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들조차도 병원 법당을 영안실로 여기고 기도나 해주면 되는 곳쯤으로 생각합니다. 포교 포교 하는데, 이건(병원법당활동) 포교차원이 아니라 불교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이에요. 그런데 사람도 없고 관심도 없어요.”
병원법당 운영현황에 대해 묻자 서울아산병원 법당 지도법사 지홍 스님은 자조 섞인 탄식을 했다. 서울 보훈병원 법당 지도법사 선문 스님의 말은 차라리 넋두리에 가깝다.
“70세가 넘은 자원봉사 보살님을 쉬게 해 드려야 하는데, 사람(자원봉사자)이 없어서 그러지도 못하고, 환자들 보시금에 의존해야 하는 형편도 가슴아프고….”
불교계에서조차 관심을 받지 못하고 있는 병원 법당들이 인력과 재원부족이라는 삼중고에 시달리고 있다.
본지가 전국의 17개 병원 법당 중 동국대 일산ㆍ경주ㆍ포항병원, 건국대병원, 삼성서울병원, 서울대병원, 서울보훈병원, 영남대의료원, 건양대병원 등 13곳을 조사한 결과 대다수 병원법당이 법당을 운영할 스님과 자원봉사자 부족, 그리고 열악한 재정으로 상당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한 스님이 법당 3곳 ‘관리’
실제로 이번에 조사한 13개 병원법당 중 2명 이상의 스님이 함께 일하고 있는 곳은 단 한곳도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심지어는 상당기간 지도법사가 없어 법당 운영이 되지 않았던 곳도 있었다.
건양대병원 법당의 경우 올해 성원 스님이 오기 전까지 지도법사가 자주 바뀌고 그 와중에 공석이 되는 경우가 발생하면서 제대로 운영이 되지 못했다. 올해 초 개원한 울산대병원 법당은 맡겠다는 사람이 나서지 않아 폐쇄됐다고 한 스님은 전했다.
그나마 사정이 좀 낫다는 종립 동국대 경주병원ㆍ경주한방병원ㆍ포항병원의 경우는 한 스님이 세 곳의 법당을 맡고 있고, 동국대 일산병원과 삼성서울병원 등 대형병원의 법당들도 스님 부족으로 효율적인 활동을 하지 못하고 있다.
동국대 일산병원 법당 지도법사 중제 스님의 경우 직원 친절교육과 정신과 병동 프로그램 참여, 외부인사 접견 등 업무가 과중해 환자들을 돌아볼 시간마저 없을 정도여서 병원 재단측에 인력을 요청했지만 아직까지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다.
삼성서울병원 법당 지도법사 견허 스님은 “암 환자가 많은 병원 특성상 스님의 역할이 중요한데, 혼자서는 한계가 있다”며 안타까워했고, 다른 병원 지도법사들 역시 한계에 봉착해 있다고 하소연한다.
개신교의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원목실(법당과 같은 개념)에는 15명의 관계자가 일하고 있고, 가톨릭의 강남성모병원 원목실에는 7명의 신부와 수녀가 활동하고 있는 것과 비교하면 불교계 인력수치는 10%수준을 밑돈다.
병원법당 지도법사들은 “환자들을 돌아보고, 상담에 응하고, 법당을 관리하고, 자원봉사자들을 운영하는 등 많은 역할을 해야 하기 때문에 한 곳에 최소한 2~3명은 돼야 병원법당의 본래 기능을 유지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전문성 떨어지는 자원봉사
자원봉사자 부족 역시 심각한 상황이다. 올해 5월 개원한 건국대병원법당은 자원봉사자가 없어 제대로 활동을 하지 못하고 있고, 150명의 자원봉사자가 있는 영남대의료원과 50~60명의 자원봉사자가 활동하고 있는 동국대 일산병원을 제외한 나머지 병원법당들은 10~40명 정도로 자원봉사자 부족에 시달리고 있다. 그리고 이는 다른 종교에 비해 활동력이 뒤처지는 이유로 작용한다.
또 어느 정도 자원봉사자가 있다고 하더라도 이들의 활동이 도서대여나 환자복 세탁 등 단순한 노력봉사에 그칠 뿐 가장 필요한 호스피스나 종교봉사(환자들과의 상담)에는 나서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건양대병원 법당 지도법사 성원 스님과 견허 스님 등 병원법당 지도법사들은 한결같이 “호스피스 등 종교봉사활동을 할 수 있는 인력이 필요한데 그런 인력은 거의 찾아보기 어렵다”며 고충을 토로하고 있다.
제도적 장치 마련해야
병원 지도법사들은 이런 총체적인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는 몇 가지 대안을 제시했다. 우선 스님 인력충원을 위해서는 동국대 종비생(학인스님)들과 강원학인들이 의무적으로 사회봉사(병원법당 포함)를 할 수 있는 제도를 갖추는 것이다.
삼선승가대가 호스피스 강좌를 개설하고 학점을 인정해주는 제도를 도입, 30명의 학인들이 서울 보훈병원에서 일주일에 2번 환자상담 등의 활동을 하고 있는 것이 그 예다.
자원봉사인력은 병원법당의 지역사찰과 연계하는 방법이 가장 효율적이다. 서울아산병원의 경우 불광사 신도들이, 삼성서울병원은 능인선원 신도들이, 영남대의료원은 영남불교대학신도들이 숨통을 틔워주고 있다.
특히 호스피스 등 종교봉사활동을 할 수 있는 인력 양성과 병원 특성에 맞는 프로그램 운영은 필수적이다. 영남대의료원 불자회는 이를 위해 ‘병원불교학교’개설을 추진하고 있다. 조만간 세부운영프로그램이 확정되는 ‘병원불교학교’에서는 환자와 보호자에게 맞는 신행과 환자 간 토론 및 나눔 시간, 의학지식 정보교환 등의 다양한 프로그램이 운영되며, 장기적으로는 호스피스와 자원봉사 프로그램도 운영해 병원법당이 필요로 하는 종합적인 기능을 갖춰나갈 방침이다.
영남대의료원 지도법사 정법 스님은 “병원법당이 스님 개인 원력에 기대는 반면, 개신교나 가톨릭은 지역 교회나 교구차원의 조직적인 지원에 의해 운영되기 때문에 큰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고 안타까움을 토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