율사가 이 산간에다 절을 지은 것은 옛 터 수복을 노리는 고구려의 유민들을 잠재우기 위한 지정학적인 요인도 있었을 것이다. 불국토사상을 내세운 자장의 생각이 그러했고, 훗날 변방에다 화엄십찰을 세운 의상의 뜻도 그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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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표소에서 백담사까지 시오릿길은 지난 여름 집중호우 때 곳곳에 길이 끊어지고 낙석이 쏟아져서 한동안 차가 다니지 못했다. 집중호우가 남긴 상채기가 아직도 곳곳에 눈이 아프게 보인다.
백담사의 창건 당시 이름은 한계사(寒溪寺). 조선 조에 설정대사가 소실된 옛 절을 복원하면서 계곡에 널려진 수많은 담(潭)을 보고 ‘백담사’라는 새 이름을 지었다고 한다.
백담사는 산중사찰이라지만, 하천변에 터를 잡은 탓으로 전체적으로 허벌어진 느낌을 준다. 게다가 경내외에 나무가 없어서 산중사찰이 갖는 그윽함이나 아늑함이 부족하다. 다른 산중사찰과는 달리 전각들이 가로로 널어서 있어서 가람배치도 다소 산만한 느낌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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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가운데 눈길을 끄는 것은 너와지붕을 한 농암당이다. 경내 찻집으로 활용하고 있는 농암당은 기와 대신 너와를 올린 전형적인 팔작 건물로, 사뭇 이색적이다. 기와나 동기와보다 소재면에서 매우 친환경적이라, 산중암자나 토굴에서 고려해봄 직하다.
백담사 수렴동계곡 입구에 보(洑) 형태의 잠수교가 있고, 보 가운데 자연석으로 층계형 어도(魚道)를 만들었다. 어도는 보 때문에 상류로 오르지 못하는 물고기들을 위해 만들 물길이다. 절에서 보를만들 때는 반드시 어도를 만들어야 한다. 이것이 생태시대의 진정한 방생이 아닌가 싶다.
백담사에서 영시암까지는 3.5킬로미터, 걷기에 좋은 평탄한 숲길이다. 혼효림 가운데 눈길을 사로잡는 것은 역시 금강송이다. 활엽수와의 영토전쟁에서 밀려나 계곡 가장자리에다 자기 영토를 마련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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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사목들도 가끔 눈에 띈다. 고사목이라고 해서 숲속에서 무위도식하지는 않는다. 버섯과 이끼에게는 삶터를 제공해주고, 곤충의 애벌레들에겐 먹꺼리를 제공해주고, 새들에게는 보금자리를 제공해주기도 한다.
병조희풀은 이름과는 달리 풀이 아니라 나무이다. 키가 1미터에 불과하지만, 해발 500~1,500미터 산간을 좋아한다. 양지나 음지를 모두 좋아한다. 내한성이 강해서 어디에서나 잘 자라기 때문에 사찰 조경에도 무난하다.
내설악지역에는 총 11종의 파충류가 서식하고 있는 것으로 보고되었는데, 아무르장지뱀도 그 가운데 하나이다. 아무르장지뱀은 몸통과 꼬리 길이가 각각 10센티 안팎이다. 숲길 옆 잡초가 우거진 곳이나 햇볕이 잘 드는 능선이나 묵밭 등이다.
영시암은 조선 숙종 때 창건되었으나, 한국전쟁 때 소실되고 말았다. 근래 복원불사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생태보전이 우선되는 곳에서는 불사를 하더라도 본래 있던 절터의 영역을 넘어서지 않는 것이 자연에 대한 예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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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 영시암을 비롯해 오세암과 봉정암은 모두 전기가 들어오지 않고 있다. 세 암자의 전기는 석유를 이용한 발전기와 태양열을 이용한 발전기로 얻어내고 있다.
태양광 발전의 특징은 대기를 오염시키는 화학연료를 사용하지 않고, 무한한 태양광 에너지를 쓴다는 점, 공해물질을 배출하지 않는다는 점, 시스템이 단순해서 작동이나 보수가 쉽다는 점이 있다.
설악산은 내설악과 외설악으로 나누어진다. 수렴동계곡은 내설악에서 경승이 가장 뛰어난 계곡이다. 그러나, 지난 여름의 집중호우로 계곡은 만신창이 되었다. 산사태는 산정상부의 오목(凹) 지형에 집중된 강수가 암반층을 덮고 있던 토층을 분리시켜 슬라이딩되면서 일어났다. 토사와 뿌리 뽑힌 나무들은 거센 물길을 따라 떠내려와 등 2차 피해를 발생시켰다.
설악산의 초가을은 버섯의 계절이다. 영시암에서 오세암에 이르는 구간에서는 다람쥐눈물버섯, 끈적긴뿌리버섯, 콩알버섯, 운지버섯, 여름느타리버섯 등등 10 종류가 관찰되었다.
다람쥐눈물버섯은 늦여름에서 초가을 사이에 활엽수림에서 관찰되는 식용버섯이다. 주로 나무 줄기에 군생하며, 연한 갈색을 띤다. 갓의 지름은 1.5∼5센티, 버섯대의 길이는 2~3센티 정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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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지역의 다람쥐는 등산객들이나 신도들이 던져주는 빵이나 과자에 익숙해져 있다. 빵과 과자 속에는 방부제, 항생제, 조미료, 향신료, 색소, 표백제 등이 들어 있어서 다람쥐에게는 적절치 않는 먹이들이다. 이것들이 체내에 축적되면 예상치 못하는 현상이 일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사람들이 주는 먹이에 길들여져 도토리와 같은 야생의 먹이를 외면하게 되지 않을까 걱정된다. 다람쥐들이 도토리나 상수리 같은 종자를 멀리 운반해주지 못하면 참나무들이 쇠퇴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오세암은 신라 선덕여왕 13년(647년)에 자장율사가 이곳에서 관세음보살을 친견하고 ‘관음암(觀音庵)’이라는 이름으로 처음 창건했다고 한다.
포유류는 직접 목격하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배설물이나 족적으로 서식여부를 확인하거나 주민들을 대상으로 탐문에 의존하는 수 밖에 없다. 오세암 거사의 말을 빌리면, 오세암 맞은 편 만경대 암능지역에서 산양의 배설물이 자주 관찰된다고 한다.
설악산은 남한에서 산양이 가장 많이 서식하는 곳으로 알려져 있다. 산양은 지구상에 출현한 이래 거의 변화하지 않은 채 태초의 원시적 형태 그대로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는 몇 안 되는 포유류 가운데 하나로 알려져 있다. 산양은 현재 남북한이 함께 천연기념물로 지정하여 보호하고 있으며, 설악산에는 산양 지킴이 박그림씨가 동분서주하고 있다.
영시암에서 봉정암에 이르는 구간에서 관찰된 가을꽃으로는 만주송이풀, 구실바위취, 산부추, 산박하, 배초향, 오이풀, 꽃며느리밥풀꽃, 단풍취, 둥근이질풀, 승마, 칼잎용담, 진돌쩌귀 등이다. 이 구간에서 처음 나타나는 목본으로는 구상나무, 눈측백나무, 눈잣나무, 거제수 등이 손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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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방밑들이메뚜기의 가장 두드러지는 특징은 몸 빛깔이 붉다는 점과 날개가 퇴화되고 없다는 점일 것이다. 그리고, 이름이 암시하듯이 비교적 기온이 낮은 산악지역의 숲을 삶터로 하고 있다는 점이다. 설악산에서는 등산로 주변 풀숲이나 키가 작은 관목지대에서 자주 관찰된다.
전생의 인연으로 순례한다는 봉정암(鳳頂庵)은 신라 선덕여왕 때인 643년에 자장율사가 당나라로부터 부처님의 진신사리와 금란가사를 모셔와 봉안하면서 첫 적멸보궁이 되었다.
봉정암이 자리한 곳은 해발 1244미터로, 해발 1400미터에 자리한 지리산 법계사에 이어 두 번째로 높다. 한국전쟁 때 피해를 당해 폐사가 되다시피 했던 것을 근래 정념스님이 원력을 세워 도량을 일신시켰다.
봉정암 주변과 대청봉 구간에서 보는 꽃 핀 초본들은 금강초롱, 투구꽃, 구절초, 당귀꽃, 산부추, 진돌쩌, 용담, 미역취, 산부추, 솔체꽃, 여로 등이다. 목본으로는 눈잣나무, 주목, 측백나무, 거제수나무, 구상나무, 덤불오리나무, 분비나무, 철쭉 등이 군락을 이루고 있다.
금강초롱은 봉정암 주변과 대청봉 구간에 분포하고 있다. 물이 잘 빠지고, 기름진 반그늘에서 잘 자란다. 키는 50센티를 웃돈다. 꽃은 남보라색이나 흰색이며, 모양은 종처럼 생겼다. 등산객들마다 눈독을 들이는 바람에 개체수가 늘 위기선상에 놓여있다.
대청봉 지역은 눈잣나무의 남쪽 한계 분포지이다. 눈잣나무는 키가 20미터를 웃도는 다른 잣나무와는 달리 겨우 5미터 정도에 못미치는 난장이 고산 수목이다. 눈보라가 매서운 고산지역에서 산다고, 또는 나무 모양이 누운 듯하다고 ‘눈잣나무’라는 이름이 붙었다. 대청봉 안부에 무리 지어 땅에 엎드린듯이 자라는 눈잣나무의 생태에서 생명에의 외경을 느끼게 된다.
내설악에는 알락그늘나비, 조흰뱀눈나비, 홍줄나비, 신선나비, 북방녹색부전나비 등 고산지역의 나비들이 출현한다. 이번 조사기간 동안에는 봉정암 주변에서 알락그늘나비와 조흰뱀눈나비가 관찰되었다.
알락그늘나비는 뱀눈나비과에 속하며, 암갈색 날개에 뱀눈같은 둥근 무늬가 여럿 나 있다. 숲속을 좋아한다. 꽃의 꿀은 빨지 않고, 참나무 종류의 수액에 잘 모여든다.
설악산에는 여러 종류의 딱정벌레들이 서식하는데, 봉정암 경내에서 발견된 수염하늘소, 대청봉에서 관찰된 산길앞잡이, 백담계곡 길에서 관찰된 홍가슴풀색하늘소 등이 모두 딱정벌레에 속한다.
수염하늘소는 소나무에 재선충을 퍼뜨리는 솔수염하늘소와는 무관하다. 수염의 길이가 10센티나 되는 중대형 하늘소이다. 분비나무류 등 주로 침엽수림에서 서식한다. 죽어가는 나무나 상처 입은 나무에 무리가 몰려서 산란하는 습성이 있다. 애벌레가 큰 소리를 내어 천적인 새들을 놀라게 하여 자신을 방어하는 재주가 있다.
산길앞잡이는 몸 길이가 2센티 남짓한 소형 딱정벌레이다. 몸 색깔은 변화가 많은데, 주로 진한 녹색이나 흑갈색을 띤다. 딱지날개 양쪽에 각 3개씩의 옅은 황색 무늬가 있고, 가운데 무늬는 물결 모양을 하고 있어서 동정하기가 비교적 쉽다. 주로 고산지역에 흙모래가 많은 곳에서 관찰된다.
글ㆍ사진=김재일 사찰생태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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