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리움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현등사 사리와 사리구’가 원 소유자인 가평 현등사로 반환된다.
삼성문화재단 한용외 사장은 9월 25일 조계종 총무원을 방문, 반환의사를 밝힌 뒤 총무원과의 합동기자회견을 통해 “아무 조건 없이 사리와 사리구를 현등사로 반환하겠다”고 밝혔다.
한용외 사장은 성명서를 통해 “리움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현등사 사리와 사리구는 불교신자들의 경배와 신앙의 대상임을 조계종 측과 인식을 같이해 본래의 위치인 현등사에 영원히 봉안될 수 있도록 한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사리 소유권 문제를 놓고 벌어질 ‘2심 공방전’과 ‘리움박물관 앞 사리친견법회’ 등 양측의 대립국면에 종지부를 찍었다.
불교계로서는 ‘반환’이 주는 의미가 크다. 무엇보다 ‘불교 문화재는 원래 자리로 돌아와야 한다’는 불교계의 오랜 열망이 실현되는 전환점이 됐다.
조계종 총무원 문화부장 탁연 스님은 “많은 불교 문화재를 소장·전시하고 있는 국립박물관과 사립박물관들은 그동안 불교 문화재를 단순한 유물로만 여겨 ‘보존·관리하기만 하면 그만’이라는 인식이 팽배해 성보의 정체성에는 무관심했던 것이 사실”이라며 “이번 일을 계기로 박물관계가 불교 성물과 불교 문화재의 고유성을 인식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탁연 스님은 또 “사립박물관 중 규모는 물론 전시·보관 중인 유물의 수가 가장 많은 삼성리움박물관의 ‘사리 반환’은 ‘불교 문화재는 제자리로 돌아와야 한다’는 선례로 남아 앞으로 국·사립박물관에 보관돼 있는 ‘사리 찾기’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봉선사 총무과장 혜문 스님도 “동국대 박물관이 1960년대부터 용문사 부도군(정기국사 사리로 추정) 사리를 비공개로 소장하고 있는 것을 최근 확인했으며 이와 함께 국립박물관이 일제강점기부터 소장하고 있는 수종사 부도탑 사리도 반환받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현등사 사리반환’은 도난 문화재 불법유통 근절에도 큰 효과를 발휘할 것으로 보인다. 그 동안 사립박물관과 개인들이 장물시장을 통해 불교 문화재를 불법거래하며 소유권의 정당성을 암묵적으로 인정받아 온 오랜 관행의 연결고리를 끊을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반환받는 과정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불교계의 한 사립박물관장은 “불교계가 삼성 측으로부터 사리를 반환 받는 과정에서 ‘압력과 힘의 논리’가 작용한 것은 부정할 수 없다”며 “일부 문화재 소장가나 사립박물관이 비공개로 소유한 불교 문화재를 수면 아래로 감출 것이 자명할뿐더러 앞으로 도난 문화재가 해외로 유출될 가능성도 높아졌다”고 지적했다.
그렇다면 1년이 넘게 법적공방도 불사하며 ‘현등사 사리와 사리구’의 소유권을 주장해온 삼성문화재단이 1심 재판에서 승소하고도 결국 ‘사리 반환’을 결정한 이유는 뭘까.
혜문 스님은 “불교계의 거센 반발로 인해 ‘삼성’의 이미지가 크게 훼손될 것을 우려한데다, 불심이 돈독한 삼성리움박물관 홍라희 관장의 결단이 크게 작용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홍 관장은 독실한 원불교 신자이면서도 현재 불교여성단체 ‘불이회’ 회장으로 활동하며 스님들과도 많은 인연을 맺고 있다.
1981년 삼성문화재단이 구입한 것으로 알려진 현등사 사리구는 은으로 만든 사리합과 수정으로 만든 사리호(사리를 담은 조그만 항아리)로 구성돼 있다. 사리호 안에는 사리 2과가 들어있다. 사리합 겉면에 ‘懸燈寺(현등사)’라는 글씨와 함께 1470년 사리합을 만든 배경 등을 기록했다. 조계종 측은 “삼성문화재단에서 즉각적으로 반환하겠다고 했지만 전시시설 마련이나 사리 친견 법회 행사 등을 준비해야 하기 때문에 11월 중 반환받아 삼성 측과 공동으로 ‘사리 친견 법회’를 열 것”이라고 전했다.
‘현등사 사리’ 반환되기까지
△2004.11
현등사, ‘성보문화재 일제조사’ 중 당시 현등사 사리구가 삼성문화재단에 소장되었던 사실 확인함
△2005.08.22
현등사, 삼성문화재단을 상대로 민사조정신청
△2005.10.07
민사조정 결렬, 정식재판에 회부
△2005.12.05
사리구 도굴범 서모씨, 봉선사로 자백 편지 발송
△2006.03.24
문화재청, “사리자체는 문화재로 지정된 바 없다”
△2006.04.18
현등사, 삼성리움박물관 방문해 사리구의 현장검증
△2006.07.20
반환청구소송에서 원고패소 판결
△2006.08.03
‘현등사 사리 제자리 찾기 추진위’, 서울 서부지방법원장에 항의 방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