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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사 중심으로 서술된 교과서나 상식백과 서적에서는, 이탈리아의 볼로냐(Bologna) 대학을 ‘세계 최초의 대학’이라고 한다. 많은 사람들이 이에 대해 의문을 품지 않고, 이것을 ‘당연한 역사적 사실’이라고 여긴다.
그러나 ‘세계 최초의 대학이 볼로냐대학’이라고 하는 것은 ‘상식’이 아니라 ‘비(非)상식’, 아니 ‘몰(沒)상식’이라고 해야 마땅하다.
우리가 잘 알고 있듯이 인도의 나란다(Nalanda) 대학교는 서기 전 5세기 굽타 왕조 시대에 설립되어 1,199년 이슬람군의 공격을 받아 폐허가 될 때까지 1,600여 년 동안 인도뿐만 아니라 한국·중국·일본과 태국·베트남을 비롯한 아시아 각국의 유학생이 몰려들어 다양한 학문을 연구하던 곳이다.최고의 교수진과 10,000명에 가까운 학생이 넘쳐나던 명실상부한 종합대학교였다.
이에 반해 법학 중심의 단과대학에서 출발한 볼로냐대학은 서기 1,088년에 개교하였으니 흔히 알고 있는 ‘상식’이 ‘몰상식’이라고 하는 내 말이 결코 지나치지 않다.
나란다 대학이 폐허가 된 것도, 세속의 대중을 떠나 사변적(思辨的)으로만 흐르고 말았던 인도 불교가 감수해야 했던 업보(業報)일지 모른다.
폐허가 되어 ‘세월의 무게’를 보여주고 있는 오늘의 나란다대학 터에 서서, 당시 세계적인 석학들과 학승들이 불교학을 중심으로 다양한 학문을 연구하고 토론하던 장면을 떠올리면 ‘제행무상’의 가르침이 절실해진다.
그러나 우리가 머리로는 제 아무리 ‘제행무상’의 진리를 알고 있다고 할지라도, 신심 깊은 불자라면 폐허를 바라보는 마음이 쓰리고 저려오는 것이 당연하다. 부처님 제자의 도리를 다하지 못하는 우리의 현실과 무능력에 실망하고 말 것이다. 국적을 떠나, 나란다대학을 복원하여 ‘세계 최고(最古)의 대학’을 ‘세계 최고(最高)의 대학’으로 육성하고 싶다는 원(願)도 가져볼 것이다.
그런데 몇 달 전부터 나란다대학이 위치한 “인도의 비하르 주 정부가 싱가포르·일본 정부의 지원을 받아 나란다대학을 복원하기로 합의하였다”는 반가운 외신이 전해지기 시작하더니, 이제는 구체적 합의 단계에 이르렀다는 더 반가운 소식이 들린다.
11월 20일 인도의 IPS(Inter Press Service) 통신사의 카링가 세네비라튼(Kalinga Seneviratne) 기자가 뉴델리 발로 전해온 소식에 따르면, “싱가포르·일본 및 불교에 관심이 있는 다른 나라들의 지원을 받아 나란다대학을 복원하여 아시아 학문 연구의 중심이었던 과거의 영광을 되찾게 될 것”이라고 한다.
미화 1억5천만 달러가 들어갈 것으로 예상되는 이 야심 찬 프로젝트는 이번 주 뉴델리에서 <불교적 문화 고리의 복원(Reviving Buddhist Cultural Links)>를 주제로 열린 국제 심포지엄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비하르 주 정부와 싱가포르 정부가 주축이 되어 추진하는 합작사업(Joint Venture)에는 스리랑카·태국과 중국 등 불교도의 비율이 높은 일부 국가의 참여도 예상된다.
11월 13일 심포지엄 개막식에서 싱가포르 외무장관 져지 여오(George Yeo)는 “이 프로젝트는 ‘종교’가 아니라 ‘동아시아 문명의 정수(精髓)였던 불교적 가치와 철학’에 관한 것”이라고 밝히고, “이제 세계무대에서 아시아가 재부상하고 있으므로 아시아인들은 자신들의 과거를 되돌아보고, 미래를 위해 과거 역사에서 영감을 얻어낼 수 있을 것이다. 고대의 나란다대학이 그러했듯이, 이제 우리들이 나란다대학을 아시아 문예부흥의 상징으로 발전시켜 광범위한 지역에서 학자와 학생을 끌어들여야 한다”고 덧붙였다.
인도 대통령 압둘 카람(Abdul Kalam)도 뉴델리에서 생방송으로 전해진 화상 기조연설을 통해 “이 프로젝트는 우리가 사는 세상에 행복하고 평화로운 사회를 건설해가는 모델”이라며, “마음의 화합이라는 과제는 이제 고대 나란다대학의 탄생지인 비하르에서부터 동력을 얻어가고 있다”고 이 사업의 의미를 강조하였다.
비하르 주 기획청의 부책임자인 싱(N.K Singh)은 이번 심포지엄에서 “고대의 나란다대학 인근에 이미 이 프로젝트에 필요한 토지를 선정하였으며, 12월에는 이곳에 대학을 건립하는 법안이 주 의회에서 통과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또한 싱가포르 이외에 다른 아시아 국가들도 대학 건립과 운영에 동참할 것으로 예상하였다.
현재 추진되고 있는 나란다대학 복원 사업이 ‘인도의 불교 부활’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인도에서도 극빈 지역에 속하는 비하르 주 정부의 경기부활과 관광객 유치를 위한 ‘경제적’ 목표와 싱가포르 정부의 이해관계가 일치하였기 때문임은 물론이다.
최근 인도와 우호관계 회복에 공을 들이고 있는 중국 측에서도 ‘나란다를 통한 인도 문화의 중국 전파’를 강조하며 “과거 인도에서 받기만 했던 중국이 이제는 갚아야 할 때”라고까지 하며 정치 문제로 접근하고 있다.
이처럼 나란다대학 복원 계획의 뒤에 감추어진 ‘세속화 우려’ 등의 부정적인 요소에도 불구하고, 우리로서는 이 사업이 ‘반가운 불사(佛事)’임에 틀림없다.
이 불사가 단순하게 건물만 건축하는 외형적인 것이 아니고, 옛 나란다대학의 명성을 되찾아 ‘불교학을 중심으로 제 학문 분야를 아우르는 세계적인 학문 중심’으로 우뚝 일어서게 되기를 기대해본다. 아울러 무슬림의 3분의 1, 기독교도의 절반 정도에 불과한 나란다 지역 불교도에게도 자긍심을 갖게 해주고, 이 지역에서도 부처님 가르침을 배우고 따르는 사람들이 많아지기를 기대해본다.
몇 개 안되는 종립대학교 운영에도 어려움을 겪고, 미래에 대한 전망과 희망도 보이지 않는 우리 현실에서 “나란다대학 복원 사업에 적극 참여하라”고 권고할 수는 없다.
다만 이 일을 지켜보면서 우리 불교계 지도자들도 사심을 버리고 ‘동국대학교와 중앙승가대학교의 중장기 발전 계획’을 세우고 실천하는 일에 앞장서 달라고 부탁하고 싶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