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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사경력 15년, 등록시간 4800시간"
[시방세계]‘봉사 보살’ 심귀남 씨의 하루
10월 12일 시립동부병원 물품정리실에서 심귀남씨(왼쪽)가 조계종사회복지재단 연화회와 함께 환자복을 정리하고 있다. 예순을 넘긴 나이에도 활발한 봉사활동을 펼친다.

자원봉사 스케줄로 꽉찬 일주일
10월 9일 월요일 오전 10시. 심귀남(65·서울시 동대문구 장안동)씨는 서울 경희의료원으로 향한다. 매주 월요일 이곳 안내데스크에서 업무보조 자원봉사를 하기 때문이다. 안내데스크는 추석연휴가 끝나자마자 몰려든 환자들로 벌써부터 북적거린다. 외래환자들의 진료카드와 보험처리업무 등을 돕고 나니 순식간에 반나절이 지나간다.
화요일 오전 10시. 오늘 심씨가 찾은 곳은 서울시립중계노인복지회관이다. 4명의 다른 자원봉사자들과 함께 이곳 주간보호센터에 몸을 위탁하고 있는 독거 어르신들에게 뜸ㆍ부황 치료를 하기 위해서다. 중계노인복지회관에서 봉사활동을 펼친 것도 어느새 5년. 벌써 물리치료실 입구에는 심씨의 손길을 기다리는 팬(?)들이 몰려있다. “어여 와. 그동안 꼼짝없이 집에 누워있었더니 여기저기 얼마나 아프던지. 심선생 생각이 많이 났지.”
심씨는 어르신들에게 일일이 “연휴동안 잘 계셨어요?”라고 물으며 능숙하게 쑥뜸을 뜰 준비를 한다. 곧 향긋한 쑥 향기가 물리치료실 안에 진동한다.
매주 만나는 얼굴이다 보니 이제는 어르신들의 이름과 몸 상태까지 훤히 꿰고 있다. 이 할아버지는 팔 관절이 결리고, 저 할머니는 머리가 아프고….
심씨(왼쪽)가 12일 오후 노숙인쉼터 서계 보현의 집에서 다른 봉사자들과 함께 저녁을 준비하고 있다.

중풍을 앓는 김성태(71) 할아버지도 그중 한 사람이다. 처음 심씨를 만났을 때는 중풍 때문에 손가락 한 마디도 못 움직이던 김 할아버지는, 몇 차례 뜸봉사를 받은 뒤 기적같이 손가락 감각이 돌아오기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 날 저녁, 혼자 힘으로 숟가락을 쥐게 된 할아버지는 너무 기쁜 나머지 눈물을 뚝뚝 흘렸다. 가장 먼저 감사 인사를 받은 이는 물론 심씨였다.
목요일. 심귀남씨는 아침이 밝기 무섭게 집을 나선다. 오늘 향하는 곳은 시립동부병원이다. 200여개의 병상에서 나오는 환자복과 시트, 이불을 정리하고 깨끗이 다려진 환자복을 병실로 배달하는 일을 오전 내내 한다. 물론 무급봉사다. 잠깐 숨을 돌리며 커피 한잔 마시는 것도 잠시, 오후 2시에는 다시 용산구 서계동으로 향한다. 노숙인 쉼터인 서계 보현의 집으로 가 노숙인들에게 밥상을 차려주기 위해서다.
봉사는 주말에도 계속된다. 영등포 보현의 집에서 토요일과 일요 일을 고스란히 급식봉사로 보낸다. 뿐만 아니다. 한 달에 한 차례 매달 마지막 수요일마다 따로 경기도 화성 자제정사 양로원에서 청소와 목욕봉사를 하고, 매월 셋째 수요일에는 불교여성개발원 회지발송 작업을 무보수로 돕는다.

재해현장 전국 어디든 달려간다
심귀남씨는 틈날 때마다 조계종 사회복지재단의 행사도 지원한다. 지난 2003년 태풍 매미로 피해를 입은 경남지방으로 조계종사회복지재단이 재해대책기구를 파견했을 때도 함께 갔고, 2005년 4월 양양 낙산사에 산불이 나자 그 현장으로도 급히 달려갔다.
올해 월정사 인근지역에 수해피해가 나자 긴급재난구호 봉사단원으로 참여해 이틀을 평창에서 보냈다.
무르익은 사랑이 그의 손끝에서 나온다.

그야말로 전방위 봉사다. 아프고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 있는 것을 알게 되면 언제 어디든 달려간다. 본인이 예순을 넘겼으니 쉬 피곤할 만도 하고 도리어 봉사를 받을 나이이건만, 심씨는 ‘힘들기는커녕 봉사로 삶의 활력을 느낀다’며 “봉사의 참맛은 사람 만나는 기쁨”이라고 말했다.
“도와드릴 분이 있다는 것이 더없이 고맙죠. 그간 만난 분들의 삶이 바뀔 때 가장 큰 보람을 느껴요. 제 나이가 많기 때문에 더 잘 헤아리고 이해할 수 있는 것 같아요. 쉬고 싶지 않냐구요? 천만에요. 아직 이렇게 몸이 튼튼한 걸요. 몇 년이고 더 봉사할 수 있어요.”
봉사경력만 15년. 1995년 조계종사회복지재단(상임이사 지현)이 창립된 이후로는 재단에 등록해 현재까지 자원봉사단 소속 봉사자로 활약하고 있다.
재단에 등록된 봉사활동 시간만도 4천8백시간에 이른다. 공식적인 봉사활동 기록은 다 열거하기조차 힘들다. 식사보조, 목욕수발, 청소, 세탁, 간병, 이미용, 경락, 뜸, 부황, 발반사요법 봉사 등 안 해본 봉사가 없다.
5년째 심씨와 함께 자원봉사활동을 펼치고 있는 자원봉사단 연화회 팀장 윤문자씨는 “보살님은 자원봉사팀의 맏언니”라며 “젊은 봉사자들에게는 없는 여유와 배려로 현장 분위기를 이끌고, 항상 ‘아우님들, 우리 함께 봉사가야지’라며 이끄는 우리 팀의 ‘꽃’”이라고 자랑했다.

죽음문턱에서 세운 봉사 원력
심씨의 열정적인 봉사활동은 불교신행과 연륜을 같이 한다. 무교였던 심씨는 15년 전 불교에 귀의하면서 서울 조계사 신도로 등록했고, 이후 조계사 만발식당봉사, 초파일 인등접수봉사 등을 통해서 ‘사람 만나는 즐거움’을 익히기 시작했다. 관심조차 없던 봉사활동에 재미를 붙이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나 1996년 심씨는 돌연 병상에 눕게 됐다. 참기 힘든 복통을 느끼고 쓰러진 심씨에게 병원측은 ‘비장이 파열됐다’며 ‘3개월을 넘기기 힘들다’는 판정을 내렸다.
10월 10일 서울시립중계노인복지회관에서 쑥뜸봉사를 하는 심귀남씨(오른쪽). 다년간 하다보니 이제는 어디에 뜸을 떠야 하는지 훤히 안다고 말한다.

죽음 앞에서 심씨가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부처님께 기도하는 것 뿐이었다. 그러던 어느날 심씨는 꿈속에서 관세음보살이 불구덩이에서 자신을 구해주는 꿈을 꿨다. ‘나는 아직 안 죽는다’는 확신이 들었다. 심씨가 빠르게 병세를 회복하자 남편도 ‘부처님이 구해주셨다’고 기뻐하며 그 뒤 3개월 동안 매일같이 심씨를 조계사로 데려다 주며 같이 부처님께 감사기도를 올렸다.
이 일로 심씨는 봉사에 ‘원력’을 세우게 됐다. 병상에서 회복하자마자 아픈 몸을 부여잡고 바로 봉사활동에 나섰다. 부처님이 타인을 도와야 한다고 설한 이유를 알았다.
“봉사는 남을 돕는 것이 아니라 나를 찾는 일입니다. 15년 봉사하며 느낀 게 있다면, 절을 하건 불사를 하건 자원봉사활동을 하건 결국은 똑같이 공덕을 짓고 선업을 쌓는 일이라는 것입니다. 제 경우에는 봉사활동을 통해서 더 직접적으로 내 인생이 달라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지요.”
심씨는 “3개월 밖에 못 산다고 했던 내가 봉사를 하면서 10년이 넘게 살아있으니, 이것이야말로 부처님의 가피가 아니면 무엇이냐”고 반문했다.
봉사가 바로 신행이며 부처님 말씀을 실천하는 일이라고 믿는 심귀남씨는 오늘도 이웃을 돕기 위해 집을 나선다.
글=이은비 기자·사진=박재완 기자 | renvy@buddhapia.com
2006-10-13 오후 3:4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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