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21일~2007년 1월 21일 열리는 이 전시에서 공개된 ‘영취산에서 설법하는 석가모니불’은 아홉 폭의 삼베를 꼼꼼하게 이어 만든 높이 380cm, 폭 321cm의 삼베 바탕 위에 그려진 불화다. 국립문화재연구소가 2005년부터 실시하고 있는 해외소재 한국문화재 보존처리 지원사업의 첫 번째 수혜 작품이기도 하다. 이 지원사업은 해외 한국 문화재 조사 사업의 일환으로 국립문화재연구소가 2005년부터 해외 주요박물관 소장 한국문화재를 대상으로 학술적으로 가치가 있는 문화재 중 보존처리가 시급한 유물에 대해 보존처리비용을 지원해 주고 있는 사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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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공개된 미국 시애틀미술관 소장 조선불화는 60여년간 수장고에 방치되다시피 보관되던 것을 2002년 부임한 큐레이터 시라하라씨의 지원신청으로 2005년 12월 국립문화재연구소와 시애틀박물관이 보존처리지원협약서를 체결해 보존처리한 작품이다.
화면의 녹색 안료가 많이 없어지고 전체적으로 퇴색한 화면에 필선마저 흐릿해진 상태로 고국으로 돌아온 ‘영취산에서 설법하는 석가모니불’은 보존처리를 거쳐 선명한 모습으로 고국민들과 만나고 있다. 서울 전시가 끝나면 2007년 상반기 재개관하는 미국 시애틀미술관으로 돌아가 한국의 대표 미술품으로 전시된다.
조선시대 제작된 영산회상도 공개를 계기로 조선불화의 특징을 살펴보자.
조선시대는 억불숭유 정책으로 불화 역시 고려시대에 비하면 침체기라고들 말한다. 그러나 조선 초기 중종 명종 대의 불화들은 고려불화의 기법적 특성을 이어받으면서도 높은 품격을 선보이는 명작들로 인정받는다.
침체기였음에도 불구하고 탱화는 고려시대보다는 조선시대에 더욱 성행한 것으로 드러났다. 괘불을 비롯해 104위 신중, 칠성, 산신탱화가 등장했으며 우리나라에서만 볼 수 있는 감로탱이 신선함을 선사한다.
족자 형식으로 대변되는 고려시대 탱화는 조선시대로 넘어와 가로 길이가 길어지면서 본존을 둥글게 에워싸는 중앙집중식 구도로 변화한다. 직지사 석가모니 후불탱의 경우 높이의 제약으로 인해 고려불화와는 다른 도상의 변화를 확연히 느낄 수 있다. 중앙집중식으로 주존불을 강조한 것이다. 서민의 정취를 느끼게 했던 질그릇이나 소박한 백자처럼 조선시대 불화 역시 고려시대보다는 덜 화려한 대신 좀더 인간적이고 친숙한 상호를 선보이는 쪽으로 변모한 것도 조선불화의 특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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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불화가 고려불화와 다른 점 가운데 하나는 색채의 다양화다. 고려불화는 붉은색(朱), 녹청색(綠靑), 군청색(群靑)의 삼색을 기본으로 색을 절제해 사용하고 있다. 이에 비해 조선불화는 다양한 색채가 불화를 좀더 화려하게 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고려시대에 비해 문양이 적어지는 대신 황토색 분홍색 하늘색 등 서로 대비되는 색으로 화려하게 채색된 채운(彩雲)이 그 자리를 대신한다. 조선시대 내에서도 적녹색을 주조로 쓰던 전기와 달리 푸른색을 주조로 쓰던 후기가 서로 색상의 변화를 보인다.
필선은 직선의 사용이 두드러진다. 서양 화법의 수용과 더불어 원근법에 대한 이해가 깊어져서 보다 경직된 화면 구성을 했다는 견해도 있다.
고려시대의 귀족불교적 성격과 달리 보다 서민화 대중화된 불교는 조선시대에 와서 특성별 전각의 성격과 명칭을 확정지었다. 덕분에 전각별 다양한 탱화를 생산해 내는 결과를 드러냈다. 불보살을 모시는 상단탱화, 불법을 보호하는 신중을 그린 중단탱화, 중생 영혼의 극락왕생을 비는 하단탱화 등이 기본적인 구분이다.
탱화 외에 몇 점 남이 있지 않지만 후불벽화도 찾아볼 수 있다. 조선 전기 사찰 벽화의 원형은 수종사 금동불감 후면불화다. 안동 봉정사 대웅전의 영산회후불벽화 역시 전기의 작품. 강진 무위사 극락전의 백의관음도(보물 제1315호), 고창 선운사 벽화 등은 조선 후기에 제작된 후불벽화이다.
감로탱(甘露幀)은 조선시대에서만 만날 수 있는 독특한 불화다. 동시대를 전후해 중국 일본에서조차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한 양식으로 수륙재나 사십구재 때 쓰이는 의식용의 불화이다. 감로탱은 모든 중생의 영혼을 한 사람도 남김없이 극락으로 왕생케 하는 내용과 함께 그 시대 생활상을 담고 있어 문화사연구에도 귀중한 자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