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상 부드럽고 따뜻하게 부처님의 가르침을 세상에 전파하는 ‘현대불교’가 폐간이란 당혹 앞에 섰다. 열독자이자 필자이기도 한 입장에서 어리둥절하다. 집안 살림살이까지 속속들이 알 이유도 필요가 없었기에 쇠뭉치로 뒤통수를 맞은 느낌이다.
‘현대불교’라는 이름에 걸맞게 동시대의 기호를 존중하며 볼거리, 읽을거리, 생각할 거리를 제공하는 단아한 매체의 폐간이란 있을 수 없다. 살림살이가 어렵다면 허리띠를 졸라매며 나아가야 한다.
생명을 탄생시키고 키우는 것은 즐거움이자 책임이다. 공부 못한다고, 운동 못한다고, 투정 부린다고 자식을 팽개치는 일이 어디 가당키나 한가. 인연이란 소중하고 무서운 것이다. 기분에 따라, 호불호에 따라, 이익에 따라 인연을 맺고 끊는다면 불가의 가르침이 무색하다.
불교계 신문의 정론지로, 메이저급 신문으로 성장한 ‘현대불교’의 정체성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토대를 마련하고 비료를 뿌린 것은 물론 ‘한마음선원’이다. 더불어 토양에 밭을 일구고 묘목을 심고 열매를 만든 것은 신심으로 뭉친 청년 기자들이었다.
납득할 이유, 시간을 주지 않고 하루아침에 문을 닫고 그들을 거리로 내몬다는 것은 세속의 이치로도 황당하다. 그들을 거리의 투사로 만드는 것이 부처님의 가르침인가. 욕심은 버리되 사람은 아껴야 한다.
<현대불교>가 일군 12년의 역사와 노력을 앓던 이 뽑듯이, 씹던 껌 버리듯이 팽개칠 일이 아니다. 언론, 교육은 애초에 이익창출 제일주의로 출발한 것이 아니다. 희생과 봉사라는 것을 전제하고 시작하는 포교사업이다.
| ||||
이번 사태를 계기로 ‘현대불교’도 군살 빼고 요긴한 근육만 갖추어야 한다. 불요불급한 구멍은 종사자들이 잘 알 것이다. 체력은 국력이지만 체중은 국력이 아니다.
‘한마음선원’ 관계자 분들께 앙청 드린다. 나무를 사랑하는 방법은 가위질을 하는 것이지 뿌리째 뽑는 것은 아니다. 세상과 불조에 부끄럽지 않게, 여법하게 사태를 처리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