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종일 사찰을 찾는 신도가 단 한명도 없다.”
정기법회에 나오는 신도가 없어 문을 닫을 지경이라고 어려움을 호소하는 사찰이 늘고 있다. 신도 감소는 시주금 감소로 이어져 사찰존립까지 위태롭게 한다. 서울 보다는 지역, 도시 보다는 농어촌에 위치한 사찰일수록 심각하다. 더 이상 우려가 아닌 엄연한 현실로 다가온 사찰의 위기, 그 현주소를 짚어본다.
◇도시-농어촌사찰 양극화 심화
올해 정부가 핵심과제로 꼽은 양극화 해소는 우리나라의 정치·경제·사회에 한정된 문제가 아니다. 범위를 좁혀 불교계의 속사정을 들여다보아도 도시와 농어촌 사찰간 양극화 현상이 뿌리내리고 있다. 따라서 사찰경제가 ‘위기’라고까지 느끼는 사찰도 적지 않다.
서울 조계사, 봉은사, 도선사, 불광사, 구룡사, 부산 삼광사, 안국선원, 대구 관음사, 안양 한마음선원, 일산 여래사…. 이름만 들어도 알만한 대규모 사찰은 전부 대도시에 위치해 있다. 반면 농어촌지역, 특히 깊은 산중이나 오지에 위치한 사찰은 점점 사세가 약화돼 독살이 또는 토굴로 전락하거나 명맥만 유지하는 곳이 늘고 있다.
같은 지역 내에서도 양극화 현상은 또다른 양상으로 나타난다. 이름이 알려진 큰스님이 주석하고 있거나 체계적인 교육체계와 신도관리체계를 갖춘 사찰로 사람들의 발길이 쏠리는 현상을 보인다. 원찰을 갖지 않거나 불교에 귀의하지 않은 잠재적 불자들이 많은 사찰 가운데 마음에 드는 곳을 정서에 따라 선택하고 있는 것이다. 도시와 농어촌 사찰간 양극화가 대체적으로 입지에 따른 현상이라면, 이는 국민들의 의식수준이 높아지면서 빚어진 현상이다.
경북 봉화지역의 경우는 이를 잘 보여주는 사례다. 봉화는 최근 축서사와 각화사로 신도가 집중되고 있다. 반면 읍내에 위치해 전통적으로 강세를 보였던 기존 사찰들은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축서사와 각화사가 선지식으로 잘 알려진 무여 스님, 고우 스님의 지도하에 체계적인 신도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한다는 소식이 널리 알려지면서 나타난 현상이다. 사찰의 양극화는 농어촌·소규모 사찰일수록 취약한 재정구조와 인력·조직 구조를 지니고 있어 개선될 여지가 많지 않다.
◇신도 감소…시주금으론 못산다
통계청이 지난 5월 발표한 ‘2005 인구주택총조사’ 결과에 따르면 전체 종교인 가운데 불교신자의 구성비는 22.8%로 10년전에 비해 0.4% 감소했다. 74.4%의 성장률을 보인 가톨릭에 비교할 경우 불교의 성적표는 매우 초라하다. 여기에는 불교에 우호적 성향을 보이는 잠재불자들도 상당수 포함된 것이라는 분석이 일반적이다. 따라서 실제 불자수는 22.8%에 다소 못 미칠 것이라는 분석이다.
조계종 사찰의 경우 전체 2368곳 가운데 80%에 해당하는 소규모 사찰들의 신도수는 평균100명 안팎인 것으로 사찰경영연구소는 분석하고 있다. 1년에 1~2회 정도 사찰에 가는 ‘명목불자’의 비율이 70%에 달하는 불교계의 현실을 감안하면 소규모 사찰들의 신도수는 30명 내외에 불과하다는 계산이다.
깊은 산중이나 오지의 일부 사찰들은 법회 참석인원이 10명에도 미치지 못할 만큼 위기에 처했다. 일례로, 불교 강세지역으로 분류되는 경북 영양의 한 사찰은 산간오지의 입지조건을 극복하지 못하고 ‘신도 제로’에 직면해 있다. 법회 때에는 3~5명이 고작이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주지스님을 뒷바라지하던 공양주마저 사찰을 떠났다.
이대로 가다가는 법회도 열지 못하는 사찰이 속출할 것이라는 위기의식이 점차 확산되고 있다. 도심지역의 대규모 사찰 중에도 사회환경의 급격한 변화와 타종교 또는 인근 사찰과의 치열한 경쟁에서 밀리는 양상을 보이는 곳이 생길 정도다.
신도수 감소는 시주금 감소로 그대로 이어져 사찰경제에 직격탄으로 작용하고 있다. 해마다 연등수입이 줄었다는 사찰현장의 소리도 이런 분위기에서 기인한 것이다. 시주금 감소는 사찰의 재정구조를 취약하게 만들고, 이는 사찰의 포교·신행활동 저하로 연결돼 악순환을 개선시킬 수 있는 여지마저 없는 상황이다. 사찰경제가 ‘위기시대’를 맞았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유승무 중앙승가대 교수는 “최근 붐을 이루고 있는 산사음악회나 사찰축제와 같은 이벤트의 배경에는 지역사찰의 경제적 어려움을 타개해보려는 계산도 들어있는 경우가 많다”며 “신도가 없는 농어촌사찰의 주지 소임을 기피하는 웃지 못할 해프닝도 발생하고 있으니 사찰경제가 얼마나 어려운지 짐작이 가지 않느냐”고 문제의 심각성을 전했다.
◇시대변화 수용 못해 위기 자초
신도수 감소로 인한 시주금 감소, 이는 또다시 사찰의 활동 제약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의 원인은 국민들의 생활패턴 변화와 의식 성장 등의 시대적인 변화를 수용하지 못한데서 비롯됐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정부를 비롯해 공공기관, 기업, 사회단체들은 민주화의 거센 물결을 거치며 적극적이고 개방적으로 진화했지만, 사찰은 구태의연한 방식을 그대로 답습하며 사회적 변화에 발맞추지 못했다는 것이다.
특히 농어촌사찰의 경우 인구 격감, 수입 감소, 고령화 등 주변환경의 변화가 극심한데도 불구하고 일손이 모자라는 농번기에도 초하루법회를 고집하는 등 변화하지 않음에 따라 신도수가 줄어들고, 이는 사찰경제의 위기로 연결되고 있다.
사찰의 운영실태를 연구해 온 정웅기 사찰경영연구소 부소장은 “사찰운영 전략의 부재에서 빚어진 투명성의 결여, 독단적 운영, 사회공헌도 미약 등에서 사찰경제 위기의 원인을 찾을 수 있다”고 진단했다. 사회적인 분위기는 점점 투명성 있는 운영과 대중 합의에 의한 운영을 요구하고 있는데도 사찰은 불투명하고 신도를 외면하는 운영으로 일관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심지어 폭력사태, 공금횡령과 같은 시대에 역행하는 행태가 불교 이미지 실추, 신도 감소로 이어졌고 지적한다.
그러나 희망은 있다. 지역적 특성과 사찰의 여건에 맞추어 활로를 모색하려는 사찰들이 늘어나고 성공사례도 있기 때문이다. 경제공동체, 생산불교, 지역민 참여프로그램 등을 통해 지역민들의 호응을 이끌고 있는 일부 사찰들의 시도는 눈여겨볼만하다.
공주 영평사, 강화 선원사, 김제 청운사, 함평 용천사 등은 지역민들의 일손으로 구절초, 죽염, 연꽃, 상사화 등을 재배해 호평을 얻고 있다. 축구대회, 일손 돕기, 봉사활동, 문화프로그램으로 지역민을 사찰로 끌어들이면서 호감을 사고 있는 평창 월정사와 구례 화엄사, 해남 미황사, 합천 해인사 등도 모범적인 사례로 꼽힌다.
또 사찰경영 연구를 올해 중점과제로 선정해 추진하고 있는 실천불교전국승가회의 활동은 사찰경영기법을 개발하기 위한 첫 시도라는 점에서 주목할만하다. 실천불교승가회는 일본·대만의 선진사찰 견학, 사찰경영 세미나 개최 등을 통해 바람직한 사찰경영 모델을 개발하고 있다.
박경준 동국대 교수는 “불사로 시주를 유도하거나 산사음악회와 같은 프로그램으로 신도수 감소현상을 모면해 보려는 일련의 움직임은 단기적 처방일 뿐”이라며 “사찰경제 현황에 대한 정확한 진단과 사례별 경영기법 연구, 적용을 위한 인프라 구축 등이 종단 차원에서 종합적으로 이뤄지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