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에서 30여 년 동안 열심히 절에 다녔던 강모 할머니(78). 강 할머니는 2년 전 아들의 죽음을 계기로 개종했다. 며느리가 다니는 성당의 신부와 교우들이 밤낮으로 빈소를 지키며 아들의 명복을 비는데 감동받았기 때문이다. 상조회 며칠간의 봉사가 몇 십 년 동안 믿어 온 종교를 바꾸는 위력을 발휘한 것이다.
호스피스 관련 논문을 쓰고 서울 수효사 법인사무국에서 일하고 있는 황경자씨는 “임종을 앞두고 타종교의 자상함 때문에 주변 노인 불자들이 개종하자 복지대학에 다니는 노보살들도 개종하는 사례가 종종 있다”며 이 같은 상황을 뒷받침했다.
수효복지대학에서도 장의봉사 신청자에게 염불봉사 및 수의지급 등 정신적ㆍ물질적으로 지원하고 있지만 황씨는 “이 정도 지원도 가톨릭에 비하면 미미한 수준밖에 안 된다”고 털어놨다.
조계종 포교사단 전승평 사회복지분과위원장의 이야기도 이와 비슷하다. 전 위원장은 “가톨릭의 경우 병원을 중심으로 상조회가 활발하게 운영되고 있지만 불교는 아직 걸음마 수준”이라고 밝혔다.
전 위원장은 또 “기독교 계통 병원이 많다보니 기독교 상조회는 출입이 자유롭지만 불교 상조회는 출입하는데 어려움이 있다”며 현실적 어려움도 토로했다.
▷기독교에 비해 극히 미약
불교계 상조회에 대해 구체적으로 파악된 통계자료는 없다. 다만 서울 도심사찰 및 각 사찰 봉사회 등 주요 신행단체에 구성된 지장회, 염불회 등을 중심으로 상조회가 조직돼 있다. 이들은 주로 장례기간 동안 지속적인 방문과 독경으로 포교의 일익을 담당하고 있다.
상조회는 크게 두 가지로 나눠 볼 수 있다. 첫째는 일정금액 납부를 통해 장례발생시 금전적 부담을 덜어주는 방식이다. 대표적인 사찰은 부천 석왕사(주지 영담).
석왕사 ‘108 상조회’는 불자 및 일반인 1300여명을 회원으로 활발하게 운영되고 있다. 기본회원은 2만원씩 5년간 총 120만원을 납부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며, 일시불 납부시 10% 할인, 12개월 납부시는 5% 할인 등 납부기간에 따라 별도의 혜택을 주고 있다. 제공서비스로 장의용품 일체를 지급하고, 장례비품을 무료 대여해주며, 직계에 상제용품을 제공하고 있다. 또한 입관, 시다림 등 용역서비스 일체도 제공한다.
둘째는 염불봉사모임 형태를 띤 신앙공동체적 형태다. 대표적인 사찰이 능인선원(원장 지광).
‘능인상조회’는 매 불교대학 기수 중 6개월 후 졸업 예정자를 대상으로 모집한다. 장례 발생시 상조회장은 해당 기별 연락을 통해 상조회원을 동원하며 염불봉사는 오전 10시, 오후 3시, 오후 7시 등 3~4차례 방문해 2시간씩 한다. 장례절차, 문상객접대 등 필요한 모든 절차를 도와주며, 상조회 정회원에게는 납골당인 영묘전 분양 우선권을 주고 있다.
이 외에도 서울 구룡사, 대구 영남불교대학관음사, 인천 영산정사, 부산불교복지상조회, 대구지장불교상조개발, 대전아미타상조회, 청주연화불교상조회 등 사찰 및 불교단체에 상조회가 조직돼 있다.
불교자원봉사연합회 산하 구품연대, 부산 불교TV염불공양회, 전국불교장의연합회에 소속된 전국 14곳 지부의 장례업체에서도 염불봉사단이 있다.
하지만 이러한 활동은 타종교와 비교할 때 엄청나게 미약하다. 이는 단순히 상조회 활동 미약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신도관리체계에까지 영향을 준다. 또한 상장례를 포교 차원에서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있다는 증거도 된다.
▷왜 안되나?
상조회의 일차적 목적은 사찰 공동체의 결속력 강화에 있지만 이를 바탕으로 외형적 포교 확대도 꾀할 수 있다.
얼마 전 모 장관이 조계종 총무원장 지관 스님 예방시 불교계에서도 타종교처럼 공동체 문화가 활성화됐으면 좋겠다는 말을 한 것도 이런 맥락이다.
지난 수년간 많은 사찰에서 상조회가 생겼지만 2~3년을 버티지 못하고 사라졌다. 5년 전 모 사찰에서 운영했던 불교상례봉사교육과정이 중단된 것도 투명하지 못한 ‘재정’ 문제 때문이었다. 주지스님이 상장례에 대한 확고한 의지를 가지고 있어야 하고, 일정 기간 모여진 회비가 투명하게 공개되며, 정해진 용도로만 활용돼야 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가 다반사다. 그래서 혹자는 “재정 문제가 상조회 문제의 전부”라고 말하기도 한다.
상조회가 활성화되지 않는 또 다른 이유는 종단의 지원부족이다.
가톨릭의 경우 종단 차원에서 상조회를 조직·운영한다. 이에 비해 불교계는 종단 차원의 재정적 지원은 물론이고 일선 포교현장 스님들의 인식 부족으로 인해 지원이 원활하게 이뤄지지 않고 있다.
통일된 의식교육 부재도 한 원인으로 지목된다. 실제 많은 포교사들이 사찰별, 지역별, 지도법사별 의식의 차이에 대해 문제의식을 갖고 있지만 개선은 요원하다. 최근 조계종 포교원에서 〈한글통일법요집〉을 완간했지만 이를 현장에서 적용하기 위해선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사회전반의 의식부족도 불교계 상조회 운영의 어려움으로 작용하고 있다.
현재 염불봉사는 재적사찰 신도나 연고를 통해 이뤄지고 있다. 이러한 경계를 넘어 좀 더 많은 대중들에게 염불봉사를 하려고 해도 유족들의 이해 부족과 금전적 부담 우려 때문에 거절당하는 경우도 있다.
▷활성화 방안
최근 상업적 상조회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그런데 이 가운데 80~90%는 기독교인들이 운영하는 기업형 상조회로 알려지고 있다. 이들은 철저하게 상업적 목적을 띠고 있고 불교와는 전혀 상관도 없으면서도 광고나 팸플릿에 스님 사진이나 연꽃 불화 등을 넣어서 손님을 유치한다.
상장례 문화가 발달한 불교가 이들의 장삿속에 무방비로 당한다면 불심을 갖고 장례를 맡긴 이들에게도 큰 피해를 입히는 결과다.
불교계 상조회를 활성화시키기 위해서는 먼저 인적자원을 잘 활용해야 한다.
일반 사찰에서는 각각의 다른 신도모임을 이용해 염불봉사 등 상조회 활동과 관련한 각기 다른 수준의 교육을 시켜야 한다.
종단에서는 종합적 감독을 통해 수준별 교육과정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고, 사찰별 교육이수자에 관한 정보를 수집해 취합해야 한다. 이를 통해 사찰별 지역별 네트워크를 형성할 수 있다.
상조계 형식의 상조회 활동은 매달 회비로 인한 수입과 장례서비스 시 이익사업을 동반하는 경우가 많아 비교적 재정확보가 용이하다. 하지만 염불봉사 형식의 경우 일정 수입이 없거나 부족한 편이다.
따라서 재정확보를 위해 정부에 장묘문화 개선 대책 마련을 건의해 장례 시 화장을 조건으로 장려금을 지원받는 방안을 고려해 볼 수 있다. 또한 포교사단을 비롯한 신행단체에 대한 종단 지원금을 늘이는 방안도 추진해 볼 필요가 있다. 납골시설을 운영하는 사찰의 경우 그 수익금을 상조회에 지원하는 방법도 있다.
기존 상조회 조직의 효율성을 제고하는 것도 상조회 활성화 방법이다. 현재 사찰 신도모임은 각각 법회별, 연령별로 나뉘어 있다. 따라서 각기 다른 수준으로 교육함으로서 해당 소그룹 소속 신도의 소속감과 자긍심을 높일 수 있다.
이 외에도 종단 차원에서 상조회와 관련한 웹사이트를 개설하거나 기존 홈페이지에 상조회와 관련된 콘텐츠를 생성해 정보를 교류하는 것도 상조회 활성화에 많은 보탬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전국불교장의연합회 유재철 회장은 “사찰에서는 상장례 봉사단을 꾸려 철저하게 재보시 개념으로 가야하고, 상조회를 꾸릴 수 없는 작은 사찰이라면 여러 사찰이 공동으로 상조회를 운영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 될 것”이라고 조언했다.
▷우수 상조회 운영 노하우
서울 불광사(회주 지홍)에는 ‘연화부’가 있다. 광덕 스님때부터 오랫동안 교육받은 전문적이고 조직적인 단체다.
회원은 일종의 재보시 성격으로 각자가 가진 직업과 전문성에 따라 요리, 운전, 의식 등 자기가 할 수 있는 역할에 따라 봉사한다.
신도회 간부가 되기 위해선 3년 이상의 연화회 봉사경력 있어야 하기 때문에 연화회 팀장은 누구보다 존경받는 신도로 인식된다.
부천 석왕사(주지 영담)의 경우 상조회를 비롯해 장례식장과 납골당 등이 유기적으로 조직돼있는 종합장례시스템을 갖춘 것이 특징이다. 비용이 저렴하기 때문에 불자 뿐 아니라 일반인들도 많이 이용한다.
서울 봉은사(주지 원혜)는 최근 주지스님 의지로 상조회 통장을 누구도 손댈 수 없게 사찰회계에서 완전히 분리시켰다. 상조회가 돈을 만들면 삐걱거리기 일쑤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