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10.22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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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간 썩는 고통이 맑은 소리 내는 힘"
[도반의 향기]3대째 수(手) 목탁 만드는 공문수씨
“좀 더 늦게 오셨으면 목탁일 손 놨을지도 몰라유.”
충남 공주시 정안면 쌍달리에 자리 잡은 백제불교목공예원을 찾은 것은 지난 11월 16일. 마침 쌍달리 마을 김장날이라 동네엔 인적도 뜸하고, 물어물어 도착한 허름한 비닐하우스에서 3대(代)째 ‘수(手) 목탁’을 만들고 있다는 공문수(46)씨를 만났다. 2007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을 보는 첫째 아들을 수험장에 데려다주고 오는 길이라 했다.
목탁 재료 만들기 위해서는 살구나무를 30시간 삶고 또 3년 말리는 긴 인고의 시간이 필요하다.

공씨는 “이렇게 허름한 곳까지 찾아줘서 고맙다”며 사람 좋은 웃음을 건네면서도 대뜸 ‘목탁일’에 대한 ‘준 사형선고’를 내렸다. 스님이셨던 할아버지(故 공덕준)와 부친(故 공점철)의 뒤를 이어 30여 년간 손으로 직접 깎는 목탁을 만들고 있다는 그의 이력을 다시 살피게 만드는 말이었다.
“생각해 보세유. 실한 살구나무 한 그루 구하려면 봄 한 철 돌아다녀야지, 나무 베어 오면 30시간 정도 삶아야지, 그 놈을 3년 정도는 말려야 목탁을 만들 수 있는디 목탁 하나 깎는 데만도 꼬박 4~5일 정도는 걸려유. 그러니 그 비싼 목탁을 누가 사것습니까.”
그의 설명을 들으니 하루 100개는 거뜬히 쏟아져 나온다는 ‘기계 목탁(기계로 깎아서 만드는 목탁)’과는 가격으로나 공급량으로나 경쟁이 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손으로 깎은 목탁이 훨씬 소리나 손에 잡히는 느낌이 좋지 않냐”는 기자의 질문에 그의 리듬감 넘치는 이야기가 이어진다.
“요즘 기계 목탁도 꽤 쓸만해유. 제가 들어봐도 소리가 썩 나쁘질 않아요. 게다가 목탁은 소모품 아니어유. 몇 달 쓰다보면 흠집도 나고 소리도 변하고 깨지기도 하고 그러잖아유. 그러니 어찌 전통 지키겠다고 비싼 목탁만 사서 쓰겠어요. 저도 주머니 넉넉잖은 스님들이 제 목탁 찾으시면 그냥 기계목탁 사서 쓰시라고 해유. 그래도 어째요. 마음이 짠허니께 그냥 보시하는 수밖에.”
‘각(覺)’자가 새겨진 공씨의 목탁은 직접 목탁을 만들어 쓰셨던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역사’가 담긴 것이다. 일제강점기 고문으로 다리 불구가 된 할아버지는 생계를 위해 목탁을 만들기 시작했고, 모양이 좋고 소리가 청아해 찾는 사람이 늘자 공씨의 아버지도 자연스레 그 일을 이었다. 3남 3녀 중 가장 손재주가 좋아 아버지 일을 많이 도왔던 공씨도 ‘목탁일’을 자신의 천직이라 여겼다.
“한 20년 만들고 나니 자신이 생기데요. 목탁 주문도 한 달에 4~5개는 들어왔으니 같이 일하는 사람도 네 명이나 두고 전국 30여 개 불교용품점에 납품했지유. 근데 IMF 사태가 나고 나니 주문이 뚝 끊어졌어유. 자식 같은 목탁을 내주고도 돈을 못 받았으니 어찌 일을 계속하겠어유.”
공문수씨가 1998년 준비해둔 목탁 재료들. 이 목탁이 완성될 때까지 공씨가 수목탁 만드는 일을 계속할 수 있을까.

최근 공씨는 생업을 위해 조각탁자나 사찰 편액을 만들고 동네 ‘나무일(나무를 베어 주거나 과수원 수종갱신을 돕는 일 등)’을 돕고 있다. 목탁은 ‘30년 익힌 솜씨 없어질까 아쉬워’ 한 달에 두어 개 정도만 꾸준히 만든다. 스스로 ‘아직 장인정신은 부족하다’고 말하는 공씨지만 목탁 제작에 대해서만큼은 대단한 자부심을 드러냈다.
“원하는 목탁소리를 찾기 위해서라면 나무 한 그루를 다 쓰기도 해유.(보통 나무 1그루로 목탁 15개 정도가 만들어진다) 이제는 목탁으로 음계도 만들 수 있지유. 좋은 재료로 정성스레 만드니 2~3년은 거뜬히 쓸 수 있응께 값은 톡톡히 하는 거 아니것어유.”
이처럼 애정을 가진 ‘목탁일’을 생업으로 삼을 수 없게 된 것은 단지 판로가 막막했기 때문만은 아니다. 목탁 만드는 기술만이라도 전수하고 싶었지만 그마저도 여의치 않았다.
“저도 그동안 애 많이 썼지유. 공주시청이고 충남도청이고 하루가 멀다 하고 찾아다니면서 무료로 목공예 기술을 배울 수 있는 ‘공예학교’ 하나 세워보려고 했지유. 근데 뭐 제가 자격증이 있나요, 번듯한 학벌이 있나요. 그저 동네 어르신들 술 한 잔 사드리면서 배운 짚신이며 지게며 물레방아 만드는 기술 밖에 없응께 안됐던가봐유. 그래도 열심히 목탁 만들면 언젠가는 인정받을 날이 올 줄 알았는데, 제 노력이 부족하나 보네유.”
자신의 생계도 간신히 이어가다 보니 후학을 키울 엄두도 내기 힘들었다. 일을 배우겠다고 찾아왔던 사람들도 나무 베는 일이 워낙 위험하고 하루 종일 나무가루를 마셔야 하다 보니 한 달을 견디지 못했다.
“나무 하러 다니면 나무가 잘 못 쓰러져 굵은 가지에 부딪혀 뼈가 부서지는 일이 다반사에유. 제 몸에도 상처가 30군데는 넘을 거에유. 남들이 ‘미련스럽다’고 손가락질해도 자기 일에 자부심을 갖고 사는 사람들이 많을 텐데, 그런 사람들이 돈은 못 벌망정 자기 기술은 전수할 수 있는 곳이나 있었으면 싶네유.”

‘목탁일’을 시작한 것에 대한 후회도 수없이 했지만 새벽 3시에 일어나 목탁을 치다보면 번잡스럽던 마음이 어느덧 가라앉는다고 한다. ‘누구라도 해야 하는데, 내가 안하면 그저 잊히고 말테니 나라도 해야 하지 않겠나’하고 스스로를 타이른다.
언젠가 자신 집 한 켠에 공예학교를 지어 여러 사람들과 함께 목탁을 만들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공씨. 3~4년은 거센 비바람 맞으며 ‘썩어야’ 목탁 만들 수 있는 나무가 되듯, 그 역시 시련의 시기를 꿋꿋이 견디고 있는 한 그루 살구나무인 듯 보였다.
공주/글=여수령 기자, 사진=박재완 기자 |
2006-11-24 오전 9:5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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