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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포대 역사문화학부 최연식 교수는 최근 논문 ‘<대승사론현의기>의 찬술지역과 찬자에 대한 재검토’를 발표했다. 최 교수는 “<대승사론현의기>의 저자는 백제의 승려 혜균이 확실하는 증거를 고증했으며 불교 삼론학의 개론서인 이 책은 7세기 중후반 저술된 원효의 <대승기신론소>보다 60여년 가량 앞서 저술됐다”고 밝혔다.
최 교수는 혜균이 백제 승려라는 결정적 증거로 이 문헌에 나오는 절 이름 ‘보희사(寶熹寺)’가 2000년도에 부여 능산리 절터에서 발견된 목간(木簡)에 기록된 ‘보희사(寶熹寺)’와 일치한다는 점을 들었다.
최 교수는 “<대승사론현의기>의 내용 중 ‘현재 이곳의 보희연사(寶熹淵師)…’에서의 ‘현재 이곳’이란 편찬 지역을 의미하고 보희연사는 백제 보희사의 연사 스님을 지칭한다”며 “2000년도 능산리에서 발견된 목간의 판독에서 보희사는 백제의 사찰임이 증명됐기 때문에 ‘현재 이곳’은 백제가 확실하다”고 주장했다.
최 교수는 또 “<대승사론현의기>가 원효의 <대승기신론소>보다 60년 앞선 600년 경에 저술됐다는 주장에 대해 ‘중국 삼론종 중흥의 시조’ 길장(549~623)의 <대승현론>이 내용상 혜균의 <대승사론현의기>를 의식하며 편찬됐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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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장의 <대승현론>의 내용 중에는 이미 혜균이 <대승사론현의기>에서 서술한 개념들이 중첩되고 있기 때문이다. <대승사론현의기>이 600년 경에 저술됐다는 결정적 증거는 이 문헌의 내용에도 들어 있다. 문헌에서는 ‘길장이 장안으로 간 599년이 기록돼 있고 일본 승려가 일본 왕에게 <대승사론현의기>의 필사본을 바친 해가 658년이다’라고 명기돼 있다. 따라서 이 문헌의 저술시기는 599년과 658년 사이가 된다는 것이 최 교수의 주장이다.
삼국시대 이전 책으로 편찬된 우리 문헌이 사실상 전해지지 않는 현실을 감안할 때 혜균의 <대승사론현의기> 필사본의 발견은 한국의 사상사 연구 등에서 엄청난 의미를 가진다.
동국대 김성철 교수는 “최 교수의 논문을 검토한 결과 <대승사론현의기>는 600년 경에 저술된 백제의 불교문헌으로 우리나라 최고(最古)의 문헌이 확실하다”며 “이로써 7세기 초 백제 불교계의 동향 및 6세기 중국 삼론학의 초기적 모습을 연구하는데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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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서 삼론학의 사상을 담고 있는 <대승사론현의기>를 통해 고구려, 백제 및 그 영향을 받은 고대일본 불교계의 중심사상인 삼론학 연구도 활기를 띨 것으로 보인다.
한편 최연식 교수와 독일 보쿰대 한국학과 플라센 교수의 연구성과는 10월 20일 서울대우빌딩 8층 세미나실에서 열리는 한국사연구회와 목포대 공동 주관의 세미나 ‘백제 승려 혜균과 <대승사론현의기>의 재발견’을 통해 학회에 정식 발표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