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3~5일, 서울 장충체육관에서 열린 중국국가 장애인예술단의 ‘마이 드림’은 장애를 극복한 아름다운 공연으로 한국인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장애인이 ‘도움을 받아야 하는 불쌍한 사람’이 아니라 그저 남들보다 약간 불편할 뿐이라는 것을 뛰어난 예술적 기량으로 보여주었다. 250여 명의 장애인 예술단원들은 신체장애를 극복한 아름다운 공연은 더 큰 감동의 물결을 안겨주었다.
7월 4일에는 ‘판소리 말아톤’으로 유명한 발달장애아 최준군이 판소리 완창에 이어 피아노 연주를 선보였다. 강북장애인복지관이 주최하고 ‘사랑울림’이 주관한 이날 음악회는 발달장애아 음악치료기금마련 자선음악회로 진행돼 장애인들에게는 희망을, 비장애인들에게는 진한 감동을 선사했다.
흔히 ‘장애인’이라고 하면 ‘나와는 다른 사람이므로 베풀고 돌봐야 한다’는 생각을 갖기 쉽다. 심지어 장애인들과 대면하는 상황이 어색하고 불편해 피하고 싶다는 사람도 있다. 영화 ‘말아톤’에 나오는 “저런 아이를 왜 밖에 내보내요. 정신병원이나 장애인시설에 보내지”라는 대사는 일반인들의 장애인에 대한 인식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장애인과 문화활동을 연결 짓기는 더욱 역부족이다. 그들도 우리와 똑같이 문화의 향유자이자 생산자가 될 수 있다는 인식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문화적 차별 속에 살아가는 그늘진 이웃에게는 문화향유도 복지입니다”라는 글귀가 담긴 장애우문화센터의 안내글 속에는 장애인들의 애환이 진하게 녹아들어 있다.
장애인에 대한 인식과 지원이 척박한 우리 현실에서, 최근 문화 시혜자로 우뚝 서고 있는 장애인들이 늘어나고 있다. ‘모든 존재가 평등하다’는 가르침을 전하는 불교계에서도 장애인들의 문화활동을 지원하고, 그들이 자신의 재능을 사회에 회향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해야 할 필요성이 높아지고 있다.
▲ 그동안 불교계는
장애인 복지에 관심을 가지고 활동해온 선두그룹에 서울 광림사 연화원(대표 해성)이 있다. 연화원은 1993년 청각장애인 배움터 ‘연화복지학원’을 설립한 이래, 청각장애인을 위한 복지활동에 앞장서왔다.
해성 스님이 문화 향유와 공연 등에 관심을 돌린 것은 1995년.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수화 노래 공연을 선보였다.
2002년에는 수화 연극 ‘사랑이 보이네’로 일반인들의 관심을 이끌어 냈다. 공연팀은 얼마 전 장애인문화예술진흥개발원 10주년 공연에서도 수화공연을 펼치는 등 적극적으로 활동하고 있다. 올해 12월에는 또 다른 연극을 무대에 올릴 예정이다.
그러나 전반적인 불교계의 장애인 문화복지에 대한 인식은 1회성 문화체험 위주로 채워져 왔다. 순천 송광사의 장애인 사찰체험과 같은 사찰관광류의 행사나 지난 1월 밀양 표충사에서 진행된 한국농아인협회 간부들의 템플스테이 등은 단발성 행사로 그쳐 아쉬움을 남겼다. 장애인들이 불교문화를 만끽할 수 있는 자리가 되기는 했지만 그 이상은 진척될 수 없었던 것이다.
물론 개별 장애인복지관에서 장애인을 위한 사군자 교실, 노래 교실 등 다양한 문화강좌를 개설 운영하고 있기는 하다. 문제는 장애인들이 단순한 ‘강좌수강’에 그칠 뿐 문화시혜자로 발돋움 할 수 있는 지원은 부족하다는 데 있다. 불교계에서 운영하는 장애인 관련 단체가 많지 않다는 점도 장애인을 위한 문화복지 혜택을 펼치는 데 걸림돌이 된다고 장애인 복지 담당자들은 입을 모은다.
▲ 문화 시혜자로 ‘우뚝’
이러한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자신이 가진 문화 재능을 주변에 나누는 불자들이 적지 않다.
판소리 완창에 도전해 성공한 발달장애아 최준군, ‘작가의 집’에서 아이들에게 무료로 그림을 지도하는 뇌성마비장애인 한경혜씨, 시각장애를 극복하고 바이올리니스트의 꿈을 키우며 자선공연 무대에 서는 김지선양, <솟대문학>을 발행하며 수많은 장애인들이 ‘작가’의 길을 걸을 수 있도록 돕는 방귀희씨 등이다. 다양한 분야에서 자신이 가진 재능을 연마하고, 그것을 사회에 회향하고 있는 이들은 문화 시혜자의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개인의 원력으로 문화 나눔의 삶을 살아가는 이들도 있지만 장애인들이 끼를 발휘할 수 있는 무대를 마련하려는 복지단체들도 늘고 있다.
강북장애인복지관은 지난 7월 판소리 말아톤 최준군을 비롯해 발달장애아를 돕는 음악인 모임인 ‘사랑울림’과 함께 음악회 ‘휴(休) 여름, 쉬어가다’를 개최했다.
‘사랑울림’ 음악가들은 앞으로 음악프로그램을 통해서 발달장애아들을 지속적으로 지원하는 것은 물론 발달장애아들이 주체적으로 활동할 수 있도록 그룹 활동을 지도한다는 계획도 갖고 있다.
경북 지역에서는 1년에 한 차례 장애인들이 직접 창작한 공예 서예 회화 문예 등 여러 분야의 작품들을 전시하고 노래 공연 등에 나서는 경상북도장애인종합예술제도 열린다. 올해로 5회를 맞이한 이 예술제는 불교계 장애인복지관들이 연이어 주관하며 전력투구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경주시장애인종합복지관(관장 종광)이, 올해는 영주시장애인종합복지관(관장 도륜)이 장애인들의 끼를 맘껏 발산할 수 있는 무대를 제공했다.
서울 한성포교원(주지 법농)은 지난해와 올해 두 차례에 걸쳐 ‘한일 장애우 교류 한마당’을 열었다. 일본 장애인 연극단 ‘쇼난 카메구미 극단’이 내한해 공연했고, 한국에서는 중증장애인들이 나서 연극을 선보였다.
물론 이들이 문화 시혜자로 거듭날 수 있었던 것은 장애를 극복하고 자신의 재능을 발휘할 수 있도록 도와준 수많은 도움의 손길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 사회에서는
우리 사회 전반에 걸쳐 장애인을 문화 생산자로 키우고, 자신의 재능을 사회에 회향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시스템은 아직 미비한 편이다.
우리나라 문화기관의 80%가 장애인 관련 시설 및 서비스를 갖추고 있지 않을 뿐 아니라(‘장애인의 문화기관 접근성’ 허순란, <소비자 문제 연구> 2006년 7월) 공연장에 휠체어 전용석, 장애인 주차장ㆍ화장실을 제대로 갖춘 곳도 드물다. ‘장애인에게 문화 활동은 사치’라는 사회인식도 걸림돌이다.
그러나 최근 장애인의 문화권리를 찾자는 목소리가 높아짐에 따라 장애인들의 문화활동을 지원하는 몇몇 단체들이 설립돼 활동을 하고 있다.
2000년 문을 연 장애우문화센터(www.cowalk.org)는 문화의 주체이자 생산자로서의 장애인 문화예술 활동을 확보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장애인들에게 문화공연을 접할 장소와 기회를 만들어 주고, 나아가 이들이 문화의 생산 주체로 활동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한국장애인문화협회는 지난 7월 문화예술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는 장애인들을 격려하기 위해 ‘대한민국장애인문화예술대상’을 신설했다. 역경을 이기고 문화예술분야에서 뛰어난 역량을 쌓은 장애인들이 재능을 마음껏 펼칠 수 있는 장을 마련하기 위해서다. 한국장애인복지진흥회도 대한민국장애인 문학상ㆍ미술대전을 개최하고 있다.
한국문화예술진흥원은 ‘장애인 문화향수권 신장사업지원’을 펼친다. 장애인으로 구성된 예술단체와 장애인 예술가의 창작활동을 지원하고 일반 예술단체의 장애인대상 사업을 활성화하기 위한 목적에서다.
이 같은 움직임에 발맞춰 문화관광부도 ‘장애인 문화예술교육 종합계획’을 수립하기 위해 장애인 문화예술교육 현황을 파악하고 필요한 시설, 프로그램, 지원방안 등을 논의하고 있다.
이웃 종교계도 장애인의 문화권리 향상에 앞장서고 있다. 1988년 ‘한국장애인선교예술단’으로 창립한 뒤 94년 이름을 바꾼 ‘한국장애인문화예술선교회’는 시각, 청각, 지체장애를 가진 예술인들이 모여 선교활동을 하는 곳이다. 이들의 무료 문화예술공연은 장애인들에게 문화공연 참여 기회를 줄 뿐 아니라 선교효과도 얻을 수 있다. 한국시각장애인기독교협의회와 한국시각장애인선교회, 한국장애인선교단체총연합회 등도 장애인을 위한 문화지원을 하고 있다.
▲ 왜 더 필요한가
장애인들에게 문화활동은 왜 이토록 강조되어야 하는 것일까?
1회성이 아닌 공연은 하면 할수록 장애인들의 적극적인 참여와 재능 발굴에 효과적이었다.
연화원의 수화 노래·연극 공연을 살펴보면 그 효과는 극명하게 드러난다. 공연의 시작은 비장애인들이 이끌었지만 회를 거듭할수록 장애인들이 스스로 극본을 쓰거나 연출을 하고 노래 가사 수화번역에도 적극 참여했다.
해성 스님은 “장애인들에게 공연할 기회를 주고 연극, 노래, 꽃꽂이 작품전시 등을 하니 장애인들이 뿌듯함과 용기를 얻는 것뿐만 아니라 그 가족과 친구들 비장애인들에 대한 인식개선 효과가 엄청나다”고 장애인이 문화 시혜자가 될 때의 효과를 설명했다.
영주장애인종합복지관 관장 도륜 스님은 “장애인들이 일반인들보다 공연 등 문화 시혜자가 될 수 있는 기회가 적은 것은 사실”이라며 “조계종 복지재단이 전국적인 규모의 장애인 예술제 등 장애인들이 자신들의 재능을 펼칠 수 있는 전국적인 규모의 장애인 예술제를 마련해주면 좋겠다”고 피력했다.
장애를 가졌다고 해서 문화욕구가 줄어들지 않기 때문에 보다 많은 문화를 향유하고 즐길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이러한 전국 규모의 예술제가 많이 열리면 장애인 복지단체들의 참여 폭도 넓어진다는 것이 도륜 스님의 생각이다.
“불교계가 나서 장애인 문화사업으로 1년에 한 번 공연 프로그램을 공모해 지원했으면 좋겠다”는 장애인 복지단체들의 꿈이 이루어질 때, 더 많은 장애인 문화 시혜자들이 탄생할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