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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반의향기]서정환 신아출판사 대표
신아출판사 서정환 대표

조선후기(1700-1800년대)에 전라감영 전주에서 한글로 된 고대소설이 발간되어 전국에 유포되었다. 심청전, 춘향전, 토끼전 등 판소리의 원형이 그대로 책이 되어 나온 것이다.

이들 고대소설은 전주의 옛 이름을 따 완판본(完版本)으로 불린다.

그로부터 300여년이 지난 오늘, 역사 속으로 사라진 완판본의 맥을 잇고자 발원한 이가 있다. 완판본이 발간되던 서포(동문, 다가동 일대)에서 37년째 출판 외길을 걷고 있는 신아출판사 서정환 대표(66. 전북불교문학회장).

“고대 국문소설이 대부분 불교의 전생담에서 나온 불교 이야기이고, 불교사상을 담고 있습니다. 따라서 완판본은 요즘 말로 ‘퓨전(fusion) 경전’인 셈이죠”

전주에서 활동하는 출판인이라면 누구나 완판본에 대한 애정을 갖고 있다. 전북불교문학회 서 회장도 마찬가지이다. 아니 서 회장은 더욱 남다른 심정으로 애착이 더하다. 완판본은 전라도 사투리로 쓰여 진 향토색 짙은 고대국문소설이면서, 곳곳에서 부처님의 가르침을 읽을 수 있기 때문이다.

말(言)은 아무리 반복해도 뜻을 놓치기 쉽지만, 글(書)은 수없이 생각하고 다듬어 쓰기에 읽을 때마다 다른 감동을 준다. 그러기에 출판인 서 회장은 문서포교를 중요하게 생각한다.

그렇다고 굳이 경전을 출판하는 것만이 문서포교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부처님을 내세우지 않더라도 얼마든지 맑고 향기로운 이야기를 전할 수 있고, 더 많은 이들이 쉽게 동화되는 것을 보아왔다.

서 회장이 운영하는 신아출판사는 그동안 서울 이남에서는 가장 많은 1300여종에 이르는 수십만 권의 책을 냈다. 소설, 시집, 에세이, 아동문학은 물론 대학교재, 미술, 사진 등 전문지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이 가운데 특히 눈에 띄는 것은 월간 소년문학, 격월간 수필과 비평, 계간 문예, 문예연구 등 4종에 이르는 잡지이다. 출판계에서 돈이 되지 않아 기피하는 것이 문예관련 잡지인데, 서 회장은 문학의 맥을 잇기 위해 아낌없이 투자하고 있다.

열악한 지역출판임에도 불구하고, 작가는 문학과 출판의 꽃을 피우는 씨앗이라는 생각으로 문예잡지를 통해 신예 작가 발굴과 이들이 활동할 수 있는 마당을 제공하고 있는 것이다.

“살면서 만나는 장애를 피하지 말고 공부삼아 정진하라는 <보왕삼매론>을 생각 생각 놓치지 않으려 합니다. 그렇지만 돈이나 명예는 어느 정도 놓은 것 같은데 일에 대한 집착은 여전히 버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신아출판사는 1970년 ‘신아문예사’로 시작됐다. 부인 황의순 보살과 함께 5평 남짓한 공간에서 프린트와 등사기로 하는 인쇄업이었다. 사업에 탄력이 붙으면서 1984년 신아출판사 등록과 함께 본격적인 출판을 했다.

집에서 시작한 출판사였기에 회사를 확장한다는 것은 집이 커지는 것을 의미한다. 모든 직원이 퇴근해도 서 회장은 여전히 직원이다. 더구나 서 회장은 젊은시절 사업을 하면서 받은 스트레스를 이기지 못해 차를 타지 못하는 특이 체질의 소유자가 되고 말았다. 자동차는 전혀 타지 못하고 오토바이에 의지해 다니는 것이 전부이다. 그러다보니 타지에서 결혼하는 자녀들 결혼식에도 참석하지 못했다. 지난 37년간 단 한번의 휴가도 없이 일했고, 집과 회사를 떠나지 않은 것도 이런 연유에서이다.

이렇듯 24시간 회사에서 생활하는 서 회장에게는 출판이 전부이다. 오로지 출판만을 생각하다보니 출판의 흐름이 보이기 시작했다. 항상 출판계에서 남들보다 5년은 앞서갔다. 지역에서는 최초로 컴퓨터 편집(1986년)을 하고, 칼라 고속 인쇄기 도입(1991년)과 필름과정 없이 직접 인쇄하는 CTP(2000년)로 제품의 질을 높이는데 주력했다.
서정환 대표는 전북불교문학회장을 맡고있다.

서 회장은 40여명에 가까운 직원들 가운데 누구보다 더 열심히 공부하고 일한다. 새로 나오는 컴퓨터 프로그램은 실무자보다 정보를 먼저 알고 도입하는가 하면, 인쇄실에서는 기계 박사로 통한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출판인 양성교관이 되었고, 전주에서 활동하는 출판인의 70%가 신아출판사를 거쳐 갔다.

창업 동기이자 든든한 동반자였던 부인 황 보살이 3년 전 황망하게 먼저 가버렸다. 부인이 생각날 때면 <반야심경> <장엄 독송집> 등 각종 경전과 ‘찬불가 모음집’ ‘사경용지’ 등을 가지고 인근 사찰을 찾곤 한다. 서 회장 부부는 불교교양대학을 다니며 누구보다 문서포교만은 열심히 하자고 다짐했던 도반이었다. 이제 반쪽의 몫까지 도맡아 더 큰 책임감을 느낀다.

출판인으로 일가견을 이룬 서 회장은 또 하나의 꿈이 있다. 출판의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출판 박물관을 세우는 것이다. 요즘들어 부쩍 창고를 찾아 고서적에서 현대에 이르는 출판물은 물론 인쇄 관련 기계를 다시금 손보는 이유이다.


전주/글=이준엽 기자 사진=박재완 기자 | maha@buddhapia.com
2006-08-21 오후 1:4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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