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3.29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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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희망에 악수 청해요”
[도반의향기]국립경찰병원 불자회 윤애경 부회장
잔인한 운명이다. 눈물조차 마음껏 흘릴 수 없는 삶. 잔인하고 혹독한 운명이 시작된 것은 1987년 1월이다.

시위진압 기동대에 근무하던 남편이 경찰봉고차량으로 이동하던 중 차량 사고로 인해 머리를 다쳤다. 다행히 큰 부상이 아니었고, 며칠 지나면 회복이 될 것 같다는 의사의 말에 가슴을 쓸어내렸다. 하지만 하루가 지나도, 이틀이 지나도, 한 달이 지나도, 두 달이 지나도 남편은 움직이지 않았다.

“아름 아빠, 이제 그만 일어나야지. 인태 한 번도 못 안아 봤잖아. 자꾸 이러고 있으면 어떻게 해….”
둘째 인태를 낳은 지 5일 만에 당한 예상치 못한 사고. 세 살 난 첫째 딸 아름이는 죽은 듯 누워있는 아빠를 물끄러미 바라보기만 했다.

몇 달을 눈물로 살았다. 그렇게 울어도 마르지 않는 눈물. 살 길이 막막했다. 도움을 청할 곳도 없었다. 그래도 아이들은 먹여야 했다. 산목숨은 살아야겠기에. 하지만 싸늘한 남편 손을 잡으면 이내 무너져 내렸다.
“무조건 살려야겠다는 생각만 했어요. 의식은 없지만 그래도 옆에 있잖아요.”

간호학원에 다녀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은 남편을 제대로 간호해야겠다는 생각에서다. 1991년부터 생활이 바뀌었다. 바뀌지 않고는 더 이상 살 수 없었다. 절에도 다니며 마음을 다잡았다. 하지만 야간 공부를 마치고 경찰병원 법당에 앉아 있으면 저절로 눈물이 흘렀다. 아니 실컷 울고 싶어 법당에 엎드렸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미칠 것만 같았다.

“아름 아빠, 나 왔어요. 불편한 데는 없어요?”

96년에 집으로 옮긴 남편. 어제 저녁에도 윤애경(47)씨는 직장에서 돌아와 남편에게 인사를 했다. 남편은 그런 아내를 물끄러미 바라본다. 의식은 없지만 자율신경은 살아있어서 이따금씩 반응을 보이곤 한다. 하지만 자신을 알아보고 반응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윤애경 씨는 잘 안다.

점심시간에도 얼른 집으로 뛰어가서 남편에게 밥을 먹이고, 자신도 간단히 점심을 먹고는 다시 병원으로 온다. 기도에 구멍을 뚫어 삽입해 놓은 튜브가 남편의 입이다. 음식물을 갈아서 주사기로 튜브에 넣어주는 일은 20년을 한결같이 해 온 일이지만 늘 서럽다.

남편을 제대로 간호하기 위해 집을 국립경찰병원 인근 아파트로 옮긴지도 꽤 오래 전 얘기다. 윤애경 씨는 현재 국립경찰병원 피부과 간호사로 근무하고 있다. 간호학원을 졸업하고 경찰병원에 남편을 돌볼 수 있게 해달라고 부탁을 했고, 병원 관계자들이 윤애경 씨의 정성에 탄복해 이뤄진 것이다.

“20년이 됐죠. 참 어떻게 살았는지…, 남편도 남편이지만 젖도 제대로 먹이지 못하고, 아빠도 모르고 자란 아이들이 불쌍하죠.”
눈시울이 붉어졌다. 남편도 남편이지만 아이들 생각만 하면 가슴이 무너진다.
“내가 태어나서 아빠가 사고가 났는데, 내가 죄인이지 죄인이야.”

몇 년 전이었을까. 고1인 인태가 술을 잔뜩 먹고 들어와 아빠를 붙들고 울먹일 때 그런 아들을 품에 안고 함께 펑펑 울었던 기억. “아빠와 함께 목욕탕 가보는 게 소원”이라고 쓴 일기장 위에 떨어져 있는 눈물자국을 보았을 때의 아픔은 그래도 차라리 나았다. 빗나가는 동생을 어루만지면서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아빠의 손을 잡고 안으로 아픔을 삭이는 아름이를 볼 때면….

잊어야 했다. 닥치는 대로 일했다. 2002년에 경원대학교 정보통신대학 전산정보공학과 석사과정에 입학해 공부를 마쳤다. 병원불자연합회 의료봉사와 경찰병원 의료봉사에도 빠지지 않고 참여했다. 환자와 그 가족의 마음을 누구보다도 잘 아는 윤애경 씨다.

마흔 일곱인 윤애경 씨는 스무 살 처녀같다. 의식 없는 남편을 20년 간 돌보면서 두 아이를 키운 엄마라고 하기에는 너무 해맑다. 그렇게 맑은 것이 더 시리다. 바보같이 아프다고 말 할 줄도 모른다. 애써 감추려는 것은 너무 힘겹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윤씨는 그게 아니라고 말한다.

“며칠 전에 남편에게 하소연했어요. 빨리 일어나서 얘들 나쁜 버릇 좀 고쳐달라고요. 아이들이 결혼할 때까지 아빠가 살아계셔야 할 텐데…, 남편 같은 경우 어느 순간 안 좋아지면 그게 마지막이 될 수도 있거든요.”

작은 손을 만지작거리면서 살며시 웃던 윤애경 씨의 표정이 달라진다. 아름이는 대학 졸업반으로 어린이집 보육교사 취직을 앞두고 있고, 인태는 대학 2학년이다.

잘 자라 준 두 아이가 더 없이 고맙다. 그래서 더더욱 아빠 없이 결혼했다는 말만은 듣게 하고 싶지 않다.
희망과 절망은 늘 공존한다. 윤애경 씨는 늘 희망에게 악수를 청한다. 지난 20년 세월을 버텨 온 습관 같은 것이다.
살아있는 것만으로도 고마운 남편. 윤애경 씨는 남편의 병상과 나란히 놓여져 있는 자신의 침대에서 오늘 밤에도 ‘내일’을 꿈꾼다.

‘내일은 일어나겠지….’
글=한명우 기자·사진=박재완 기자 |
2006-12-29 오전 11: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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