으로, 석함, 소대(소전대), 망료위라고 도 한다.
19. 산신석-정자각 뒤 오른쪽, 보통 예감과 마주보는 위치에 설치한 것으로 장사 후 3년간 후토신(땅을 관장하는 신)에게 제사를 지내는 곳이다.
20. 정자각-제향을 올리는 곳으로 황제는 일자모양으로 침전을 조상하고, 왕은 정자모양의 정자각을 조성함.
21. 비각-비석이나 신도비를 안치하는 곳. 신도비는 능 주인의 생전의 업적을 기록하여 세우는 비석이다.
22. 참도(參道)-홍살문에서 정자각까지 폭3미터 정도로 돌을 깔아놓은 길이다. 왼쪽의 약간 높은 곳은 신이 다니는 길이라고 신도라 하며, 오른쪽의 임금이 다니는 길은 어도라고 하여 약간 낮다.
23. 수복방-능을 지키는 수복이 지내던 곳으로 정자각 동쪽에 지었다.
24. 배위-홍살문 옆에 한 평 정도 돌을 깔아놓은 곳. 판위, 어배석, 망릉위라고도 한다.
25. 홍살문-홍살문은 능, 원, 사당 등의 앞에 세우며, 신성한 지역임을 알리는 문이다.


■작가 약력
이우상
● 동국대 국문과 졸업

● 1996년 문화관광부 지정 ‘문학의 해 기념’ 불교문학상 장편소설 당선

● 1999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중편소설 당선

● 현 대진대, 동국대 문예창작학과 출강


최진연
● 제6회 대한민국사진대전서 ‘대상’ 수상

● 개인전 11회 개최

● 제41회 한국사진문화상 수상

● 현 대한사진예술가협회 회장 및 최진연 사진연구실 대표.
주요저서: <한국의 성곽> <옛다리-내마음속의 풍경> 등

글=이우상(소설가)·사진 =최진연(사진작가) |
2007-01-18 오전 10: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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