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9. 7.2 (음)
> 종합
[불교포커스12.15]한마음선원, 솔직해져라!
최소한의 측은지심이 필요하다
집에서 강아지를 기르다가, 혹 도저히 기를 수 없는 상황이 생기면 참으로 난감하다. “내가 너를 이제까지 먹여 키웠으니 이제 네 힘으로 알아서 먹고 살라”고 강아지의 자립을 요구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내가 힘은 들지만, 어려움을 같이 나누자”며 계속 무리하며 나쁜 상황을 마냥 끌고 갈 수도 없다.

그렇지만 생명의 기운 · 온기(溫氣)를 느낄 수 없는 무생물도 아니고 생명을 가진 존재이기에, 끝까지 매몰차게 버리지 못하고 ‘이 강아지를 맡아서 키울 사람이 있을까?’ 찾아다닌다. 이것은, 특별히 착하지 않다고 하더라도 인간이라면 가지고 있는 연민[悲心] · 측은한 마음[惻隱之心] 때문이다. 그래서 곳곳에서 못된 무리들이 숱한 문제를 일으키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이 세상이 아직은 ‘살만한’ 것이다.

세상 모든 존재가 성주괴공(成住壞空)의 과정을 거치게 되어 있다. 그 어떤 생명체도, 그 어떤 조직도 심지어 무생물도 이 불변의 진리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이익을 최우선 목적’으로 설립하여 운영하는 기업의 경우 어려운 상황에 처하여 더 이상 유지가 곤란한 일이 발생하는 일이 공공기관이나 공기업 분야에 비해 훨씬 잦다. 그러나 이 경우에도 기업의 문을 닫기 전에 일정한 기간을 두고 종사자들에게 자구노력의 기회를 주거나, 최소한 6개월 내지 1년 치 급여를 지급하여 새로 생계 방편을 찾을 수 있게 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는 합리성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의 도리에 관련된 문제이다. 그래서 합리성만을 내세우는 서구의 기업들에 비해 우리나라나 일본처럼 인간관계를 중시하는 나라에서는 더욱 종업원의 장래에 대해 신경을 쓴다.

기업의 경우도 이럴진대, 자비(慈悲)를 최우선 덕목(德目)으로 하는 불교 집안에서 “당신, 내일부터 출근하지 말라”라든가 뚜렷한 이유도 없이 “전 직원이 사표를 내라”는 등의 일이 자주 벌어지는 것을 보면, ‘과연 이것이 부처님 제자들의 모임이란 말인가?’ 하는 회의가 들기도 한다.

며칠 전, 그야말로 ‘갑자기’ “<현대불교신문>이 폐간과 동시에 법인 청산 절차에 들어간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이 소식에 따르면, 이 신문의 발간 주체인 한마음선원 이사회에서 이런 결의를 하였고, 심지어 제3자 인수나 신문사의 자구노력에 의한 발간 계속 등도 전혀 고려하지 않는다고 한다.

세상일이란 모두 공과(功過) 양면을 가지고 있으니, 이 자리에서 그 동안 <현대불교신문>에게 어떤 공이 있었고 또 어떤 잘못[過]이 있었는지에 대해 논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다만 최소한의 유예기간도 주지 않고, 이처럼 갑작스럽게 회사를 닫고 찬바람 몰아치는 허허벌판으로 직원들을 내몰 수 있는 것인지에 대해 묻고 싶을 뿐이다.

혹 갑작스런 ‘해고 통보’를 받아본 이들이라면 그것도 여러 가족의 부양책임을 맡고 있는 가장이라면, 복받쳐 오르는 슬픔과 쏟아져 나오는 눈물을 감추며 집으로 향하는 발길이 얼마나 무거운지 잘 알 것이다. 마음속에서는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까?’ · ‘새 직장은 찾을 수 있을까?’ · ‘식구들에게는 무어라 말을 할까?’ …… 결론 없는 생각만 이어지다가 집 앞에 이르게 되면 어두운 얼굴 표정을 애써 감추고 웃는 얼굴로 들어가 가족들을 만난다.

이런 식으로 며칠을 계속하다 어느 날은 ‘내가 과연 이렇게 살아야 하는가?’ · ‘가족들에게 호강을 시켜주진 못할망정 세끼 밥이라도 제대로 먹여야 하는데 그 힘조차 없이 가장이라고 할 수 있는가?’ 하면서 우울증이 깊어지고 심한 경우는, 가족을 버리고 도망쳐 나와 노숙자로 살아가든가 더 심한 경우에는 ‘자살’을 택하는 경우도 있다.

나는 요즈음 이런 말을 하곤 한다.

“수행자라면 모름지기 이 정도는 돼야 존경심을 가지게 된다는 기준은 있습니다. 그러나 스님들이 설사 막행막식(莫行莫食)하며 세상 사람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고 승가의 위엄을 떨어뜨리는 일이 있을지라도, 최소한 다른 사람들의 힘든 상황을 보고 연민의 마음을 가질 수 있는 자비심만 있으면 저는 그분을 스님이라고 여기겠습니다. 역설적으로 이야기하면, 요즈음 스님들 가운데 아주 작은 자비심조차 없는 분들이 너무 많다는 이야기입니다.”

한마음선원이 <현대불교신문>을 창간할 때 이미 이익을 예상하지 않고 경영 적자를 감수하기로 했을 것이다. 재무제표의 손익계산서에 숫자로 나타나는 ‘이익과 손해’를 넘어서는 다른 ‘소득’을 내다보고 신문 창간이라는 대작 불사를 시작했을 것이고, 지난 12년 동안 이에 대한 나름의 성과를 창출했을 것이다. 신문과 함께 끼워 넣어 보내는 대행스님 법문을 통해 한마음선원의 선전지 역할도 충분히 했을 것이고, 이 덕분에 한마음선원의 신도가 늘어나는 효과도 보았을 것이다.

그런데 재정 적자만을 이유로 이처럼 갑작스럽게 ‘신문 폐간’과 ‘법인 청산’ 절차에 들어간다고 일방 통고를 하는 한마음선원에서, 불제자들이 가져야 할 자비심이 단 한 조각이라도 느껴지는가? 아니 기대를 접어서, 부처님 제자가 아니라 저자거리의 보통사람들이 가지는 측은지심이라도 보이는가? 10년 동안 기르던 강아지도 함부로 길거리로 내쫓지 않는 것이 인지상정(人之常情)인데, 신도들에게 ‘지혜와 자비’를 그토록 강조하던 스님들이 이 추운 겨울 길거리로 사람들을 내몬단 말인가?

끝까지 이런 식으로 밀고 나갈 의지가 확고하다면, 이제 한마음선원은 당당하게 대답해야 한다. “우리는 부처님 제자가 아닙니다. 우리는 영리를 추구하는 기업 집단과 다르지 않습니다. 우리가 그 동안 부처님을 내세운 것은 순전히 더 많은 신도들을 모이게 해서 이익을 극대화하려는 위장술이었습니다.”

차라리 이렇게 솔직한 의견을 내놓는다면, 나는 ‘자신의 실상을 감추지 않고 드러내는’ 한마음선원의 용기에 박수를 칠 것이다. ‘선원(禪院)’이라는 이름이 진정 잘못되지 않았다면, 이제 한마음선원은 ‘선사(禪寺)’다운 모습을 보여야 한다. 더 이상 머뭇거리지 말고 스스로에게 솔직해지고 당당해져라.

향 산 nagapura@paran.com
[원문보기]
2006-12-17 오후 4:07:00
 
한마디
우리는 부처님 제자가 아닙니다, 영리를 추구하는 기업 집단, 위장술, 어떤 한가지 사건을 보는 시각으로 이런 표현이 나올수 있군요! 더군다나 불법을 옹호하며 불교계 대표언론 자부하는 곳에서 불교계에서 서로 이런식으로 어떤 사건을 이렇게까지 극단적으로 표현한다면 서로 서로 자멸할 뿐입니다
(2007-02-04 오후 3:06:27)
34
왜 한마음 선원을 비방하나요? 왜 그동안 스스로 일어설 노력을 하지 않으셨나요? 이런 글을 글이라고 쓰신겁니까? 참 이러니 현대불교가 그렇게 되었지요.
(2006-12-21 오후 3:09:44)
33
한마음선원에가서 108배나 계속 하라는 소립니까? 다시 한 번 읽어보시길.
(2006-12-17 오후 11:55:33)
42
이런 내용의 글이 신문이나 언론에서 활자화 된다면 싸우자는 것 밖에 안될것 같습니다. 개인적으로 신문 폐지는 반대하지만 한마음선원 신도분들이나 스님들을 전체적으로 싸잡아서 논설이라는,또는 개인의견이라는 '자유'속에서 비판이 된다면 다시 신문이 살아나더라도 상처가 깊게 될것 같습니다. 다시 읽어보니 이게 신문사 싸이트에 실릴 논설인지...참 한심스럽습니다. 독선적이고 편협적이고 공격적이고 비아냥되는 글...
(2006-12-17 오후 11:12:55)
49
닉네임  
보안문자   보안문자입력   
  (보안문자를 입력하셔야 댓글 입력이 가능합니다.)  
내용입력
  0Byte / 200Byte (한글100자, 영문 200자)  

 
   
   
   
2025. 8.24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원통스님관세음보살보문품16하
 
   
 
오감으로 체험하는 꽃 작품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