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해 5월 방영된 KBS 2TV 드라마 ‘해신’. 신라시대 청해진을 건설한 장보고가 주인공인 이 드라마에서, 상단을 이끌며 무진주 상권을 휘두르는 귀족 여장부 자미부인은 혼자 있을 때면 늘 차를 마시며 생각에 잠기는 모습으로 등장한다. 그러나 그녀가 들고 있는 것은 흔히 ‘자사호’라 불리는 찻잔이다.
# 우리나라의 고구려 말기, 중국의 수나라를 배경으로 진행되는 SBS의 ‘연개소문’. 드라마 속 수(隋)나라 황제 문제(文帝)가 부인 독고황후에게 차를 건넨다. 이때 수문제가 손에 들고 있는 것은 숙우, 황후와 수문제의 앞에 놓여 있는 것은 개완배(蓋碗杯)다. 중국 수나라 상단의 후계자로 성장하고 있는 주인공 연개소문 역시 잎차를 우려마시는 다관과 찻잔을 곁에 두고 책을 읽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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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적인 예지만, 두 드라마 모두 신라시대와 수나라라는 당대 차문화에 대한 ‘몰이해’를 드러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당시 마시던 차의 종류가 잎차인지 덩어리차인지, 사용하던 다구가 다완인지 찻잔인지 따져보지 않은 탓이다.
우선 ‘해신’의 경우 자미부인이 신라시대의 귀족이라면 잎차가 아닌 ‘단차’를 마셨을 가능성이 높다. 신라 하대의 학자 최치원은 그의 시문집 <계원필경(桂苑筆耕)>에서 당시 귀족들의 차 생활을 엿볼 수 있는 글을 남기고 있다. 중국으로 유학 간 최치원은 중국차를 구해 고향의 부모님께 보냈는데, 그가 보낸 중국의 차는 병차(餠茶,떡차)였기 때문이다. 당나라 760년 경 육우가 쓴 <다경(茶經)>에 따르면 당나라 시대의 병차는 맷돌에 차를 갈아 가루로 만든 후 찻물에 넣어 끓여 마셔야 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이 차를 마시기 위해서는 토기잔이나 다완(茶碗)을 사용했을 것으로 추측된다.
그러므로 명나라 시대에 제작되기 시작한 자사호가 신라시대에 등장하는 것 역시 시대흐름에 맞지 않다.
드라마 ‘연개소문’에 등장하는 수 문제는 두통을 해결하기 위해 차를 마셨다는 기록이 전할 정도로 차를 즐겨 마신 인물이다. 그는 운하를 건설함으로써 남쪽지방의 차가 북쪽으로 쉽게 운반될 수 있도록 해 차문화 확산에도 일조를 했다.
수나라의 차문화는 이후 당나라의 차문화의 모태(母胎)가 되므로, 이때 역시 병차 위주의 차생활을 즐겼을 것으로 추정된다. 드라마 소품으로 사용된 잎차 다도구와 개완배가 시대와 맞지 않는 이유다. 차의 온도와 향을 유지하기 위해 다완에 뚜껑을 덮은 개배(蓋杯)나 개완(蓋碗)이 등장한 것을 명대 후기이고, 잎차를 넣고 뜨거운 물을 부어 우려마시는 포다(泡茶) 다구 역시 명대부터 본격적으로 제작되기 시작했다.
그렇다면 왜 드라마 속 차문화는 당대의 차문화사를 반영하지 못하는 것일까? 동양차도구연구소 박홍관 소장은 “조선시대 이전의 차생활과 차도구에 대한 체계적인 연구가 이뤄지지 않은 탓도 있지만, 그보다 작가나 드라마 제작진들이 해당 시대 차문화에 대한 철저한 고증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것이 더 큰 문제”라고 말한다. 의상이나 헤어스타일ㆍ궁전ㆍ주거 형태 등에 대한 고증과 연구가 상당한 진척을 보인 것과 달리, 차문화에 대한 인식은 아직 현저히 낮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매년 ‘고려 다례’ ‘백제 다례’ 등을 고증해 발표하고 있는 명원문화재단 김의정 이사장은 “최근 그 어느 때보다 국민들의 차에 대한 관심이 크다”며 “드라마라 하더라도 우리 전통 차문화를 올바르게 드러낼 수 있도록 각 단체들이 방송 모니터링이나 전문가 자문에 나서야 한다”고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