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러한 불교성지에 석가모니 부처님과 아난, 사리불 존자가 함께 상주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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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현도량 백운사(주지 우성)가 ‘부처님 진신사리탑’을 조성하기 때문이다. 도량 왼편에 마련된 70여 평의 사리단에는 중앙에 13m 높이의 8각 9층 부처님 진신사리탑이 건립된다. 좌우에도 각각 9.5m 높이의 4각 5층탑에 아난과 사리불의 사리가 봉안된다.
“이곳에 봉안하는 부처님 사리는 본래 미국에 모셔졌던 사리입니다. 이 땅에 불법이 다시 성행하게 될 인연이었는지 희유하게도 부처님이 천호산으로 오시게 되었습니다”
4년 전, 미국에서 부처님 사리를 모셔온 우성 스님은 “지금도 부처님이 이곳에 오게 된 인연을 생각하면 희유하다”고 회고한다.
우성 스님이 모셔온 부처님 진신사리는 본래 미국에 거주하는 미얀마 의사 산야(San aye) 씨가 모셔왔다. 안과 의사인 산야 씨는 매년 고국 미얀마의 사원을 찾아 무료진료를 하고 있다. 오랫동안 미얀마 스님들을 진료해온 산야 씨는 우연히 석가모니 부처님과 아난, 사리불 존자의 사리와 인연을 맺게 됐다.
불자인 산야 씨는 미국에 탑을 세워 봉안하고자 했다. 그러나 아직 미국에 부처님 사리탑을 세우기에는 인연이 성숙되지 않았다. 결국 한국 교포불자와 인연이 맺어졌고 우성 스님에게 연락이 닿게 된 것이다.
우성 스님은 부처님이 천호산에 상주하게된 것은 ‘게으름 없이 더 정진하라’는 채찍으로 여기고 있다.
백운사 주지 우성 스님은 늦깍이다. 세속나이 73세인 스님은 20여년전 발심했다. 뒤늦은 출가이기에 한치도 게으름 피울 수가 없었다. 1991년 우연히 발길이 멈춘 백운암은 폐허나 다름없었다. 쓰러지기 직전의 인법당은 언제 쓰러질지 몰랐다. 신도도 없었다. 그렇지만 혼자 공부하기에는 제격이었다.
곧바로 천일기도를 시작했다. 3년 후 다시 천일기도를 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법당과 요사채가 건립되었다. 또다시 세 번째 천일기도에 들어갔다. 그런데 공부에는 마장이 따르기 마련이었다. 불의의 화재로 그동안의 불사가 잿더미가 됐다. 백일가량 했던 기도를 멈추고 다시 천일기도를 입재했다. 대웅전, 약사전, 관음전, 삼성각, 미륵전, 종각, 요사채 등 10여동의 전각이 들어서고 도량이 일신됐다. 암자였던 가람이 규모가 커짐에 따라 백운사(寺)로 거듭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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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10여년간의 기도가 끝나고 미국에서 부처님 진신사리를 모셔오게 된 것이다.
“물론 처처(處處)가 다 부처님 땅입니다. 그렇지만 때로는 근기가 부족해 부처님을 가까이서 느끼고 싶어합니다. 부처님이 곁에 계신다는 것만큼 든든한 것이 없습니다. 정진하는데 힘이 부족하면 언제든 찾아오세요. 천호산에는 불, 보살님이 두루 상주하고 계시니까요”
한편 백운사는 탑신을 세우기에 앞서 오는 10월 29일 부처님 진신사리 친견법회를 갖는다. 사리가 탑 안에 봉안되기 전에 갖는 이번 법회는 부처님 진신사리를 직접 친견할 수 있는 마지막 자리이다. (063)836-804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