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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장 했어요. 허리 아파요.”
화엄사 사중 식구가 다같이 거들어도 김장은 김장이다. 3일간 이어진 김장 막바지, 인터뷰를 핑계로 고된 일터에서 빠져나와 좋을 만도 하련만 좌불안석이다.
고생하는 후원 식구들 생각과 생애 첫 김장을 완벽하게 체험하고 싶은 마음이 앞선 듯했다.
진이지는 어려서부터 음식을 좋아했다. 텔레비전 음식프로를 즐겨보고, 맛이 있다고 소개되는 곳은 꼭 찾아가 맛을 보곤 했다. 직접 음식을 만들고 주위사람들과 나누어 먹는 것이 즐겁고 흥겨웠다.
그러다보니 중학교 시절 진이지의 몸무게는 100kg을 넘어섰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오사카 인근 사찰에서 4년가량 살았어요. 사찰 음식은 고기가 없고, 담백하잖아요. 체중이 20kg 이상 줄었어요. 그때부터 사찰음식에 관심을 갖게 되었지요”
세속에서의 음식은 맛에 탐착하기 쉽다. 그렇지만 사찰 음식은 생명을 살리는 수행이다. 사찰음식에 관심을 보이자 주지스님이 사찰음식의 대중화 바람이 불고있는 한국으로 갈 것을 권유했다.
이렇게 사찰음식을 찾는 선재동자가 되어 화엄사 공양간에서 발길을 멈춘 때가 지난 5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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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3시30분, 예불과 함께 하루가 시작되면 하루 세끼 공양준비에 설거지하기도 바쁘다. 더구나 공양간 특성상 끊이지 않는 잡다한 울력까지 하다보면 잡념이 끼어들 틈이 없다.
“어쩜 저리도 성실한지 모르겠어요. 예의 바르고 귀염성 있고…. 배우겠다는데 잘 가르쳐 줘야죠”
진이지의 스승격인 공양주 마하연 보살(55)은 마치 아들인 듯, 수제자인 듯 자상하면서도 엄격함으로 대한다.
그렇다고 처음부터 친했던 것은 아니다. 서로가 바쁘고, 힘겹게 돌아가는 공양간에서 세세하게 돌볼 처지가 아니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진이지의 온화하고 붙임성 많은 성품으로 공양간 식구들과 마음이 통하기 시작했다.
진이지는 항상 허리에 디지털 카메라를 차고, 호주머니에 수첩을 넣고 다닌다.
공양시간에 앞서 본격적으로 요리가 시작되면 틈틈이 카메라로 찍고, 수첩에 적는다. 잠자리 들기 전에 그날의 요리를 노트북에 옮겨놓는다.
설거지가 끝나고 잠깐의 휴식시간에 공양주 보살이 도마와 칼을 챙기게 할 때가 가장 기쁘다. 진이지 만을 위한 특별한 요리강좌가 시작되기 때문이다.
“음식 재료는 한국이나 일본이나 비슷해요. 조리방법에 차이가 있을 뿐이에요. 원주 스님과 공양주 보살님에게서 정말 소중한 것을 배우고 있어요”
진이지가 배운 진짜배기는 ‘음식 만드는 이의 마음가짐’이다. 음식재료 하나하나에는 제각각의 향과 기운이 있다. 이것을 어떻게 조화시키느냐는 음식을 만드는 이의 마음에 있다. 화엄사 원주 덕제 스님은 “공양간은 깨끗하고 맑아야 한다”며 “짜증 내며 만든 음식은 공부하는 이에게도 그대로 전달되어 도량이 탁해진다”고 강조한다.
공양주 보살도 ‘칼질 잘하기’보다 ‘아침예불에 참석하기’를 강조한다. 정진하지 않는 이의 음식은 기가 부족하다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즐거운 마음으로 만든 음식을 스님들이 맛있게 공양했을 때가 가장 기쁘다. 직접 만든 음식은 아니어도 공양하는 스님들의 뒷모습만 보아도 그렇게 뿌듯할 수가 없다. 마치 ‘맛있게 먹고 공부 잘 하겠다’고 말을 건네는 듯하여 깜짝 놀라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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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세 청년 진이지. 가장 고되다는 사찰 공양간에서 혼자 버티기에는 아직 어린 나이다. 즐겨하던 컴퓨터 게임, 영화보기를 접어둔 것보다 더욱 힘든 것은 외로움이다. 외로움이 물밀 듯 밀려올 때면 산에 오른다.
진이지는 이 행복에 기대어 화엄사 공양간에서 3년가량 머물 계획이다. 3년은 해야 한국의 사찰음식을 이해하고 제대로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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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젊은이 가운데 출가한 행자는 있어도 사찰 음식을 배우자며 후원에서 고생하는 이는 찾기 어렵다. 그러고보면 한국의 사찰음식을 배우겠다고 이국땅 깊은 사찰에까지 찾아온 25살 일본 청년 진이지의 모습이 남다르다.
“진이지, 한국 사찰음식 배워서 뭐 할 건데?”
“일본에 가서 한국의 사찰음식 전문점을 낼 거예요. 사찰음식으로 한국의 마음을 일본에 소개하려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