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10.23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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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거사, 선의 황금시대 이끈 인물”
[인터뷰]‘방거사 어록 강설’ 발간한 혜담 스님
혜담스님
물을 긷고 나무를 나른다고 하는 일상의 생활이 신통이고 묘한 작용이며 곧 도의 현현임을 스스로 체득하고 그러한 경지에 도달해 있었던 방거사(?~808).
한국불교에서는 전통강원의 교과목인 대혜 스님의 선 교과서인 <서장>에 방거사의 글귀가 인용됐지만 어록이 책으로 간행된 적은 없다. 이에 혜담 스님(경기 광주 각화사 주지·사진)이 방거사 입멸 1200주년(2008년 7월 8일)을 2년 앞두고 한국불교 최초로 <방거사 어록 강설>을 발간했다.

▲방거사가 많이 알려지기는 했지만 그의 사상에 대해서는 분명치가 않다. 방거사가 한국불교에 있어서 왜 중요한 분인지?
―방거사는 선의 황금시대라 불리는 8세기 중반에서 9세기 초까지 마조 선사나 석두 선사가 선풍을 드날리던 시대, 마조 선사의 유일한 재가제자였다. 당시 유명한 선사들의 날카로운 기봉을 통쾌하게 꺾거나 때로는 당당하게 맞섰다. 그의 이런방식은 당대 불교가 선(禪)으로 특정짓는데 커다란 영향력을 끼쳤다.

▲방거사가 임제선의 정맥을 잇고 있는 한국불교와 연관이 깊다고 하는데 팔만대장경에도 나오지 않은 이유는? 그리고 어록을 발간하게된 계기는?
―아마도 고려시대 귀족불교의 영향이 아니었나 생각한다. 출가자가 아닌 거사의 해탈에 등한시했던 당시 사회분위기에 무관치 않다고 본다. 방거사 어록을 발간한 계기는 은사인 광덕 스님(1927~1999)께서, 방거사의 ‘일체의 존재와 상관하지 않는 자’라는 법문에서 불법에 대한 눈이 열렸다고 고백하시며 어록을 번역해보라는 명을 받은 것이 크게 작용했다.

▲스님이 <방거사 어록 강설>을 통해 하고자 하는 이야기가 있다면?
―그것은 방거사처럼 우리 한국불교계의 스님들이 재물욕과 명예욕을 버렸으면 하는 의미에서다. 방거사는 자기의 집을 두군데나 절로 만들었을뿐더러 아예 재산을 수십대의 마차에 실은 후 강속에 버렸다. 사람들이 찾아와 재물을 불사에 쓰지 않고 강속에 처박아 버리는 이유가 뭔지를 묻자 방거사는 ‘재물이 나쁜 것이라 생각하는데 어떻게 그것을 신성한 불사에 쓴단 말이요’라고 답한 것에서 메시지를 찾아야 한다.

방거사어록 강설
▲결국 우리나라 선불교의 정체성 문제와도 연관이 되는 듯 싶은데….
―<방거사 어록 강설>을 통하여 선의 황금시대였던 당시의 선풍을 그대로 가져와 선종 본래의 바른 수행방법을 찾았으면 한다. 일부의 의견이기도 하지만 ‘선이 잘못됐다’는 것 등 교계에서 일고 있는 간화선을 둘러싼 소모적인 논쟁에 앞서 참선 본래의 참구법으로 회귀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구체적으로 선의 황금시대와 비교해 한국불교 간화선의 문제를 지적해본다면.
―화두를 위한 화두는 안된다. 몸 전체가 화두가 되어야 한다. 의심을 하기 위해서 억지로 의심을 하다보니 상기가 일어나는 것 같다.

한편 <방거사어록 강설>은 석두 마조 약산 제봉 단하 백령 보제 장자 송산 본계와 대매 대육 칙천 낙포 석림 앙산 곡은과 화주승 목동 좌주와의 대화가 실려있다. 또 방거사의 행화, 난이삼부곡, 시게삼수, 거사의 입멸등이 소개되고 있다.
김원우 기자 | wwkim@buddhapia.com
2006-08-29 오후 5: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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