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므로 우파 좌파, 라이트니 레프트니, 어떤 쪽에든 관심과 지지를 나타낼 수도있고 이의와 반대를 표시할 수도 있다. 그러한 의미에서는 지난 11월 6일 모임을 가졌던 ‘불교라이트연합’ 준비행사에 대하여 우리는 아무런 참견을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
우리는 그러한 모임에 공개적으로 그리고 집단적인 모습으로 종교인들, 특히 스님들께서 상당수 참여하고 있는 광경에는 한 말씀을 드리지 않을 수 없다.
앞에서도 말씀드렸지만 성직자들도 국적과 시민권을 가진 국민인 이상 개인적으로 어떤 정파(政派)에 대해 사적인 자리에서 개인의 의견을 표시할 수 있고, 자기가 바람직하다고 생각하는 쪽에 투표할 자유와 권리를 당연히 갖고 있음은 물론이다.
그러나 우리는 여기서 불교 수행자들의 위치와 성직자 제도의 근본 취지가 무엇인지에 비추어서 깊이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는 점들이 있다고 여긴다.
스님들의 경우 사바세계인 세속의 시비를 초월해서 인천(人天)의 스승이 되고자 출가라고 하는 혁명적 결단을 행동으로 보인 분들이다. 다른 종교의 성직자와는 차원이 다른, 지성인 중의 지성인이 되고자 한 분들이다.
아니 지성인의 차원도 넘어서서 일체의 시비곡직과 분별을 떠나 깨침의 도리를 행동으로 보이시려 정진하시는 분들이다. 그러므로 우리들 신도들은 그 분들을 법상에 모시고 경배하며 청법가를 올리는 것이다.
물론 출가를 하였다고 하여서 단번에 완전히 일체의 이해관계와 시비곡직을 벗어나거나 초월할 수는 없고, 또 초월하거나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해서 그러한 것을 꼬집어서 지적하거나 나무랄 수는 없다고 본다.
그러나 최소한 그러한 출가 초발심의 서원이 바람직하며 옳은 방향이라고 하는 것에 대해서는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으리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일 출가자가 세속의 시비곡직과 이해관계에 개입하는 경우에는 사적인 경우에도 편가름이 될 수 밖에 없고, 결국은 시비에 말려들어 한 쪽에 대해서는 이익을 주고 편을 드는 것이 되며, 다른 쪽에 대해서는 억울함이나 피해를 주는 결과가 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그런데 하물며 이해관계와 시비곡직의 그물 한 복판에 놓여 있는 공적이고 사회적인 일, 더군다나 정치와 바로 관련되는 집단의 조직에 관여하여, 어느 한 편을 들고 공개적으로 참여한다면 어떤 결과가 되겠는가?
극히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고는 바람직스럽지 않은 일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는 사람들도 상당수 있다. 반드시 그런 사람들이 우를 싫어하고 좌를 좋아 한다거나, 무조건 뉴라이트의 취지를 반대한다거나 전혀 이해할 수 없다거나 하는 것이 아니다.
설령 공감하고 이해한다고 하여도, 우리 불교의 이상과 지고한 가치 기준에 비추어서 볼 때 참으로 애석하고 아쉬운 대목이 있기 때문이다. 극히 예외적인 경우란 어떤 것인가?
혹자는 임진왜란 때의 호국승병의 경우가 그것에 해당한다고 말할 지도 모르겠다. 원광법사의 세속오계의 살생유택(殺生有擇)도 이런 경우를 두고 한 말이라고 해석한다. 계율에도 개차(開遮)가 있다고 하며 이런 경우에는 살생의 계율을 깨뜨려도 무방하다고 받아들이는 입장에서 이를 합리화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이런 것에 대해서는 아주 엄격하게 해석해야 한다. 도망가는 사슴을 쫓는 사냥꾼에게 사슴이 간 방향을 일러주지 않고 거꾸로 일러주는 거짓말을 했다고 해서 불망어계(不妄語戒)를 깨뜨렸다고 할 수 없지만, 이런 편법을 방편이란 이름하에 쉽게 열어 놓아서는 아니 된다.
과연 작금의 움직임이 이러한 경우에 해당되는 것인가? 혹자는 대한민국이 풍전등화의 위기에 놓여있으므로 임진왜란과 같은 상황이라고 주장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지금의 상황은 비록 각자의 이해와 의견에 따라 찬반이 갈라지고 의견이 분분하기는 하지만, 분명히 헌법과 법률상의 제도 하에서 국민이 선출한 대표들에 의하여 표현되고 전개되고 있는, 법치주의 내의 일이다.
우리나라의 헌법과 법률이 엄연히 살아있기 때문에 이 헌법과 법률의 정당한 절차(due process)를 따라 해결되어야 하고 해결할 수 있는 상황인 것이다. 그러므로 왜인들의 무법천지였던 임진왜란 상황과는 판연히 다르다.
현재의 상황에서는 얼마든지 일반 국민들이 개인의 사적인 경로나 공적 사회적 집단의 방법을 통해서 법률상 보장된 결사와 집회 및 시위의 권리와 자유를 행사할 수 있음은 물론이다. 그런데 여기서 필자가 말하는 것은 일반 국민의 경우를 두고 하는 것이 아님을 다시 한 번 상기시키고 싶다.
위의 모임에서 발표한 취지문을 보면 ‘현재 극단적인 좌우로 대립, 갈등, 국론분열이 전개되고 있고, 선동정치나 편가르기 정치 그리고 갈등조장행위 등이 일어나고 있다’고 지적하면서 ‘이를 배격해 나가겠다’고 하였다.
그런데 이러한 집단적인 행위에의 불교 성직자들의 참여 그 자체가 벌써부터 불교계를 비롯한 사회일반에 찬반을 비롯해 의견이 분분하게 만들고, 어진 불교도들 마음에 내상을 내면서 갈등과 대립을 일으키고 있다고 한다면 이 얼마나 슬픈 일이며 아이러니한 일인가?
| ||||
사람에 따라서는 지금이 삼일운동과 같은 운동을 전개해야 할 그러한 상황이라고 외치고 싶을 지도 모르겠다. 오죽 답답하고 안타까웠으면 그러할까 전혀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아무래도 바람직 한 점 보다는 바람직하지 못한 점이 많을 것 같고, 우리 불교계 전체로 봐서 얻는 것 보다는 잃는 것이 훨씬 많을 것이다.
불교 수행자들의 공개적 조직적 정치 관련행위, 그것은 어떤 분들의 의견은 될 수 있고 그 의견 자체로서 존중받아야 할 점이 있을 수도 있겠지만, 모범을 보여야 할 종교지도자로서는 결코 바람직하다고는 할 수 없는 것이다.
삼계의 도사와 인천의 스승이 되겠다고 출가한 수행자들이라면 좌우를 막론하고 포용하고, 좌우의 편가르기를 넘어서서 좌우를 지양하고 발전시켜 보다 나은 차원으로 나아가도록 정진하게 인도하여야 할 책무가 있다고 보는 불자들의 마음도 헤아려 주시기를 부처님 전에 기도하고 싶은 심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