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 한 분과 오갈 데 없는 어린이들이 어우러져 살고 있는 경북 상주 호암사(주지 현종)는 올해 처음 수확한 백련잎으로 연차를 만드느라 분주하다.
태풍 산산의 북상으로 비까지 뿌리는데도 이른 새벽부터 700m 떨어진 논에서 연잎을 수확해 오느라 16명의 식구들이 식전 댓바람부터 손발을 바쁘게 움직인다. 현종 스님이 “날이 추워지면 연잎이 누렇게 낙엽진다”며 일을 서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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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2학년 막내부터 20살이 훌쩍 넘은 형과 누나까지 호암사 식구들이 총 출동했다. 아이들의 ‘엄마’인 공양주 이옥연(55) 보살과 인근 마을의 신도들까지 가세하니 절은 순식간에 연차공장을 방불케 한다.
초등학생들은 비에 촉촉이 젖은 연잎을 정성스럽게 닦고 스님은 연잎에 붙은 연대를 잘라낸다. 중·고등학생 누나들은 도마를 차지하고 앉아 연잎을 잘게 썰고, 형들은 다섯 개의 대형가스 불 위에서 잘게 썬 연잎을 노릇하게 덖어냈다.
연차를 만드는 데 가장 중요한 작업은 연잎을 노릇노릇하게 덖어내는 일. 온도가 너무 높아도 안 되고 낮아도 안 된다. 수분이 자연스럽게 증발해 백련특유의 향을 그대로 머금도록 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연잎을 덖다가 식히길 무려 아홉 번을 반복해야 노릇노릇한 연차가 만들어진다.
“백련차는 은은한 향이 백미죠. 바람이 일렁이면 온 동네가 백련 향으로 가득해요. 이 향을 지켜낼 수 있어야 최고의 연차가 됩니다.”
현종 스님은 비법을 소개하면서도 작업에서 손과 눈을 떼지 않는다.
“이건 전부 스님이 농사지은 거예요. 우리가 학교 간 사이 스님이 모두 풀을 뽑았거든요.”
평소 스님을 돕지 못해 미안했던지 막내 영철(초등학교 2·가명)이도 오늘만은 장난을 뒷전에 두고 한몫을 톡톡히 했다.
16년 전 봉암사 선방에 들어가려다가 우연히 한 아이를 맡게 되면서 16년째 아이들을 돌보고 있는 현종 스님은 “IMF 이후 계속 줄어드는 후원만을 마냥 바라볼 수 없어 지난 4월 백련을 분양받아 인근 논 1200여 평에 심게 됐다”고 말했다.
현종 스님은 지난 4월부터 백련을 재배하느라 하루도 쉬지 못했다. 농약과 비료를 사용할 수 없기 때문에 일일이 손으로 풀을 뽑아야 했다. 그러나 일요일마다 아이들과 함께 생명을 키우는 또 다른 보람과 기쁨을 느꼈다.
인터넷포털사이트 네이버에 ‘호암백련(http://cafe.naver.com/qorfus.cafe)’이라는 카페도 개설해 연이 발아해 연꽃을 피운 사진들을 일일이 올려놓았다.
이렇게 만든 호암백련차 가격은 70g 한 통에 3만원이다. (054)541-786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