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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00명 65대 버스에 나눠 타고 통도사로
10월 17일 낮 12시, 오전 내 고요하던 양산 통도사의 적막이 갑자기 깨졌다. 65대의 버스에 나눠탄 2500여 불자들이 한 순간에 들이닥쳤기 때문이다. 도선사(주지 혜자) 108사찰 순례단이다. 단일 사찰 행사로는 좀처럼 보기드문 엄청난 규모이기에 그 자체를 보는 것만으로 통도사를 찾은 관광객들의 입이 딱 벌어졌다.
도선사는 ‘혜자 스님과 함께 떠나는 108사찰 순례기도’ 첫 장정의 닻을 영축총림 양산 통도사에서 올렸다. 통도사에 속속 도착한 순례단은 각자 준비해 온 도시락으로 점심 공양을 마친 후 오후 1시 일주문 앞에 가지런히 정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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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례단은 ‘관세음보살’ 정근을 하며 점심 공양으로 잠시 풀어졌던 마음을 다잡았다. 이번 행사 총지휘자인 혜자 스님을 선두로 독경소리에 맞춰 일주문부터 금강계단까지 도보순례가 시작됐다.
참가자들의 긴 행렬은 끝간데 없이 한동안 이어졌다. 그들 속에는 1m도 안되는 지팡이 하나에 의지해 걸음을 옮기는 노보살, 쌀 1되를 넣어 무거워 보이는데도 힘겨워하지 않고 열심히 따라오는 50대 보살, 말쑥한 양복 차림에 ‘관세음보살’을 외치며 씩씩하게 걸어나오는 거사 등이 있었다.
행렬은 잠시 부도전 앞에 멈춰 통도사 출신의 역대 고승대덕들에게 삼배를 하고 다시 이어졌다. 순례기도 법회는 대방광전에서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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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인파로 미처 대방광전에 들어가지 못한 순례단들은 경내 마당 한구석에 자리를 펴고 앉아 법문에 귀를 쫑긋 세웠다. 법문이 끝난 뒤 ‘삼귀의’와 ‘천수경’ 독경, ‘석가모니불’ 정근에 이어 108참회 기도가 시작됐다. 발디딜틈조차 없는 대방광전에서, 절 마당 한구석에서, 금강계단에서, 명부전에서, 마음을 한데 모아 하는 참회 기도는 그 자체가 장관이었다. 절의 횟수를 알리는 법사 스님의 죽비소리는 안 들리지만 이심전심으로 염주알을 굴려가며 108배를 했다. 그야말로 처처(處處)가 불심가득한 법당이었다.
매달 한곳 이상 참배…9년의 여정
이날 순례의 하이라이트는 법회가 끝난 뒤 마련된 금강계단 적멸보궁 사리탑돌이. 일반에게 좀처럼 공개가 안되는 적멸보궁에서 참가자들은 ‘석가모니불’ 정근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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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근이 끝난 불자들에게는 이날 법회 참석 증명서인 낙관을 혜자 스님이 펴낸 <마음으로 찾아가는 108산사> 책 속 통도사 편에 찍어 주었다. 아울러 통도사 글자가 깨알같이 새겨진 염주알도 하나씩 증정됐다. 108곳 사찰 순례를 모두 마치게 되면 저절로 108 염주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도선사 주지 혜자 스님은 “108 산사에서 108 배하며 108 번뇌소멸하고 108 염주를 만들어 가는 소중한 인연공덕을 쌓길 바란다”며 “<마음으로…>에 해당 사찰을 방문할 때마다 소감을 적을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 자식들이 순례기도에 동참한 부모님들의 불심을 오래도록 가슴에 새기며 본받을 수 있도록 해 놓았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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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통도사에서 첫 발을 내딛은 ‘도선사 108사찰 성지순례기도’는 11월 7일 법보종찰 해인사, 11월 29일 승보종찰 송광사에서 진행된다. 매달 1개 사찰 참배를 원칙으로 하고 있지만 지역 상황에 따라 두 개의 사찰도 찾아갈 예정이기에 108 산사 순례는 자그마치 9년여의 대장정이 될 것이다.
“108 산사서 108배하며 108번뇌 소멸”
올해 삼보종찰 참배를 끝내면 내년부터는 제주도 관음사에서부터 금강산 건봉사까지 전국의 사찰을 두루 돌아보게 된다. 돌아오는길에는 인근 군법당도 들러 위문품과 쌀 등을 전달할 계획이다. 혜자 스님은 남북관계의 냉기류가 풀린다면 내친김에 금강산 신계사와 보현사까지도 갈 생각이라고 밝혔다.
3시간여 동안 진행된 108사찰 첫 기도순례는 참가자들이 배낭 한가득 짊어지고 온 쌀을 한데 모은 30가마를 통도사측에 전달하는 것으로 여법하게 회향됐다. 쌀 한되와 도시락 등 속세에서 10㎏이상된 무거운 짐을 짊어지고 온 참가자들은 가벼워진 배낭만큼 시름과 번뇌도 다 내려놓은 듯 가벼운 발걸음으로 일주문을 나섰다.
이색참가자들
권영희보살-질병 무릅쓰고 불심으로
새벽 4시에 일어나 참가했다는 권영희 보살(79·서울시 노원구 공릉동)은 고혈압에다 허리 디스크로 건강이 무척 안 좋았지만 부처님을 만나러 간다는 일념으로 다리를 질질 끌면서 통도사 금강계단까지 왔다. 하지만 금강계단 앞에 도착하자 온몸에 경련이 일어나 경내 구석에서 한동안 안정을 취했지만 탑돌이에 동참, 열심히 기도했다. 권영희 보살은 법회가 끝나자 “적멸보궁앞에 서니 육신의 고통이 다 달아나고 환희심이 벅차 오른다”고 해 주변을 감동시켰다.
▲안젤라 수녀-적멸보궁서 편안함 느껴
의정부의 한 성당에 있다는 안젤라 수녀님은 어려서부터 불교집안에서 자라 사찰문화에 대한 동경이 많다. 도선사 신도인 이웃 주민의 권유로 이날 참석한 안젤라 수녀는 “일반인들에게 공개가 잘 안되는 곳이라기에 호기심으로 적멸보궁에 들어갔다 왔는데 웬지 모르게 마음이 편안해 졌다”며 “성당에서도 가끔씩 성지순례를 가지만 오늘 도선사 순례기도 행사처럼 이렇게 엄청난 규모는 처음 본다”고 신기해 했다.
▲김홍균 거사- ‘매회마다 동참’ 발원
수천의 보살들속에는 가뭄에 콩나듯 거사들도 눈에 띠었다. 이중 김홍균 거사(50·서울시 송파구 잠실동)는 재적 사찰인 도선사외에는 다른 사찰에는 한번도 가본적 없는 특이한 이력의 불자다. 아들의 대학입학 합격 발원 기도를 위해 도선사만 다녔었는데, 지난 10월초 모집중인 성지순례 동참 회원으로 등록하고 108사찰 순례의 발원을 세웠다. 그는 “지금의 마음처럼 회향하는 그날까지 한번도 빠지지 않고 꼭 참가해 108 염주알을 다 꿰어 놓겠다”고 의욕을 나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