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대방이야기를 본격 연재하기에 앞서 초판 서문을 소개해 이해를 도모하고자 합니다.[편집자주]
<지대방 이야기>를 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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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대방은 학인 스님들이 공부하다 잠깐씩 머리를 식히는 곳입니다. 그곳에서 오붓하게 함께 사는 도반들끼리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모으다 보니 ‘지대방’이란 제호의 작은 소식지가 만들어졌습니다. 정직한 스님들의 이야기는 그렇게 시작되어 ‘해청당’, ‘정혜사’로 담박히 이어져서 불기 2543년 겨울, 20호를 맞이하여 어느덧 10여 성상星霜이 흘렀습니다. 송광사를 휘도는 계곡 물소리 변함없고, 조계산의 숨결 여전하듯, 송광사 스님들의 이야기 또한 여여如如합니다. 해서, 그 인연의 한 자락 잡아 「지대방 이야기」란 모음책을 엮게 되었습니다.
자칫 수행자의 모습에 외람되지나 않을까 「지대방 이야기」를 엮는 손길이 사뭇 조심스러웠습니다. 잠시 돌아보는 마음으로 이 작은 책자의 변辨을 대신할까 합니다.
더벅머리로 일주문을 들어서면 고요한 세계가 열립니다. 원주 스님께 입산을 부탁드리면 곧바로 행자실에서 일주일간 묵언 면벽이 시작됩니다. 세상의 분주함을 잊고 벽만 바라보는 일. 어쩌면 그것을 원해 출가를 했는지도 모르지만, 저리는 발보다 침묵은 초심자를 더욱 힘들게 합니다. 누군가 ‘왜 출가를 했느 냐?’고 물어보면 근사한 대답이 준비되어 있는데……. ‘보고 싶은 사람 있느냐’고 물어 오면 빙긋이 웃으며 ‘없다’고 말할 수도 있는데……. 하루 종일 표현할 수 없는 상념들. 대개는 이 고요를 견디지 못하고 다시 돌아갑니다.
정혜사 24호
일주일이 지나 밤새워 삼천배를 드리고 난 후 삭발을 하고 행자옷을 입으면 또 다른 고요가 시작됩니다. 문득 문득 놀라게 하는 세상의 습習들, 나도 모르게 많은 세속의 이기利己에 물들어 있었음을 느끼며 업이 바뀌는 그날까지 묵언을 다짐합니다.
행자생활이 끝나고 강원에 방부 들여 마악 큰방 대중생활을 시작할 즈음, 어느 날 불현듯 정혜사 원고를 모집한다고 합니다. 아직 법복도 몸에 맞지 않고 발우공양 할 때마다 숟가락, 젓가락도 미처 구분하기 힘든데 글을 쓰라고 합니다.
이제는 자신의 삶을 돌아보며 하루하루 현재의 위치를 확인해야 한답니다. 그 속에서 기쁨과 슬픔, 수행자의 고독도 다 내가 만들어 낸 허상임을 알아 차려야만 한답니다. 한 줄 한 줄 써 내려갈 때마다 얼마나 자신에게 정직한가, 진실한가 물어 봐야 한답니다.
송광사 강원 소식지 ‘정혜사’는 이렇게 엮어집니다.
2534년 3월 ‘지대방’ 1호, ‘해청당’ 준비호와 창간호를 거쳐 20호까지 이어지는 ‘정혜사’에는 송광사 강원의 모든 일상이 소탈하게 담겨져 있습니다. ‘정혜사’는 스님들이 직접 만드는 책이라, 표지색은 다소 촌스럽고 편집도 세련되지 못하며, 외부의 글을 싣지 않기에 비슷비슷한 수행의 일상이 많지만, 그 속에는 변화하는 세상과 승가 속에서 스스로의 본분사를 지키려는 옹고집이 있습니다.
처음에는 보통 그것이 송광사 강원의 매력인 줄 모릅니다. 조금은 어눌하고 순박하다 못해 촌스럽기까지 한 송광사 강원에서 만들어 낸 소식지가 그럴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게 되고, 그런 분위기가 좋아지게 되기까지는 몇 번의 시행착오와 포기가 이어진 다음에야 가능한 일입니다.
‘지대방’은 강원 스님들의 휴식 공간이자 차담실입니다. 오전 세시부터 저녁 아홉시까지 빼곡히 짜인 일정 속에, 잠시 틈이 나면 차도 마시고 한담도 하며 자칫 경직되기 쉬운 집단 생활에서 도반의 정을 느끼는 윤활유 같은 공간입니다. 조금씩 긴장을 풀고 나누는 이야기 속에는 선사의 법거량과 수행의 체험도 있고, 다가올 해제의 계획과 도반들의 가벼운 장기 등 학인들의 소박한 즐거움과 미래가 있는 곳입니다.
해청당 2호
‘정혜사定慧社’는 보조 스님의 결사정신을 계승하기 위해 이름 지은 송광사의 큰방으로, 사찰의 대중공 사[회의], 포살, 공양을 하는 공간이며 강원의 강의실이자 공부방입니다. 물론 밤에는 6, 70여 명이 자는 침실로 쓰입니다. 강원 소식지의 이름을 창간호부터 12호까지는 그전에 살던 공간인 ‘해청당海淸堂’ 이름을 쓰다가, 13호부터 큰방을 새로 옮기면서 그에 따라 ‘정혜사’라 바꾸었습니다. 어느덧 20호를 맞은 소식지 가운데 소중하고 맑은 이야기를 추려서 「지대방 이야기」라는 작은 책자로 엮게 되었으니, 그동안 묵묵히 지켜보며 함께 해온 도반들과 많은 관심을 보여주신 이들에게 보답하고자 합니다.
「지대방 이야기」는 이렇듯 갓 출가한 햇병아리 스님들이 모여 사는 송광사 강원의 일화를 모은 것입니다. 강원에 있으면서 글을 쓴다는 것은 항상 힘이 듭니다. 출가 수행자라는 이미지가 강하기도 하지만, 자칫 실수하면 개인의 감정에 치우치게 되고, 나아가 부처님의 말씀을 왜곡하지 않을까 하는 부담 때문입니다.
그러면서도 「지대방 이야기」를 내는 것은 그 속에 너무나 맑은 영혼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부처님의 자비심은 한량없음을 알기 때문입니다. 여기 부처님 이름을 빌려 글을 쓰거나 보는 이들에게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하는 옛 글 한편을 소개합니다.
나에게 한 권의 경전이 있으니 我有一卷經
종이 위에 먹으로 써 놓은 것 아니다 不因紙墨成
펼쳐보면 글자 하나 찾아 볼 수 없지만 展開無一字
언제나 밝은 빛이 온 누리에 비친다네 常放大光明
끝으로 이 책을 내면서 선배님들의 소중한 정혜사 정신이 외형으로 치우치지 않았을까 염려됩니다.
불기 2544년 5월 하안거 결제를 앞두고
정혜사 편집부 합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