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의료원에서 자원봉사 활동을 15년째 하고 있는 보현경 보살(본명 이청자ㆍ64)은 자원봉사자의 기본 요건을 이렇게 정의한다. 처음에는 몸과 마음만 있으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하루 이틀 봉사하는 날이 늘어가면서 재정문제가 생겨나기 시작했다.
“제가 법당에서 상담봉사를 하기 때문에 머물다 보면 퇴원할 때 교통비가 부족하거나, 입원비가 부족하면 법당으로 도움을 요청하는 이들이 가끔 찾아옵니다. 법당은 법우회에서 운영하는데 자금여력이 없잖아요. 제가 사비를 털어서 조금씩 보태줍니다. 그 힘든 사정을 아는데 어떻게 그냥 보내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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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원봉사를 하기 위해서도 교통비 등 소소하게 드는 비용부터 보다 많은 이와 나누기 위한 돈에 이르기까지 씀씀이가 여러 곳이다. 남에게 잘 퍼줘서 ‘퍼순이’요, 큰돈 갖다가 작게 부숴버린다고 ‘바순이’라고 남편이 별명을 지어주기도 했다.
자원봉사에 몰두하는 부인에게 더 열심히 하라며 남편 지수 거사는 연금통장을 내밀었다. 남편의 연금을 보현경 보살은 거리낌 없이 평펑(?) 쓴다. 그만큼 도움의 손길을 원하는 곳이 많다.
보현경 보살이 처음 봉사를 시작한 것은 1990년 초 국립의료원에서다. 일주일에 한 번 공급실에서 거즈 등을 접으며 자원봉사활동을 시작했다. 당시만 해도 타종교 자원봉사자들이 없었다.
보현경 보살이 본격적으로 호스피스 봉사를 시작한 것은 1994년 불교자원봉사연합회 제1회 호스피스 교육을 받고 나서부터다. 영가를 위한 염불봉사인 원앙생 교육도 받았다. 매주 월~토요일 병원으로 출근하듯 봉사에 몰두했다. 호스피스, 상담 봉사, 영안실 염불 봉사 등, 보현경 보살의 일주일은 봉사로 빠듯하다.
병실을 돌며 매일 30~40명의 환자들과 마주했다. 죽음을 눈앞에 둔 환자들을 위해 몸도 주물러주고, 대화 상대도 했다.
“건강이 무척 안 좋았어요. 그런데 봉사를 하면서 워낙 바쁘니까 아플 틈이 없어요. 아프다고 누워있지 말고 바쁘게 봉사하면 아픈 것도 잊고 좋아요.”
아플 틈이 없다고 하던 보현경 보살이지만 매일 30~40명의 환자들을 대하면서 두 번이나 쓰러졌다. 한 번 더 쓰러지면 일어설 수 없을 거라 했다. 봉사도 좋지만 건강이 안 따라주면 그나마도 못한다는 생각에 요즘 보현경 보살은 환자들을 병실이 아닌 법당에서 만난다. 환자들과 가족들에게 상담역을 자처하고 있는 것이다. 법당에 머물다가도 연락을 받으면 호스피스로, 염불봉사자로 바로 변신한다.
“가장 기억에 남는 환자는 돌아가기 3시간 전까지 부인과 내 손을 잡으며 도반으로 지내달라고 부탁하신 한 거사님이에요. 그 분이 돌아가신지 꽤 많은 시간이 흘렀는데 병원 법당에 일이 있을 때마다 연락하면 부인이 나와서 봉사를 합니다. 정말 고맙죠.”
초창기에는 자원봉사에 대한 사회적인 개념 정립이 되지 않았던 터라 활동이 쉽지는 않았다. 돈은 얼마나 줘야 하냐, 가족이 아프냐 등 사람들은 자원봉사자를 이해하지 못했다. 도움을 주려고 하는 것인데도 색안경을 쓰고 비난하기 일쑤였다. 봉사자라고 우습게 보는 이들도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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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힘이 들어 성덕 스님(방생선원)을 찾아가 울기도 여러 차례. 그때마다 스님은 다른 말씀 없이 “보살님 그래도 하실래요?”하고 묻기만 했다. 당장 그만둬야지 하면서 스님을 찾아간 것이었지만 그 질문만 받으면 “네 열심히 하겠습니다”하고 자신도 모르게 답변을 해버렸다. 성덕 스님은 그렇게 보현경 보살을 이끌었다.
봉사를 시작한 지 얼마 안 되어 같이 활동하는 다른 봉사자의 모함을 받았다. 당시에는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 1년 반 정도 지나고 그 봉사자가 그만 두고서야 주변에서 그런 일이 있었음을 귀띔해줬다.
“부처님이 제 눈과 귀와 입을 가려주신 거라고 생각해요. 만약 그때 나를 모함하는 것을 알았더라면 제가 지금까지 봉사하면서 살 수 없었을 겁니다.”
모함했던 그 봉사자를 보현경 보살은 선지식이라 생각한다. “내게 고난을 주는 이가 지나고 나면 나의 선지식”이라는 보현경 보살은 힘이 들고 지쳐 이제 그만두고 싶다고 생각할 때마다 선지식들과 스님들이 힘을 준다고 말한다.
1990년대 후반 당시 동국대 석림회 의장이던 재안 스님과 인연이 닿아 동국대 학승들이 매주 수요일마다 국립의료원을 방문하게 됐다. 10년이 다 되어 가는 지금도 학기 중에는 매주 스님들이 찾아와 병실을 둘러보며 환자들을 다독인다.
“재가자가 천 마디 만 마디 하는 것보다 스님의 먹물 옷 한 번 보는 것이 환자들에게 더 크게 다가옵니다. 스님들 오시는 날은 환자들이 더 먼저 기다려요.”
보현경 보살을 봉사로 이끌었던 성덕 스님이 항상 강조하던 “불자라면 불자답게, 봉사자면 봉사자답게 사는 것이 중요하다”는 말씀을 항상 가슴에 담아둔다.
봉사자답게 사는 것은 어떤 것일까? 우선 하심(下心)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나’라는 상이 있으면 힘들다는 것. 받는 것보다 주는 것이 좋아야 하는 것도 봉사자다운 사고방식이다.
보현경 보살은 요즘 법명을 ‘부동심’으로 사용하기 시작했다. 서옹 스님께 ‘부동심’이란 법명을 받았던 시절, 초보불자였던 자신이 쓰기에는 팔지보살에 속해있는 ‘부동심’보살이란 호명이 너무도 부담스러웠다.
“서옹 스님께 받은 ‘부동심(不動心)’이라는 법명을 감히 쓸 수 없어서 고이 모셔두고 있었는데 원교사 계환 스님이 이제 그 법명을 쓰라고 권유해주셔서 우선 원교사에서만 ‘부동심’으로 불리고 있습니다.”
온 가족이 모두 불자여서 더욱 행복하다는 보현경 보살은 “호스피스 활동을 하면서 마지막 갈 때 어떻게 가느냐가 더 중요하다고 느낀다”며 “열심히 힘닿는 그 날까지 봉사하면서 삶을 회향하고 싶다”고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