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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현재 불교여성복지분야는 시설과 인력 등 인프라가 터무니없이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필요성조차 인식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신심 깊은 여성불자들이 한국불교를 이끌어 오고, 종단의 48%를 비구니가 차지하고 있으며 사회 구석구석에서 도움의 손길을 원하는 여성들의 숫자가 날로 급증하고 있지만 ‘불교여성복지’에 대한 관심은 차갑기만 하다. 있던 시설들도 문 닫을 판이다.
△시설비율 100대 1, 척박한 불교여성복지
조계종사회복지재단은 불과 10여년 만에 성장을 거듭, 현재 30여개의 산하복지시설을 거느린 대표적인 불교복지재단이다. 그러나 이중 여성관련 복지시설은 단 하나도 없다. 조계종사회복지재단의 한 관계자는 “양성평등을 지나 여성상위 시대인데 여성복지시설이 과연 필요한지 의문”이라며 “이미 수많은 복지시설을 운영하는데 여성복지시설까지 운영할 여력이 없다”고 발언해 복지 마인드를 의심케 하기도 했다.
여성복지에 관심 없는 것은 비단 조계종사회복지재단만이 아니다. 진각복지재단은 지난해 “강력한 종단적 의지를 갖고 2006년 한 해 동안 서울 왕십리 밀각심인당 내에 10여명의 미혼모를 수용할 수 있는 모자복지시설 건립을 추진하겠다”고 밝혔지만 지금까지 공사건립기금 마련은 물론 세부적 계획조차 추진하고 있지 않은 상황이다.
<한국불교사회복지총람>에 따르면 600여개가 넘는 불교계 사회복지시설 중에서 총람에 등재된 여성복지시설은 여성노숙인생활시설 ‘화엄동산’, 미혼모를 위한 대구 ‘자비의 쉼터’ 단 두 곳뿐이었다.
본지 조사결과 전국에 새로 생긴 불교여성복지시설은 이밖에도 세 곳이 더 있었다. 서울 본동종합사회복지관이 운영하는 여성노숙인을 위한 ‘희망의 집’, 원주 명륜종합복지관이 이주여성을 위해 설립한 ‘결혼이민자가족지원센터’, 구미 보현의 집이 올해 운영을 시작한 ‘이주여성쉼터’ 등이다. 여기에 분야는 다르지만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을 보호하고 있는 경기도 광주 ‘나눔의 집’까지 더하면 전국에 불교여성복지시설은 총 여섯 군데인 것으로 집계된다. ‘여성복지’에 냉담한 불교 내부 사정이 극명하게 드러난다.
△현장은 치열, 불교계는 수수방관
이들 여성복지시설 종사자들은 대부분 복지현장에서의 오랜 활동을 통해 ‘불교계에도 여성복지가 시급히 필요하다’는 사실을 절감하고서 여성복지 활동에 뛰어든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이들이 ‘불교여성복지’라는 황무지를 일구는 동안, 해를 거듭하면서 여성 차별적 시선과 불교계의 냉담한 반응에 지쳐 자포 자기한 심정을 갖게 되기 일쑤다.
대표적인 불교계 여성복지시설로 손꼽히는 화엄동산(소장 이인숙)은 서울 양천구 목동에 자리 잡은 여성노숙인생활시설이다. 서울시 양천구 목동의 낡은 일반 주택을 개조해 1998년부터 운영하고 있는 이 시설은 그동안 500여명의 여성 노숙인이 거쳐 갔다. 그러나 서울시로부터의 지원을 빼면 후원금은 전혀 없는 상황. 따라서 운영상의 어려움이 적지 않다.
임동숙 사무장은 불교계의 무관심이 힘겹기만 하다. 임 사무장은 “만성적인 가부장주의, 구타, 성폭행, 실직 등으로 집에서 내몰린 여성들은 남성이 대다수인 노숙인 세계에서조차 생존을 위협받기 때문에 그들만을 위한 보호시설이 필요하다”며 “여성이 이곳까지 오기에 얼마나 많은 고초가 있었겠는가”라고 되물었다. 그러나 “사회는 물론이고 불교계 내부에서조차 여성노숙인의 이러한 특수성을 고려한 실질적인 지원과 대책방안을 강구하지 않고, 때 되면 생색내기 용으로 이용하려고만 한다”고 꼬집었다.
필리핀에서 한국으로 시집 온 야풋리자(30)씨에게 일주일에 한 번 명륜종합사회복지관(관장 현각)이 운영하는 결혼이민자가족지원센터를 방문하는 일은 ‘생활의 낙’이다. 야풋리자씨는 이곳에서 한글도 배우고 한국요리를 만드는 법도 배우면서 같은 처지의 베트남, 몽골출신 이민여성들과도 만남을 갖는다. 이는 모두 올해 4월 결혼이민자가족지원센터가 열린 덕택이다. 이들 중에는 차비가 없어서 센터를 올 수단이 없자 다른 군에서부터 자전거를 타고 오는 사람도 있을 정도로 회원들의 참여열기가 높다. 센터 회원들은 “이민자가족지원센터는 우리에게 꼭 필요한 곳”라고 입을 모은다.
센터 소장 현각 스님은 ‘사회의 변화에 대응하는 발 빠른 복지서비스’의 필요성을 주장하며 결혼이민자여성을 위한 복지프로그램 운영을 역설해오던 인물이다. 그러나 그간 예산과 지원이 없어 이를 실현하지 못하다가 올해 들어서야 비로소 여성가족부의 지원을 받아 센터운영을 시작할 수 있었다. 현각 스님은 “양성평등사회라고 하지만 아직도 우리 사회 곳곳에는 보이지 않는 차별이 존재한다”며 “국가조차 손을 뻗지 못하는 분야에 불교계가 눈을 돌려 적극적인 구재사업을 펼쳐야 하는데도 불구하고 관심이 적어 안타깝다”고 밝혔다.
올해 1월부터 경북 사회복지공동모금회의 지원을 받아 ‘이주여성쉼터’ 운영을 시작한 마하부다사 구미 보현의 집 소장 진오 스님 역시 현장 활동을 통해 여성복지의 필요성을 절감한 경우다. 진오 스님은 “여성은 임신과 출산, 가정문제 등 복합적인 요인을 갖고 있어 일반적인 복지서비스와는 다른 형태의 접근이 필요하다”며 “이주여성노동자의 경우 열악한 근로조건으로 인해 조산이나 유산이 잦고, 임신 때문에 일자리를 놓칠까봐 두려운 나머지 낙태비율도 높기 때문에 이들을 위한 모자보호센터나 쉼터가 시급히 필요하다”고 전했다.
△학계에도 불교여성복지는 ‘찬밥’
이미 운영되고 있는 여성복지시설이 지원과 관심이 없어 운영을 포기하는 현실적 여건 외에도, 불교여성복지 관련 연구와 종단적 정책제시방향이 없어 새로운 시설을 건립하려는 시도조차 좌절되고 있는 상황이다.
부산 여여선원장 정여 스님은 지난 2004년 여성노숙인을 위한 ‘여성인권쉼터’를 개설할 원력을 세우고 당시 NGO단체와 연계해 부산 사직동에 70여평 규모의 공간까지 마련한 상태였으나 현실적 여건이 맞지 않아 결국 공사를 중단해야 했다.
정여 스님은 “불교여성복지는 관련 분야의 전문가들이 두루 모여 폭넓은 접근을 해야할 종합적인 복지분야”라며 “여성이 안고 있는 정신, 가정적 문제를 연계해 해결할 수 있는 전문인력이 확보돼야 하는데 불교적 복지마인드와 여성복지의 실무적 경험을 두루 갖추고 있는 인력을 찾기가 쉽지 않았고 불교여성복지에 대한 연구가 충분히 진행되지 않은 상태에서 쉼터를 개설하기에는 무리가 있었다”고 토로했다.
학자들도 불교여성복지를 실현하기에 앞서 연구풍토가 조성돼야 한다는 지적에 공감을 표한다. 불자여성 연구기관인 불교여성개발원 측은 “불교여성복지분야의 방향을 제시하거나 이와 관련된 연구를 진행하는 전문가가 없다”며 “불교여성복지를 이끌어갈 인재개발이 시급하다”고 난색을 표했다.
지난해 6월 조계종사회복지재단이 주최한 ‘불교사회복지 아젠다 개발 학술세미나’에서 <불교여성복지 활성화를 위한 발전과제>를 발표했던 경도대 사회복지학과 전보경 교수도 “불교계 내부에는 여성복지 관련사례가 없고, 자료가 너무 빈약해 논문 작성에 어려움을 겪었다”며 “관련전문가의 검증을 통한 영역과 대상자 설정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이론적 체계 세우고 시설 확충해야
일단 이론적 체계를 세우고 관계자와 실무자들의 폭넓은 공감대를 형성하면 시설을 확충하는 일은 자연스럽게 진행될 수 있다. 이미 불교계에는 여성복지의 구심체가 될 사회복지재단과 법인들이 다수 존재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들이 여성복지로 외연을 넓혀 끌어나가면 자연스럽게 불교의 대사회적 기능 강화와 포교로 연결될 수 있다.
보다 구체적 방안으로는, 비구니 스님이 중심이 돼 불교여성복지영역에 적극적으로 참여함으로써 불교여성복지의 역할과 위상을 정립해나가는 방안을 고려해 볼 수 있다. 조계종의 경우, 지난해 총 1만3035명의 소속 스님 중 비구니는 약 48%를 차지했다. 비구니 스님들이 여성적 가치를 필요로 하는 여성복지분야에 관심을 쏟을 경우, 불교여성복지의 위상이 달라질 것은 여실하다. 특히 이를 통해 비구니 스님들의 위상강화는 물론이고 경제적 자립효과까지도 생각해볼 수 있다.
여성성직자가 여성사회복지에 뛰어듦으로써 복지 전문영역으로의 역할을 확대한 경우는 이웃 종교인 가톨릭에서도 쉽게 찾을 수 있다. 가톨릭은 수녀들이 교단의 지원과 함께 조직적으로 여성사회복지활동을 펼치는 동시에 이를 통해 성직자 노후복지까지 함께 준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