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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로부터 불가에서는 ‘돈에도 생명이 있다’고 했다. 시주자의 생명이 담겨있기에 허투로 쓰지 않았다.
순천 송광사(주지 영조)에 가면 옛 스님들이 속세의 돈을 어떻게 바라보는지 엿볼 수 있다. 송광사 일주문을 지나면 왼편으로 흐르는 시내를 만난다.
여기를 건너야 부처님 세계에 들어갈 수 있다. 물과 돌다리, 누각이 어우러져 송광사에서 경치가 가장 아름다운 곳이다. 세속과 불(佛)세계를 연결하는 다리는 무지개 형태의 돌다리인 능허교(凌虛橋)이다. 바로 이 다리 아래에 용머리가 놓여있고, 용이 물고 있는 여의주에 엽전 세 냥이 철사줄에 꿰어있다.
이 엽전에는 흥미로운 이야기가 담겨져 내려온다.
조선 숙종 33년(1707)경 돌다리를 세울 때로 추정된다. 주지스님은 다리불사를 위해 예산을 세우고 화주를 시작했다. 무사히 불사를 회향하고 나니 동전이 세 냥 남았다. 돌다리 불사는 끝났는데 남은 돈이 문제였다. 시주 받은 금품을 다른 일에 쓰는 것은 호용죄(互用罪)에 속하는 것으로 율장에 어긋나는 일이었다.
대중스님들은 돌다리 아래 손이 닿지 않는 용머리에 철사를 꿰어 남은 돈을 매달아 두기로 했다. 훗날 돌다리를 보수하거나 새로 건립할 때 보태 쓰도록 한 것이다.
이처럼 시주물에 생명을 불어넣는 송광사 스님들의 마음은 오늘에 이르기까지 계속 이어지고 있다.
지금으로부터 30년 전인 1977년, 송광사 범종불사를 할 때였다. 취봉 노스님이 당시로는 거금인 150만원을 불사금으로 내 놓았다. 이 돈에는 뜻하지 않은 사연이 담겨있었다.
송광사는 6·25전쟁당시 큰 화재로 대부분의 전각과 종고루가 소실되었다. 전쟁이 끝나자 중창불사를 하면서 종 불사를 함께 했다. 당시 송광사 주지였던 취봉 스님은 종 불사를 위해 화주한 돈으로 범종을 주조하고, 남은 시주금을 딴 곳에 전용하지 않고 남겨 두었다. 그러다가 종이 깨져 다시 종 불사를 하게 되자 불사금으로 내 놓은 것이다.
구산 스님과 함께 송광사 복구를 위해 혼신을 다했던 취봉 스님은 오랜 주지생활에도 사방승물과 개인사물을 엄격히 구분하여 공사를 분명히 했다. 어느 때보다도 사중살림이 어려웠던 시절에 범종불사를 마치고 남은 돈과 20년간의 이자를 챙겨놓았던 것이다.
용이 엽전 세 냥을 물고 있는 능허교 위에는 ‘날개가 생겨 날아올라 신선이 된다(羽化登仙)’는 우화각(羽化閣)이란 누각이 있다.
한 푼의 오차 없이, 한 생각의 빚진 마음 없이 인과에 분명한 이라야 능허교를 건너 우화등선할 수 있다는 것이다.
더불어, 능허교를 바라보고 있다보면 돈에도 생명이 있어서 필요한 곳에 사용하면 옆구리에서 날개가 나와 부처님 세계로 날아간다는 법음이 들리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