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 신도수 백 명 남짓, 초하루 법회 참석 신도 20~30여 명이 고작인 대구의 작은 사찰이 매주 토요일 아침마다 대구역 광장에서 150여명의 노숙자들에게 무료급식을 제공하고 있어 화제다. 웬만한 도심 속 큰 사찰도 매주 무료급식을 이어가기란 쉽지 않은 일, 대구시 대명동 청룡사 주지 보성 스님과 신도들은 2002년부터 5년째 대구역 무료급식을 이어오고 있어 지역불교계 뿐 아니라 지역사회에 신선한 충격을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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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구 청룡사 신도들이 노숙자에게 아침공양배식을 하고 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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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18일 새벽에도 보성 스님과 신도들은 따뜻한 국과 밥을 준비해 정확한 시간에 대구역 광장에 나타났다. 메뉴는 배춧국과 제육볶음 그리고 김치와 장아찌 반찬이다. 오전 7시, 배식시간에 맞춰 길게 줄을 선 노숙자들에게 배식하는 불자들의 얼굴엔 부처님의 미소가 가득하고 “맛있게 드세요”라는 한마디 인사가 빠지지 않는다. “사람은 배고파도 죽지만 정에 그리워도 못사는 법, 노숙자들에게 먼저 웃고 인사하라”는 보성 스님의 가르침 때문이다. 늘 “봉사했다는 상을 짓지 말라”고 강조하는 보성 스님은 또, “어떤 형상에도 머물지 말고 보시하라”는 금강경 구절처럼 “금반지를 끼고 있든 금팔찌를 끼고 있든 젊고 건강한 사람이든 어떤 형상도 보지 말고 목마를 때 물마시듯 그렇게 보시하라”고 이른다.
보성 스님과 신도들은 월 37만원의 정부보조금으로 살아가는 이웃 어르신들을 지켜보다가 매월 5만원씩의 생활비를 보조하면서 다양한 봉사활동을 시작했다. 그러나 노숙자 무료급식을 시작하는 데는 망설임이 많았다. 사찰재정이 빠듯했기 때문이다. 1년 동안 대구역에서 노숙자의 생활을 살펴봤지만 추운 겨울 아침 6시, 대구역사에서 쫓겨나 오갈데 없이 떨고 있는 노숙자를 보면서 생각을 접을 수는 없었다. 그러던 중 보성 스님은 “없으면 없는 대로 하면 되지 않느냐”는 어느 노 스님의 가르침을 듣고 무료급식을 시작하게 됐다. 숟가락이 10개면 10개만 가져가고 한 줌의 쌀밖에 없으면 그만큼만 해주면 된다고 생각하니 용기가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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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배식이 긑나자 일일이 물을 따라주는 조영숙 총무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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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첫 시작부터 우여곡절은 많았다. 여기저기 수소문 끝에 35인분 밥솥 2개를 얻고, 절에 있던 쌀을 톡 털어 100인분의 밥을 지어 무료급식을 나간 첫 날부터 스님과 신도들은 일주일 내내 남은 찬밥으로 끼니를 때워야 했다. 절에 쌀이 없으니 찬밥도 감지덕지였다. 또 가정용 가스 불에 100인용 국솥을 올려놓다 보니 밤새 국이 끓지 않아 새벽에 작은 솥에 나눠 끓이는 소동까지 벌였다. 그러나 지금가지 쌀이 없어 굶은 적은 없다.
“부처님은 절대 굶지 않게 한다”는 것이 보성 스님의 지론이다. 쌀 한 톨 남기지 않고 첫 무료급식에 모두 사용했더니 찬밥으로 끼니를 해결하게 하고, 또, 다음 급식을 나갈 즈음에는 그 만큼의 쌀이 들어와 있더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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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노숙자들과함께 아침공양을 하고있는 청룡사 주지 보성 스님(왼쪽)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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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무료급식을 나간 이후 지금까지 5년의 세월동안 토요무료급식을 이용하는 노숙자는 60여명에서 150여명으로 늘었다. 또, 매주 금요일에는 지역어르신 70여명에게도 무료급식을 하고 있다. 예전보다 많은 이들이 따뜻한 밥 한 그릇을 함께 먹게 됐다고 해서 청룡사 살림이 나아진것은 없다. 예나 지금이나 절에는 항상 쌀이 남아나지를 않는다. 쌀이 좀 모이는가 하면 무료급식에 몽땅 털어 나간다. 이젠 쌀이 없어 무료급식 못나가게 되는가 싶으면 누군가가 그만큼 쌀을 가지고 온다. 5년 전과 지금 달라진 것이 있다면 이젠 부처님전에 모든 것을 맡기고 걱정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신도들 또한 스님의 무차별적 보시행에 무조건 따른다. 모든 것은 부처님의 원력으로 되는 일이라고 믿는 이들의 신심은 그 어느 불자보다 크고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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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른 아침 무료급식나온 청룡사 신도들의 얼굴에는 미소가 가시지 않았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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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성 스님은 “육바라밀의 첫 번째가 보시바라밀”이라며 “부처님의 가르침대로 실천하는데 거리낌이 있어서는 안된다”고 말한다. “부처님의 가르침대로 행을 못하는 것은 신심이 부족하기 때문이라는 것”이 스님의 설명이다. “내 것을 놓아야 보시할 수 있고, 보시행을 하다보면 지혜도 생기고 더 많은 이들이 나눠먹는 도리도 생기더라는 것”이 스님의 말이다.
이른 아침부터 봉사활동에 따라나선 조영숙(49) 총무도 “배고픈 사람 배불리 먹는 것을 보면 가슴이 따뜻해지는데, 느껴보지 못한 사람은 전혀 알 수 없는 행복”이라며 함박웃음을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