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아침 제자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매우 상기된 음성이다.
"선생님, 현대불교신문이 폐간된대요. 12월 말에 폐간하기로 한마음선원에서 결정했대요."
순간 눈앞이 캄캄해진다. 어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을까? 이런 신문이 몇 개나 더 나와야 할 비상한 시국에 나오던 신문마저 문을 다으려 하다니. 이 나라 불교가 어디로 가려는 것인가? 한마음선원은 대체 뭣하는 곳인가?
그러나 곰곰 생각해보니, 한마음선원의 이해할 수 없는 행보는 이미 지난 번 ''여시아문''을 폐쇄할 때부터 시작된 것이 아닌가? ''여시아문''은 내가 가장 사랑하고 자주 찾았던 마음의 고향 같은 곳이었다. 그곳에 가면 언제나 낯선 신간들이 예쁘게 단장하고 나를 맞이하고 있었고, 해묵은 불서들이 여기저기 얼굴을 내밀며 오래 전에 헤어졌던 동창생 같이 손을 내밀며 반가운 눈인사를 하고 있었다. 거기서 나는 불교사상의 요동치는 파동을 느낄 수 있었고 고따마 붓다의 친근한 음성을 들을 수 있었다. ''여시아문''에서 위안과 기쁨을 누린 불자들이 어찌 나 한 사람뿐이겠는가?
그런데 어느 날 느닷없이 문을 닫고 말았다. 독자들, 불자들에게 이해할만한 설명도 없이 문을 닫고만 것이다. 그때 나는 충격을 받았다. 보상받을 수 없는 상실감으로 인하여 며칠 동안 잠을 이룰 수 없었다. 그리고 이것은 ''만행이다''라고 분개했었다. 그런데 그로부터 얼마 되지 않아서 또 <현대불교신문>의 문을 닫는다니, 이것은 실로 ''대학살''이 아닌가?
물론 한마음선원으로서는 그럴만한 사연이 있었을 것이다. 누적되는 적자, 조직 내부의 불화와 갈등 ... 그 동안 거액의 정재(淨財)와 열정을 기울여 키워온 ''여시아문''이고 <현대불교신문>인데, 어찌 쉽게 포기할 수 있겠는가? 한마음선원 동지들의 고통과 고민이 얼마나 컸기에 애써 키워온 자식들을 버리기로 결심을 했을까? 불교를 사랑하는 점에서야, 대행스님이나 한마음선원 동지들이나 우리가 무엇이 다르겠는가? 아마 스님이나 동지들도 잠을 못 이루고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대불교신문>은 계속 나와야 한다. 계속 나올 수 있도록 지혜를 모아야 한다. 폐간만은 결단코 막아야 한다. 이것은 시대적 소명(召命)이다. 붓다 석가모니의 지엄한 부촉이고, 이 시대 2천만 불교도들의 엄숙한 요구이다. 이 부촉을 외면하면 우리는 불자로서의 생명을 잃고 만다. 이 요구를 부정하면 우리는 길이 망불(亡佛)의 죄인이 되고 만다.
길이 있을 것이다. 머리를 모아 궁리하고 기도하면 길이 열릴 것이다. 한마음을 열면 반드시 기사회생의 길이 열릴 것이다. <법보신문>의 사례가 좋은 선례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2~3년간 유예기간을 두고 자립을 준비한다면 충분히 가능한 일 아니겠는가? 국민주 모금 방식처럼 불자주식 모금운동도 가능한 일이 아니겠는가? 먼저 대화부터 시작하라. 지금 곧 한마음선원 동지들과 신문사 동지들이 함께 모여 대화부터 시작하라.
김재영(청보리회 지도법사)
(필자 김재영 법사님은,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역사교육과를 졸업하고 서울 동덕여자고등학교에서 수십년간 후학을 지도하였으며, 현재는 청보리회 지도법사를 맡고 있다. 동덕여고 불교학생회를 통해 수많은 불자들을 키워냈고, 이 제자들이 각계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금년 ''대원상'' 개인부문 대상을 수상하였다. - 편집자주)
이 글은 12월 18일 불교포커스(www.bulgyofocus.net)에 실린 것을 옮겨왔음을 밝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