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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해우소ㆍ흙웅덩이 연못 등 생태환경 두루 갖춰
[108사찰생태기행]문경 운달산 김룡사
예전에는 사하촌에 서낭당이니 장승이니 하는 마을 지킴이들이 많았다. 그러던 것이 알고 모르는 사이에 사라져버렸다. 용케 살아남은 것들도 제의(祭儀)가 뒤따르지 않아서 젯밥 굶은 지가 오래되었다. 그런데 비하면 운달산 김룡사의 사하촌 서낭신은 아직도 마을사람들에 의해 받들어지고 있어서 절골로 들어서는 느낌이 푸근하다.
김룡사 보장문 앞 전나무 숲길

운달산(雲達山, 1097m)이라는 지명은 신라 진평왕 때 운달조사가 이 산에 들어와 ‘운봉사(雲峰寺)’라는 절을 창건하면서 붙여진 이름이다. ‘김룡사(金龍寺)’라는 이름은 조선 중기 사하촌의 어느 장자가 운달산신에게 기도하여 남매를 얻어 아들의 이름을 용(龍)이라 지었는데, 그 후 마을과 절 이름을 ‘김룡’으로 고쳐 불렀다고 전한다.
김룡사 생태탐방은 주차장-보장문 구간, 김룡사 경내와 주변, 김룡사-양진암 구간 등으로 나누어 살펴보았다.
주차장에서 큰 절의 보장문까지 1km 가량은 비포장 숲길이다. 자동차들이 뻔질나게 드나든다. 사람이 있든 없든 숲속에서는 자동차 속도를 늦추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주위의 식물들이 먼지를 뒤집어써서 탄소동화작용과 숨쉬기에 지장을 받게 된다.
김룡사 숲은 들머리부터 그윽하다. 활엽수로는 참나무류가 주종을 이루고, 침엽수로는 소나무와 전나무가 주종을 이룬다. 특히 이곳의 전나무 숲은 소문 없이 좋은 숲이다.
나무들의 수종(樹種), 수령(樹齡), 생육상태가 거의 같아서 다른 숲과 구분되는 숲을 ‘임분(林分)’이라고 하는데, 김룡사 주변이 전나무 임분에 해당된다. 이곳 전나무는 씨를 받아둘 만큼 유전자가 좋아서 지난 1996년부터 2ha 임분에서 10년 동안 우량종자를 받아냈다.
전나무가 위세를 부리기 전에는 소나무가 김룡사 숲의 주인이었다. 아니, 지금도 장송들이 곳곳에 우람하게 모여서 흘러간 영광을 재현하기 위해 위세를 부리고 있다. 부도전 주변과 대웅전 앞뒤와 석탑과 석불 주위에 남아있는 장송들도 그들 무리들이다.
운달산의 소나무들은 역사가 있다. 조선말까지도 운달산은 왕실에 숯을 공급하기 위한 향탄봉산(香炭封山)으로 대우받아 왔다. 고종 때 세운 향탄봉산사패금계(香炭封山賜牌禁界) 비석이 역사의 증인이다. 그 비석은 ‘왕실의 숯을 굽기 위해 김룡사에 하사한 숲이니 일반 백성들의 출입을 금한다’는 경고석이다.
김룡사 일주문 이름은 홍하문(紅霞門)이다. 사뭇 감상적인 느낌을 주지만, 붉은 노을이 푸른 바다를 꿰뚫는다는 ‘홍하천벽해(紅霞穿碧海)’에서 빌려온 선가(禪家)의 글귀이다.
김룡사 연못

숲 터널을 지나오는 동안 왼쪽으로는 냉골이 쉬임없이 흘러내리고 있다. 냉골은 문경 8경 가운데 하나로, 운달계곡이라고도 불리는 사하촌의 상수원이다.
전나무 숲길이 끝나면 개울가에 전통해우소가 있다. 이 해우소 역시 다른 전통 해우소와 마찬가지로 경사진 비탈에 중층 다락형 구조로 서 있다. 용변칸의 톱밥은 용변을 보고난 뒤에 변조칸에 넣어서 배설물들을 덮도록 되어있다. 그렇게해서 뽀송뽀송 말려진 배설물은 건비(乾肥)가 되어 채전밭으로 실려나간다. 이것이 근래까지 내려온 김룡사의 전통유기농법이다. 김룡사는 과거 여러 차례 소실되는 아픔을 겪었다. 1997년 겨울에도 밤중에 화재가 나서 설선당(說禪堂)과 범종루 등 주요 당우들을 태웠다.
대웅전 뒤로 산불이 내려오지 못하도록 일정 공간의 나무들을 베어내고 내화수림대를 조성한 것은 경험 끝에 나온 조치일 것이다.
경내의 조경수로는 극락전과 응진전 앞 배롱나무, 대웅전 앞 자목련 손꼽을 만하다. 신도가 기념식수를 한 주목도 눈에 들어온다. 신도들이 자발적으로 경내에 ‘내 나무’를 한 그루씩 심는 일은 매우 뜻있는 생태사찰 만들기가 될 것이다.
절에 있는 은행나무들은 해마다 은행을 따서 관가에 바쳐야 했기 때문에 대개 암나무들이다. 그러나, 김룡사 명부전 앞 은행나무는 숫나무이다.
김룡사 은행나무

응진전 뒤로 돌아가면 고졸한 석불과 조촐한 분위기의 석탑이 자리하고 있다. 다소 외지고 생뚱맞은 곳에다 석불과 탑을 조성한 것은 다분히 풍수적인 동기가 있었다. 즉, 두 석물이 자리한 곳에 지하의 암맥이 돌출해 있어서 이를 누르기 위함이다.
이러한 풍수적 견해들이 과학적이냐 아니냐 하는 문제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풍수적 인식과 삶의 태도가 자연환경을 지켜낸다는 사실이 더 중요한 것이다. 풍수는 고유한 자연경관을 지키고 환경 훼손을 막는 좋은 대안문화로 수용해야 할 것이다.
김룡사는 사하촌이 멀고, 좌향이 양명하여 토봉을 기르고 있다. 산중에서 토봉을 기르면 여러 가지로 이로움이 있는데, 벌들이 꽃가루받이를 해주기 때문에 생태적으로 좋고, 스님들에게 건강식품을 제공해주기 때문에 좋다. 암자나 토굴에서는 재정 확보의 수단이 될 수도 있다.
김룡사 해우소 뒤편

산중사찰은 어딜 가나 양명(陽明)하다. 좌향도 그렇지만 전각을 짓기 위해 나무를 베어내 일조량이 많을 수밖에 없다. 햇볕을 좋아하는 곤충들이 경내외에서 많이 관찰되는 것도 그런 입지 조건 때문이다.
여러 종류의 줄나비류를 비롯하여 산호랑나비, 뿔나비, 그늘나비, 네발나비, 청띠신선나비, 작은멋쟁이나비 등이 가을날 김룡사 주변에서 관찰된 나비들이다.
큰절에서 양진암에 이르는 비포장 숲길은 부드럽게 휘어지고 구부러진 동선이 운달산의 너그러움을 많이도 닮았다.
최근 절 안에 연못들을 많이 조성하고 있다. 그러나 굳이 많은 돈 들여 그렇게 할 필요가 없다. 김룡사 연못처럼 그냥 웅덩이 파놓고 물만 끌여들여 수생태계가 이루어진다.
김룡사 연못은, 연못 물은 맑아야 한다는 고정관념에서 자유로운 생태연못이다. 창포를 비롯한 여러 종류의 수생식물, 소금쟁이를 비롯한 각종 수서생물, 왕잠자리를 비롯한 곤충류, 참개구리를 비롯한 양서류, 갈겨니 같은 어류, 물총새와 같은 조류, 그리고 파충류와 포유류까지 이 연못을 중심으로 생명의 그물을 짜고 있다.
숲길 좌우는 침엽수와 활엽수가 섞여 있는 혼효림이지만, 전나무 숲은 어디서나 우뚝하게 돋보인다. 사찰의 등나무들은 대개 식재된 것이 많은데, 이곳에선 길섶에서 자생 등나무들이 눈에 띈다.
여여교를 건너면 오른쪽에 정상으로 가는 숲길이 나 있다. 금선대와 화장암 방향이다.
까실쑥부쟁이, 개쑥부쟁이, 참취, 구절초 같은 국화과 가을꽃들을 비롯해 층층잔대, 마타리, 등골나물, 산박하, 무릇, 눈괴불주머니, 맥문동, 여로, 누린내풀, 나도송이풀, 며느리밥풀꽃, 흰진범, 며느리배꼽, 송장풀 등이 자리하고, 습한 곳에는 여뀌 종류와 물봉선, 고마리, 물양지 등이 피어 있다.
양진암 가는길의 옹벽

대성암은 비구니 수행처로, 1800년에 김룡사에 있던 청하당을 이전해 지은 것이다. 해우소도 조촐하고 아담하다. 규모는 작지만, 전통 구조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직접 똥을 치고 그 똥으로 농사 짓는 일도 옛 수행자들의 삶 그대로이다.
대성암에서 양진암으로 가는 길은 운달산 중턱을 휘돌아가는 산복도로이다. 길을 따라 산쪽으로 시멘트 옹벽이 양진암까지 이어져 있다. 양서류와 파충류들은 가을에 기온이 떨어지면 동면을 위해 높은 곳으로 올라가야 하는데, 이 시멘트 옹벽 때문에 오르지 못하고 있다. 기계(자동차)만을 위한 살생의 도로가 아니라 이제는 인간과 자연이 합일하는 상생의 길이 절집에 필요하다. 양진암은 자연에 손을 너무 많이 대서 산중암자다운 맛을 찾아보기 어렵다.
양진암 마당에 서면 운달산의 한자락이 시원히 펼쳐진다. 그러나, 운달산은 고만고만한 높이의 봉우리들이 능선처럼 이어져 있어 어느 봉우리가 정상인지 가늠이 잘 안 된다.
게다가 기암이나 절경마저 눈에 띄지 않는 수더분한 육산이다보니 소문도 그만큼 적다. 산은 사람들 눈에 덜 띄는 만큼 오염이나 파괴도 적다.
http://cafe.daum.net/templeeco
글·사진=김재일 | 사찰생태연구소장
2006-12-08 오후 6: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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