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10.25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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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계사 일주문에 70년만에 현판 걸어
'대한불교총본산 조계사' 현판식 9일 봉행
70여년만에 조계사 일주문에 현판이 내걸렸다

‘대한불교총본산 조계사’ 현판이 70여년 만에 내걸렸다. 50~60년대 비구ㆍ대처의 분쟁으로 양측이 각기 조계사와 태고사명을 현판으로 달았다는 기록과 사진자료가 남아 있지만 사격에 맞는 현판을 내건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조계종 조계사는 10월 9일 오전 11시 30분 총무원장 지관 스님, 원로의원 동춘 스님, 총무부장 현문, 기획실장 승원 스님을 비롯한 총무원 각부ㆍ국장급 스님들과 김충용 종로구청장, 정하건 한국서예가협회회장, 전각장 오옥진씨 등 사부대중 1000여명이 동참한 가운데 조계사 일주문 현판식을 봉행했다.
이날 조계사 현판이 걸리면서 총본산 성역화의 전환점을 예고 했다

지관 스님은 이날 치사를 통해 “조계사는 근대 한국불교사에서 단연코 총본산으로 70여년을 이어왔다”며 “성역화 불사로 조계사가 뒤 늦게나마 제 모습을 찾게 되고 새롭게 이름을 내걸게 된 것은 모두 함께 기뻐할 일”이라고 말했다.
조계사 주지 원담 스님도 “총무원장 지관 스님을 비롯한 종단의 원로대덕 스님들의 보살핌과 조계사 사부대중의 원력으로 많은 성역화 불사가 차질 없이 진행되어 왔다”고 평가하고 “오늘 현판식으로 조계사도 이제 품격을 가진 도심전통사찰로의 면모를 일신하게 됐다”고 밝혔다.
지관 스님은 대한불교총본산조계사에 걸맞는 현판을 걸수 있게 됐다며 이날 행사를 축하했다

이날 걸린 조계사 현판은 한국서예가협회회장 송천 정하건 선생이 글을 쓰고, 중요무형문화재 106호 철제 오옥진 선생이 ‘대한불교총본산조계사’를 가로 7.25m 세로 1.45m 대형목판에 새겼다. 목판의 전체 무게는 무려 600kg에 달한다.
이와 함께 ‘이심전심시하법 불불조조유비전 조계산상일륜월 만고광명장불멸(以心傳心是何法 佛佛祖祖唯比傳 曹溪山上一輪月 萬古光明長不滅)’, 풀이하면 "마음에서 마음에 전하는 법이 그 무슨 법인가. 부처님이나 역대 조사가 오직 이것을 전함이로다. 조계산 꼭대기 둥근 달처럼 만고에 이 지혜광명 영원히 멸하지 않네"라는 의미의 주련도 함께 걸렸다.
조계사 주지 원담 스님은 조계사가 이날 현판식으로 새로운 품격을 갖추게 됐다고 말했다

조계사의 역사는 1910년 창건된 각황사로 거슬러 올라간다. 1937년 각황사를 현재의 조계사 자리로 옮기는 공사를 개시했고, 이듬해 삼각산에 있었다고 전하는 태고사(太古寺)를 이전하는 형식을 취하며 절 이름을 태고사로 했다. 보천교(普天敎) 십일전(十一殿)을 이전하여 1938년 10월 25일 총본산 대웅전 건물의 준공 봉불식을 봉행, 명실상부한 한국불교 총본산으로 현재의 위치인 종로구 견지동에 터를 잡았다. 1954년 11월 5일 당시 안국동에 있는 선학원을 중심으로 정화운동을 펼쳐나가던 비구 중심의 조계종이 출범하면서 현재의 조계사로 이어지게 되면서 오늘에 이르렀다.
조용수 기자 | pressphoto@buddhapia.com
2006-10-09 오후 1:33:00
 
한마디
대한불교총본산? ...어허~참! 조계사가 과연 그렇게 말할 수 있는 거룩한 성지인가? 본래 대한불교는 그렇게 정치적으로 퇴색하고 감투싸움, 재산싸움, 명예놀음하는 그런 것이었던가? 말로는 너나할것 없이 空思想이 어떻고 하시는 땟깔좋은 스님네들 쪼끔 반성해볼 필요가 있겠구먼~!, 정말로 대한불교의 총본산으로서의 면모를, 실제 모습을 갗추는 조계종이든 조계사든 되어지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2006-11-02 오후 4:11:45)
36
총무원장님께 보내는 글 입니다.
(2006-10-13 오전 11:04:59)
141
너무 젊어 보이셔서 연세가 그리 많은줄 몰랐습니다. 조계종이 일년사이에 많이 발전한것 같습니다. 시대에 발맞춰 모든것을 앞질러 가려고 노력한 흔적도 많이 보입니다. 건강도 챙기시고 앞으로도 계속 좋은 모습 많이 보여주세요.~~~
(2006-10-13 오전 11:01:20)
110
거기 활짝 웃으시는분들! 폭력으로 물들었던 정화를 떠올리며 가슴 벅차오르는 것을 느끼셨소?
(2006-10-12 오후 9:48:46)
141
축하합니다. 잘하셨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2006-10-12 오후 12:19:56)
154
쓸데없이 구업(口業)들 짓지 마시오. 조계사의 면모 일신에 축하는 못할망정....
(2006-10-11 오후 4:27:02)
159
한글 간판으로 달았으면 좋겠습니다. 한글은 가벼워 보인다고 말하지 마시길...시대에 맞는 정신을 갖으시기를...
(2006-10-10 오후 3:00:08)
166
대한불교 총본산이라! 뭔가 착각하고 있군. 여타 종단도 배려를 해야지, 이왕지사 달알으니, 간판에 걸맞은 불교로 거듭나고, 포교활동에 만전을 기하라! 서울에서 얼마 않있어 제3의 종교로 밀려나지 말고, 감투쌈, 잿밥쌈은 지양하고...
(2006-10-10 오후 12:53:18)
140
오늘날 한국불교가 어렵게만 느껴진 주 원인도 다 따지고 보면 스님들이 한문 경전을 불교 원전으로 착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스님들만 한문 불경을 잘 읶힌 후 홀로 즐기고 신도들 앞에 과시하기 때문이다. 하루 빨리 낡은 인습을 버리고 세종대왕의 높은 뜻을 기리기 위해 보다 쉬운 한글염불을 하며 감동있는 법회를 이끌어야 불교가 산다. 아쉽게도 세종이 한글 만들어 놓으니 기독교인들이 약삭 빠르게 한글 성경을 잘 번역하여 이용하고 전도한 결과 오늘날 기독교가 이렇게 번성하고 있지 않나! 일부러 산사를 제발로 찾아 온 손님들이 한문 문구 투성인 절에 와서 무엇을 배우고 오겠나? 이참에 조계종 모든 절의 현판 주련을 모두 한글로 바꿔 달기 운동을 벌이자. 훨씬 불처님의 말씀이 감동스럽게 다가올 것이다.
(2006-10-10 오전 2:45:59)
137
정말 한심하다 조계종 포교 일번지에서 한문으로 현퍈과 주련을 달다니......세종대왕님이 아신다면 대성 통곡할 일. 세종대왕이 한글을 만든 중요한 동기는 한글 불경 보급이었다고 한다. 세종은 독실한 불자였다. 당시 유교를 정치 이념으로 삼았던 시대에 한문을 잘 익혔던 지식인들만 기득권을 누렸고 한문으로 된 불경을 이해할 수 있었다. 이에 세종은 부인 소헌왕후가 죽자 "죽은 사람의 명복을 비는 가장 좋은 방법은 불경을 독경하는 일이다" 라고 하였다고 세종실록은 전한다. 백성들이 알기 쉬운 우리글로 불경을 읶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 한글을 만들었다고 한다. 당시 사대주의 사상이 농후했던 집현전 원로 학자들은 언문(소리글)으로서 부녀자 글이리고 천시했으며 한글 창제를 적극 반대하였지만 오직 불교를 일반 백성들에게 전파하고 싶은 독실한 불심에서 세종은 한글은 창제를 완성했었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한글 번역작업을 착수하였다. 아들 수양대군 총 책임자로 임명하고 "부처님 일대기 및 불교경전'을 우리글로 번역 작업이 완료되었는데 그것이 유명한 '석보상절'이다. 석보상절은 우리 국문 최초 산문로서 한글 최초 불경편찬 사업이었다. 이때 한글 최초 법화경, 아미타경 등이 나왔으니 한문을 모를던 백성들이 얼마나 기뻣겠는가 이래서 유교 숭상시대에 불교가 백성들 사이에 널리 펴졌던 것을 잊어서는 안된다. 세종은 한국불교사에서 최초 한글 번역 역경사, 포교사인 셈이다. 한글날 조계종이 한글날 행사를 개최하고 세종대왕을 추모해야함에도 무식한 소치로 그냥 넘기고 있다. 당장 한글 현판과 주련으로 교체 바란다.
(2006-10-10 오전 1:46:14)
156
대한불교총본산이라.. 하긴 태고종은 황룡사에 선암사에 죽쑤고 있으니 뭐라 말 못하겠다만..
(2006-10-09 오후 11:41:15)
166
하필 한글날에 한문간판...? 아직도 조계종 큰스님들의 의식구조는 5~60년대에 머물러있구나.
(2006-10-09 오후 4:21:56)
1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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