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3.29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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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바빠야 더 많이 배워가지"
[도반의향기]수덕사 문화관광해설사 박승병씨
사찰이나 유적지 등에서 국내외 관람객들에게 해설을 해주는 자원봉사자. ‘문화관광해설사’에 대한 간단한 정의다. 우리나라에선 2001년 ‘문화유산해설사’란 이름으로 601명이 배출된 이래, 지난해 ‘문화관광해설사’로 이름을 바꾸고 현재 1400여 명이 활동 중이다.
울긋불긋한 가을 기운이 산과 들을 물들이던 지난 9월 16일 찾아간 예산 수덕사에서도 문화관광해설사를 만날 수 있었다.
“호서 제일 가람 수덕사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43년간의 교직생활 동안 수 많은 봉사상을 받은 박승병씨는 정년퇴임 후 문화관광해설사로 또 다른 봉사의 길을 걷고 있다.

곱게 빗어 넘긴 하얀 머리카락과 단정한 옷차림, 맑게 빛나는 눈빛을 가진 어르신 한 분이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관광객들을 맞이한다. 그의 유창한 해설을 들으며 사찰 곳곳을 둘러보던 관광객 중 한 명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조심스레 말을 건넨다. “혹시, 박승병 교장선생님 아니세요?”
43년간의 교직생활을 정년퇴임한 후 문화관광해설사로 ‘제2의 인생’을 살고 있는 수덕사 문화관광해설사 박승병(66)씨. 교직에 있는 동안 한국교총대의원ㆍ충남교원단체연합회 교육정책 자문위원ㆍ한국보이스카우트연맹 대의원 등 수많은 직책을 맡아 활동했지만, 박씨를 가장 잘 설명하는 말은 단연 ‘봉사하는 선생님’이다.
1970년대부터 최근까지도 가정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에게 매달 장학금을 전달했고, 등굣길 학교 앞 교통정리도 직접 맡아 했다. 교장선생님이 되고 난 후에도 운동장에 버려진 휴지를 직접 줍고 학생들 화장실도 청소했다. 주위에서 “궂은일은 청소부나 학생들에게 시키라”는 주위의 만류에도 그는 “학생들과 좀 더 가까이서 만나고 내가 먼저 앞장서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며 빗자루를 찾아 쥐었다.
그의 몸 속 깊이 배인 교육ㆍ봉사정신은 그간 그가 받은 인간상록수상, 모범공무원상, 충남교육대상, 한국사도대상 삼락봉사상 등의 상장과 상패만으로는 담아내기 힘들 만큼 깊고 넓다. 한국사도대상을 운영하는 한국교육삼락회는 박씨가 참스승이 사라져가는 시대에 투철한 교육ㆍ봉사정신으로 교육개선을 위해 노력하고, 사랑과 봉사 정신으로 후진을 양성한 ‘평생 스승’이라고 수상 이유를 밝혔을 정도다.
그는 모범공무원에 선정 돼 받은 황조근조훈장 배지를 늘 가슴에 달고 다닌다. 배지를 보며 늘 자신의 마음을 바르게 하고 행동에 그릇됨이 없도록 해주는 ‘죽비’로 삼기 때문이다.
“저는 그저 학생들을 가르치며 즐겁게 일했을 뿐인데, 봉사 한다고 칭찬도 해주고 상도 주고 그럽디다. 국가가 칭찬해주니 저도 그에 맞춰 더 열심히 봉사해야지요.”
2003년 정년퇴직한 후, 박씨는 더 많은 봉사활동을 하기 위해 교육학 석사 과정에 진학했다. 학업을 마칠 즈음, 문화관광해설사로 눈길을 돌렸다. 오래 세월 교편을 잡았던 노하우를 문화유산을 소개하는 데 회향해야겠다는 뜻에서다. 해설사 교육을 마친 후 그는 자원해서 수덕사를 찾았다. 어려서부터 어머니의 손을 잡고 다니던 원찰이기도 했고, 그 자신이 수덕사 불교교양대학 1회 졸업생이자 현재 신도회 고문까지 맡고 있기 때문이다.
문화유산해설사 교육 수료 후, 매일 오전 8시 20분부터 오후 5시까지 수덕사에서 안내를 맡고 있다. 정부에서는 봉사시간을 월 15일로 정하고 있지만, 그는 매달 26일을 수덕사로 ‘출근’한다. 버스를 몇 번이나 갈아타고 와야 하는 쉽지 않은 길이지만 하루하루가 즐겁고 보람차다.
“퇴직하고 할 일 없이 노는 것은 본인에게도, 사회에도 백해무익한 일이죠. 퇴직자에게도 일거리를 주어서 자신의 재능을 사회에 회향할 수 있게 해야 합니다.”
어릴 때부터 다니던 수덕사였지만, 해설을 하기 위해선 수덕사에 관한 거의 모든 것을 알아야 했다. 수덕사의 문화재나 역사에 관련된 책은 모두 다 구입해 15번 이상씩 읽었다. 직접 해설 원고도 작성하고, 청중들의 반응을 살펴 다시 쓰기도 했다. 새로운 사실이 밝혀지거나 예전과 다른 자료가 나타나면 가차 없이 원고를 수정했다. 문화유산 해설은 철저히 사실에 근거해야 한다는 그의 믿음이다.

작성된 원고를 어떻게 전달하는지도 연구의 대상이었다. 자칫 지루해질 것을 염려해 목소리 톤을 높고 낮게 조절하기도 하고, 청중들에게 질문을 던져 궁금증을 유발하기도 한다. 옛날이야기를 들려 주는듯한 그의 해설을 듣고 있으면 수덕사의 역사가 눈앞에 그림처럼 펼쳐진다.
그의 해설은 단순히 유물이 보물 몇 호이고, 문화재적 가치가 어떠한지 만을 설명하지는 않는다. 불교의 전반적인 이해를 돕고, 그 바탕을 알아야 유물의 가치를 제대로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총림이 무엇이고 방장이나 조실 스님은 누구인지, 안거나 사물(四物)은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지를 설명해 주는 것도 바로 이런 이유에서다. 이렇듯 문화유산 해설에 혼신을 다하다 보니 그의 ‘해설 노하우’를 배우기 위해 찾아오는 해설사들도 있다. 그들에게 들려주는 박씨의 ‘노하우’는 바로 ‘부처님 학습법’이다.
“부처님의 학습법은 칭찬과 반복입니다. 자꾸 반복해서 읽고 외우다 보면 자연스레 체득하게 됩니다. 스스로를 격려하고 노력하다보면 누구나 다 멋진 해설사가 될 수 있지요.”
그의 해설에는 독특한 점이 또 하나 있다. 바로 해설이 끝난 후 ‘당부의 말씀’을 한다는 것이다. 학생에게는 ‘열심히 공부하겠다, 나라의 발전을 위해 큰 공을 세우겠다’는 서원을 세우도록 하고, 일반인들에게는 ‘하루에 사랑한다ㆍ고맙다는 말 10번 이상 한다. 내가 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다짐하도록 한다. 교수들이나 사회지도층이 방문할 때는 ‘후배양성에 힘써라, 나라발전 위해 최선을 다해라’고 당부한다.
“최근 윤달이라 삼사순례를 위해 수덕사를 찾는 불자들이 늘었어요. 하지만 다들 사찰 한 번 휙 둘러보고 나면 떠나기 바빠요. 방문한 사찰의 역사와 문화에 대해 좀 더 관심을 갖는다면 더 의미 있는 답사가 되지 않을까요?”
“좋은 해설로 방문객들의 마음가짐이 조금이라도 변한다면, 그것보다 큰 보람이 어디 있겠나”는 그는 “내가 바빠야 관람객들이 수덕사를, 더 나아가 불교를 조금이라도 더 잘 이해할 수 있지 않겠나”며 또 다시 해설을 하러 발걸음을 옮겼다.
봉사는 시간이나 돈이 풍족해서 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좋아서 돈과 시간과 노력을 들이는 것이라 강조하는 박씨. 세월의 연륜이 깊게 묻어나는 수덕사 대웅전의 기둥처럼, 그 역시 수덕사를 떠받치고 있는 든든한 기둥의 하나임에 틀림없다.
여수령 기자 | snoopy@buddhapia.com
2006-09-28 오전 8:5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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