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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근대화 과정에서 드러난 ‘불교와 민족주의’의 관계에 대한 검토와 반성은 한국불교는 물론 동아시아 불교의 정체성 확립과 종교의 사회적 반향성 평가를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 이 같은 논의의 필요성은 근대사회에서 불교를 토대로 한 민족주의의 수용 과정을 보다 구체적으로 조망하고 역사적 상황을 종합적으로 비교·검토할 때 불교와 민족주의의 결합이 갖는 역사적 의미가 보다 분명히 드러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불교평론> 가을 ·겨울호(통권 28·29호) 특집에서는 노르웨이 오슬로국립대 박노자 교수, 동국대 BK21불교학교육연구단 김영진 연구원, 동국대 불교문화연구원 원익선 연구교수, 동국대 불교문화연구원 서재영 교수 등 4명의 불교학자들이 바라본 각국의 불교를 통한 민족주의의 수용과정과 특징을 논문으로 다뤘다.
박노자 교수는 논문 ‘한국 근대 민주주의와 불교’를 통해 한국에서 불교와 민족주의의 최초 결합을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 전후로 보고 불교와 민족주의의 역사적 상황을 설명했다.
박 교수는 “당시 한국불교의 ‘주류’가 내·외부적 요인에 의해 일본식 근대 불교와 민족주의에 포섭된 것은 사실이지만 그 ‘비주류’에는 분명 예외도 있었다”며 “만해 한용운의 경우 일본 국가주의 기반 속에서도 사회진화론을 바탕으로 1910년대 말기에 이미 인권·자유주의 사상을 기반으로 민족운동의 논리를 펼쳤다”고 말했다.
박 교수는 또 “만해와 같은 보편적 가치를 지향하는 중간파들은 1945년 이후 외세에 기대는 양 극단주의 세력에 의해 배제를 당하게 됐고 당시 한국은 민족진영과 공산진영 상호간의 극단적 배제와 폭력을 통해 상시화 된 전시체제 속에서 불교적 민족주의가 싹트게 됐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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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진 연구원은 1900년대 사회주의 이데올로기의 원활한 도입과 수용을 위해 종교(불교)사상을 가미해 중국 근대화를 이끈 량치차오(梁啓超)의 활동을 통해 근대 중국 불교와 민족주의 과정을 살펴봤다.
김 연구원은 논문 ‘근대 중국 불교와 민족주의’에서 중국의 민족주의 성향을 △종교교육을 통한 사상무장 △종교(불교)사상을 통한 주체통일 △종교와 희망의 동일성 △의지력(魂力) 등으로 나눴다.
이와 관련해 김 연구원은 “중국이 종교교육에 역점을 둔 이유는 자비와 심력(心力)을 강조한 불교 사상이 세상의 어떠한 질곡과 풍파를 헤쳐 나가겠다는 사회주의 주체사상과 유사하다”며 “이론을 중시하는 철학과 사상보다 당시 중국에 필요한 것은 ‘종교적 믿음’의 간절한 사회적 요청 때문에 불교를 매개로한 민족주의가 태동했다”고 설명했다.
김 연구원은 또 “불교 자체가 종교적으로 뛰어난 사상성을 내포한 점도 중국의 민족주의 형성에 밑거름이 됐지만 량치차오에게 불교는 서구 제국주의와 대항하는 하나의 사상으로 봄이 바람직하다”고 주장했다.
원익선 교수는 논문 ‘천황제 국가의 형성과 근대불교의 파행’을 통해 “불교를 기반으로 한 일본 민족주의의 시발점은 명치유신(1868년)때 부터다”며 “천황제를 중심으로 한 제정일치 근대국가 설립에 불교가 동조함으로써 제국주의의 길을 걷게 됐으며 이와 맞물려 일본불교는 신불불리(神佛分離)와 폐불훼석(廢佛毁釋) 등 왜곡된 민족주의 명분을 펼쳤다”고 말했다.
폐불훼석은 천황제의 근대국가에 대한 추인과 지지를 유도한 고도의 정치논리로써 일본불교를 파행으로 치닫게 한 결정적인 요인이었다.
서재영 교수는 ‘자비와 불이사상’을 강조한 불교적 보편주의의 논리로 ‘불교와 민족주의’ 바람직한 결합과 방향을 제시했다.
서 교수는 논문 ‘민족불교와 불교적 보편주의’를 통해 “불교적 보편성은 민족적 틀을 벗어나 종교적 보편성을 확립하는 것이며 나아가 이데올로기적 갈등, 국가주의 등 인식체계에 의해 분열된 중생계를 자비의 관점에서 통합하는 것이다”고 말했다.
다시 말해 불교적 보편주의는 인위적 차별성을 극복하고 평화와 공존의 윤리를 위한 것이며 차별과 배제의 논리를 넘어 자비와 평등에 입각한 동체대비를 실천하는 것이다.
이밖에도 <불교평론> 가을·겨울호는 위덕대 박희택 교수의 ‘종교평화 문제에 관한 사회복지법제론적 검토’ 한국방송통신대 이정훈 교수의 ‘콤플렉스와 한국불교의 사회적 위상, 그리고 종교의 자유’ 등 3편의 논단과 전문번역가 이상미씨의 서평 ‘책으로 바라 본 쩡옌 스님의 인간불교사상과 그 실천’ 윤이상평화재단 장용철 사무처장의 특별기고 ‘2006, 윤이상의 숨결찾기’ 등 다양한 내용을 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