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9. 7.2 (음)
> 종합
법현 스님, "현대불교신문 읽는 기쁨을 다시 누리고 싶다"
"공덕(功德)이 되는 자비행(慈悲行) 지금 여기에 필요하다 "
달마대사가 새로운 시대를 열기 위해 동토인 중국 양나라 땅에 가서 당시 임금인 무(武)를 만났을 때의 이야기를 조금이라도 법회에 참석하고 교양대학에서라도 공부를 해 본 적이 있는 불자라면 모르는 이가 없을 것이다. 무제(武帝)는 자신이 그동안 해왔던 불교신행의 모습이었던 불사(佛寺)를 짓고 탑(塔)을 쌓으며 승려들에게 공양을 베풀었던 일들을 상기시키며 공덕(功德)이 얼마나 되느냐고 물었고 달마대사는 ''공덕이 된 바가 없다(無)''고 대답했다고 기록은 전하고 있다.

많은 선사(禪師)와 법사(法師)들이 이 이야기를 전하면서 달마대사의 법력을 높이 칭송하고 상(相)을 내지 않는 보시(布施)와 불사(佛事)를 강조해 왔다. 또 여러 질문들을 쏟아내었던 무제가 이것 저것 다 부정하는 달마대사에게 내 앞에 있는 그대는 누구냐고 마지막으로 묻자 ''모른다(不識)''는 대답을 하고 길을 떠나 숭산(嵩山)으로 가서 소림굴(少林窟)에서 9년동안이나 면벽(面壁)하면서 때를 기다렸다고 한다. 그리고 9년이 지난 어느날 덩치 좋은 신광(神光)이라는 사람이 나타나서 팔을 끊어 보임으로써 자기의 믿음을 바치고 안심(安心)법문을 통해 법맥(法脈)을 이어 중국 선종(禪宗)의 제2조인 혜가(慧可)가 되었다. 다 아는 이야기이다.

어쩌면 우리가 너무도 쉽게 받아들여버린 ''공덕이 없다(所無功)''는 말을 새롭게 살펴볼 필요는없을까? 불교가 일어난 나라 인도에서부터 불교를 발전시켜온 북방의 티베트와 중국 그리고 한국과 일본 뿐만 아니라 남방의 미얀마와 스리랑카,라오스,태국 등의 모든 불교국가에서 예나 지금이나 한결같이 쓰이고 있는 공덕행(功德行)이라는 말을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 그리고 수없이 많은 불교의 스승들이 강조해왔고 또 지금도 강조하고 있는 자비(慈悲)와 보시(布施)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그저 법을 잘 모르는 사람들이 사찰을 운영하는 재화를 마련하거나 자신이 쓸 재물을 모으는 방편으로 사람들을 홀리기 위해 지어낸 이야기일 뿐일까?

다 아는 이야기이지만 엄청난 조직력과 자금력 그리고 인기를 가지고 있었던 한나라당의 이회창씨가 4년 전의 대통령선거에서 떨어지고 민주당 안에서조차 별 인기를 끌지 못하다가 경선을 통해서 대통령후보로 선출되어 정 몽준씨와의 통합을 이루어 같이 나가다가 대선 후의 자리배치 등으로 이견을 표출하여 결별한 바로 그날 저녁에 의식있고 젊은 국민들의 표심(票心)이 급속히 쏠려 대통령에 당선되어 나라를 이끌고 있는 노무현씨의 이야기는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그저 잘못된 판단으로 젊은 사람들이 생각 없이 표를 던져서 잘못 뽑았을 뿐이라고 치부해야 할까? 그러면 느낌을 좋게 가지지 못한 야당에서 대통령 탄액안을 가결시켜서 대통령에서 물러나게 했지만 국회의원 선거와 헌법재판소의 판정에 의해 대통령직에 복귀할 때의 일은 또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둘 다 다양한 견해와 다양한 배경을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가장 편안하고 누구나 수긍할 수 있는 설명은 바로 공덕(功德)이라는 말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노 무현씨 스스로의 것이든,그의 아내 권양숙씨의 것이든,노사모와 민주당원들의 것이든 그것은 상대방과 비교해서 객관적인 능력의 차이가 분명하게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초반과 중반의 예측과는 다른 간발의 차이로 대통령에 당선된 것은 공덕이라는 말 말고 다른 이유와 배경을 설명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

또한 우리 불교계 전체의 승려들이 바람직한 평가를 받고 있는 수행과 교화활동을 하느냐 하면 그렇지 못한 시선을 느끼고 있는 것이 더 솔직한 표현이다. 최근 수십년간의 승단분규로 인해 주류를 점한 측에서도 완전한 자율권을 확보하지 못한 가운데 변해가는 사회의 흐름을 제대로 읽지도 못했다는 것이 엄중한 평가이다. 설사 앞서서 읽었을 지라도 한 사찰의 주지나 교구의 책임자 및 종단의 수장까지도 관할 행정기관과 질서유지 책임자의 허락이 없으면 직무를 원활히 수행할 수 없었던 상황 속에서 자유롭게 시대를 읽는 언행을 할 수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격동의 80년대와 변화의 90년대를 맞이하여 불교인구가 눈에 띄게 늘어난 것은 무엇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

예를 들면 신군부 집권기인 80년대 초반까지 ㅇㅇ사의 주지로 총무원장으로부터 발령받은 승려는 바로 ㅇㅇ사 대웅전에서 진산식을 함으로써 주지직을 수행할수 있었던 것이 아니고 관할ㅇㅇ구청장과 ㅇㅇ경찰서장의 승인이 있어야만 공식적으로 주지직을 수행할 수 있었던 시절이 있었다. 그렇기때문에 사회에서는 아무리 민주화의 외롭고 고독한 투쟁을 계속하고 이웃종교에서는 그들을 돕고 이끌었을 지라도 우리 불교는 그저 조용히 있어서 독재를 인정하는 것으로 비쳐 왔던 것이다. 그런데 그 이유를 그저 불교가 관용을 중시하고 자비심이 많은데다가 호국불교 이념도 있어서, 또는 나쁘게 표현해서 어용적이어서 그렇다는 말로 불자들까지도 표현해 왔다. 그런 속에서도 조계종을 비롯한 불교종단 지도자를 중심으로 똘똘 뭉쳐서 수행하고 교화하며 사회의 민주화와 복지 및 국제교류 활동을 활발하게 전개했기때문에 불자의 숫자가 늘어난 것이었을까? 이 물음에 고개를 끄덕이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무엇때문이라고 말해야 긍정적인 평가를 받을까? 그것은 바로 우리네 선조사스님들이 무한한 자비행을 통해서 공덕을 쌓고 응동보화(應同普化)의 똘레랑스로 민족종교와 민족정신을 높이 받들고 깊숙이 받아들여 불교화 한 공덕때문이었다고 새각할 수 있을 것이다. 세계적으로 민주주의를 꿈꾸는 이들이 거의 같은 길을 가는데 그것은 바로 민족-민중-민주의 길이다. 우리의 상황도 거의 같아서 민주주의를 가슴에 깊히 받아들인 이들이 민주주의를 실현하는데 꼭 거쳐야 할 과정의 하나로서 민족주의의 길을 통해 불교를 친근하게 받아들였던 것이며 그것이 불교가 쌓아온 공덕의 결과라고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한마음선원도 비구니가 지도자로 있는 불교단체로서 국내 15개 지원과 해외에 7개 지원을 갖추고 한마음과학원,한마음국제문화원,한마음출판부,한마음미디어실 등의 과년단체와 각급법회 및 합창단들이 활발하게 활동하고, 살아있는 승려의 ,그것도 비구니의 수행과 사상을 조명하는 박사학위논문이 동국대학교에서 통과되어 세간의 주목을 받아왔다. 이렇게 된 것도 대행스님이라고 하는 걸출한 여수행자가 나온데서 비롯된 것이기는 하지만 알려지거나 알려지지 않은대로 많은 사람들이 이메지메이크업 등에 노력하고 또 현대불교신문이라는 썩 괜찮은 신문을 발행하면서 3만5천명의 사람들에게 부처님의 가르침과 불교계의 이야기를 전해주면서 쌓은 공덕의 힘이 아닐까 하고 생각한다.

물론 불교계 이야기를 할 때마다 공사석에서 하는 이야기이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사람인만큼 그와 더도 덜도 아니게 중요한 것은 시스템이다''라는 말을 우리 나라 정부나 우리 불교계나 한마음선원에서도 깊이 인식해야 할 것이다. 그것은 현대불교를 폐간하기로 한 결정의 저간에도 사람과 관련한 판단이 어려움을 겪었고 보도에 의하면 110명이나 있었던 직원을 70여명이나 줄였다고 하니 얼마나 어려운 구조조정의 과정을 남모르게 거쳐왔는지를 짐작하기때문이다. 이 또한 많지 않은 사람의 머리에서 나온 생각을 따른 결과가 아닌가싶다.

현대불교신문 창간을 준비할 때 사판에 있는 지겨움을 승화시키기 위해 지방 사찰로 쑥 들어가기 직전에 신문사사무실에 들러서 앞으로의 바람을 써서 창간준비호에 실린 것을 산속에서 읽으면서부터 지금까지 수 많은 보도자료를보내고 또 보도내용을 찾아서 불교와 세상을 읽는 자료로 삼아왔는데 느닷없이 운영주체에서 폐간하기로 결정했다는 소식을 듣고 안타까운 마음이 앞선다.
우선 이웃종단의 일원으로 속사정을 제대로 알지 못하면서 나름의 생각을 나타내는 마음속 힘듦을 관계자들이 너그럽게 살펴주었으면 한다.

먼저 생각이 드는 것은 오죽했으면 바른 보도를 통해 그렇게도 한마음선원을 알리는데도 크게 기여해온 현대불교신문을 그만 내기로 결정했을까 하는 생각이다. 알다시피 불교계의 어느 언론매체도 적자를 면하고 있는 곳은 없다고 한다. 거기에다가 요즘은 민주시대의 직장의 꽃이라 할 수 있는 노조가 활성화되어 있는데 행자때부터 어른들의 이야기라면 죽으라고 해도 따라야한다고 생각하며 검사동일체처럼 어기지 못하는 것이 몸에 밴 습성으로 되어 있는 우리 승려들은 노조에 대한 거부감이 있는데다가 돈과 관련해서는 양보하기 어려운 부딪침도 있을 것이고 사회에서는 거의 모든 부분을 약자로 인식하는 직원에게 손을 들어주는 것이 힘들게 한 것도 사실일 것이다.

하지만 그런 어려움 속에서도 출판과 도서판매 및 인터넷과 방송을 넘어서 일간지의 꿈을 꾸었던 기개를 생각해 볼 수는 없는지를 조심스럽게 묻고 싶다. ''나아가 춥고 배고플 때만이 도를 구할 마음을 낸다(饑寒發道心)''는 우리 수행자와는 또 다르게 공덕을 쌓을 보시를 하기 위해서도 삶의 터전이 있어야 하는 재가직원들의 기초생활에 대한 두려움은 또 어떻게 생각하는지도 알았으면 싶다. 어쩌면 대만의 자제공덕회와 같은 사회에 빛이되는 좋은 단체가 우리 불교계에도 나타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한마음선원을 기대했기에 던지는 질문이다.

바라기는 우리 알던 모르던 수많은 어려움이 있겠지만 지금까지의 신심으로 현대불교 폐간 및 법인청산의 발길을 돌려 다시 살려주었으면 한다. 현대불교는 한마음선원만의 일이 아니라 대한불교 조계종과 우리 불교계 전체의 눈이요 귀이기 때문에 그렇다. 정말 속 사정을 제대로 알지 못하기때문에 더욱 조심스럽게 바라지만 도저히 어쩔 수 없다면 법보신문의 경우처럼 얼마간 지원하다가 직원들 스스로의 힘으로 살리도록 중간과정을 줄 수 있는 길은 없는지 하소연 하고 싶다.

그것이 한마음선원과 대한불교조계종 및 우리 불교계 전체를 업고가는 자비로운 배요 공덕행이 될 것이라고 굳게 믿기때문에 그렇다.공덕(功德)이 되는 자비행(慈悲行)은 바로 지금 여기에 필요한 것이다. 한마음선원에서 현대불교를 다시 살리는 것은 불교계의 흐름을 살피고 있는 불자들과 예비불자 및 불교계 종사자들이 기운을 내게 하는 커다란 공덕이 될 것이다.물론 불교계와 독자들도 미력하지만 십시일반으로 도와야 할 것이다.
법현 스님 | 열린선원
2006-12-17 오후 3:5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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