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의 나이에 매월 40여명의 지역불자들과 함께 불교문화유적 답사 길에 오르는 이가 있다. 영남불교문화연구원 김재원 원장이다.
김 원장은 영남대학교 대학원과정에서 한국중세사(통일신라부터 고려말까지)를 전공하고, 한국중세 사원의 창·중건과 불상 탑 부조등의 영조물에 관한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재야사학자로 한국중세사학회와 한국 동서철학회에서 활동하고 있는 김 원장은 1988년부터 약15년 간 영남일보가 주최하는 영남문화유적답사팀을 이끌었던 인물로 유명하다. 1998년에는 1년 동안 영남일보에 ‘김재원의 불상이야기’를 연재하고, 2003년 4월부터 1년간은 대구불교방송에서 ‘우리지역불교문화재’라는 프로그램을 진행하기도 했다.
성주가 고향인 김 원장은 원래 불교 집안에서 태어나 어린시절 선석사를 자주 갔다. 그리고 일본인이 한국에서 없어진 서원(書院)을 연구한 것을 보고 한국에서 사라진 사찰의 흔적을 일본인이 먼저 찾기 전에 먼저 밝혀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김 원장은 처음부터 사학을 공부하진 않았다. 대학에서 철학을 공부했던 김 원장은 사회에서 조형과 관련된 직종에서 일을 하다가 영남대학교 김윤곤 교수(한국중세사학회 설립, 목판팔만대장경을 만든 각수 연구로 유명하다)의 권유로 한국중세사를 전공하게 됐다. 도량형 원기(헌종 때 조대비가 친정조카에게 준 자)가 일본에 있다는 소식을 듣고 수없이 일본을 방문한 끝에 겨우 그림을 그려올 수 있었던 김윤곤 교수는 조형관련 업을 하고 있던 김 원장에게 의뢰해
도량형 원기를 실물과 똑같이 만들었다. 당시 조형물에 관심이 많았던 김 원장은 갓바위 부처님을 유심히 살펴 약사여래가 아님을 밝히는 기고문을 일간지에 게재하기도 했는데 김교수가 이런 그의 재능을 높이 샀던 것이다.
“몰랐던 것을 알게 되었을 때의 희열은 어떤 것과도 바꿀 수가 없습니다.”
과거 숨겨진 역사를 찾았을 때의 기쁨을 말하는 김 원장의 얼굴엔 무한한 충만감이 가득하다.
김 원장은 “불교문화유적을 사랑하면 볼 줄 아는 눈이 열린다”고 말한다. 그리고 “유적 유물에서 다양한 이야기와 과거의 삶이 튀어나와 설명하도록 해야 한다”며, 박제된 유적 속에서 과거의 삶과 살아있는 이야기를 거침없이 꺼내 보여준다.
“내 이야기를 듣고 대중들이 불교문화유적을 사랑의 눈으로 받아들일 때 더없는 보람을 느낀다”는 김 원장은 지난해 6월 불 복장연구를 하는 선진스님과 사단법인 영남불교문화연구원을 설립했다.
평소 사회교육과 평생교육에 관심이 많은 김 원장은 학문이 전문가의 전유물이 돼서는 안 된다고 지적한다.
김 원장은 연구차원에서 매주 토요일 연구원들과 함께 <조상경>(조선후기 용허 스님의 주도로 지탁 스님이 찬집한 책)을 번역하고 있다. “동국대학교의 협조로 유점사본, 능가사본, 김용사본, 필사본을 구해 비교검토하고 있는데 최근 부산에 더 오래된 <조상경>이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며 조만간 꼭 구해 연구에 활용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 원장은 내년 봄까지 <조상경> 연구서를 책으로 엮을 예정이다. 또 불교문화보급을 위해 지난해 8월부터 매월 40여명의 불자들과 불교문화유적답사를 다니며 2년에 한번 꼴로 답사기행문도 만들 계획이다. 또, 차후에는 사경, 명상, 역사 강의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만들어 일반 불자들의 수행공간으로까지 활용될 수 있도록 여건을 조성할 생각이다.
지난해 영남불교문화원을 설립한 이후 동화사 대웅전 복장물 봉안에 동참하면서 가장 보람됐다는 김 원장은 “불교인구의 저변확대와 불교를 원론적으로 알리는데 약간의 보탬이라도 되었으면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