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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8월 14일 오전 7시 남양주 봉선사 청풍루. 이른 아침인데도 60여 스님들이 <화엄경>을 들고 하나둘씩 모여들었다. 17일까지 4일간 봉선사 조실 월운 스님이 직접 지도하는 봉선사 능엄학림 하계 단기 공개특강을 듣기 위해 모인 수강생들이다.
이번 특강은 동국역경원장이며 봉선사 능엄학림 학장인 대강백 월운 스님이 경학발전을 위해 경학 공부에 뜻을 둔 스님들에게 전통방식의 수업을 체험케 하자는 취지로 마련했다.
공개특강은 두개 반(화엄반, 선요반)으로 나눠 매일 오전 7시10분부터 오전 10시까지 3시간 동안 진행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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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날 강의는 월운 스님이 오전 7시10분쯤 강단에 앉자 시작됐다. 월운 스님은 “경학은 20년 이상은 해야 뭔가를 조금 알게 될 정도로 어려운 길”이라며 “앞으로 불교를 일반 대중들에게 쉽게 알리기 위해서는 분명 경학에 능통한 스님들이 많아야 되는 만큼 여러분들도 큰 원을 세워 열심히 공부하길 바란다”고 경학의 필요성을 역설하자 수강생들의 눈빛이 자못 진지해졌다.
수업은 전통방식인 대나무 산통을 이용해 일종의 제비뽑기로, 수업시작전 뽑힌 학인스님이 전날 미리 예습한 <화엄경> 현토를 쭉쭉 읽고 풀이해 나가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해운청법(海雲聽法) 선주의승(善住依僧)…”스님의 강독에는 막힘이 없었다. 선재동자가 53선지식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두 번째 비구인 덕운 스님의 법문을 듣는 장면이다. “훌륭하구나, 선남자여, 남쪽의 해문국에 해운 비구가 계시니 보살도를 여쭈면 광대한 선근을 내는 인연을 분별해 설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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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간에 월운 스님의 날카로운 질문에 잠시 학인 스님의 강독이 끊겼다.
“잠깐, 네 번째줄에 ‘당문표석(當文標石)’이란 말이 나오는데 무슨뜻인지 아는 스님? 이 글자는 자주 나오는 것이어서 확실히 알아야 돼요.” 잠시 침묵이 흘렀다. 그러자 월운 스님은 “대답이 없다는 것은 모두 안다는 뜻입니까? 아니면 전혀 몰라서 무슨 질문인지조차 모른다는 것입니까?” 부드러운 힐난(?)에 학인스님들이 박장대소하자 엄숙했던 분위기에 여유가 생겼다. 월운 스님의 설명이 이어졌다.
“‘당문표석’에서 ‘당문’이란 그 문장에서란 의미로 이 네글자를 풀이해보면 한문장 한문장에서 지표와 초석이 되는 것”이란 뜻입니다.” 그러자 학인 스님들은 그제서야 놓치고 있는걸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월운 스님은 이렇게 중간중간 경구해석은 물론 경전의 맥과 흐름을 짚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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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특강에서는 원전뿐만 아니라 ‘사기(私記)’도 가르쳤다. ‘사기’란 선배 학인들이 경전 공부를 하면서 나름대로 주석을 단 일종의 ‘학습 해설서’다. 선배 수행자들이 경학을 공부할 때 흘린 땀방울들이 고스란히 전해지는 문헌이기도 하다. 대부분의 사기는 초서로 필사돼 읽기조차 힘들지만 오랜세월동안 쌓아온 경학의 지식을 한눈에 파악할 수 있는 진귀한 자료다. 전통방식의 강의에서 핵심이 되는 교재이다. 또한 이번 강의에서는 사기와 함께 경전의 주제별 목차인 과도(科圖)도 강의했다.
<선요반> 수강생인 대정 스님은 “학림에서 경전 공부를 할때에는 교과서인 원전뿐만 아니라 3~4개의 사기를 함께 배우기 때문에 학습할 양이 엄청많다”며 “오전 강의가 끝나면 곧바로 오후 7시에 있을 논강 준비로 눈코 뜰 새 없이 바쁘지만 부처님 말씀을 한자 한자 새기며 깨달아가는 그 기쁨은 환희심이 날만큼 크다 ”고 즐거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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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더운 여름날 무한한 인내를 요구하는 능엄학림 공개특강은 어느덧 4일이 지나 수료식을 맞게 되었다. 60여 수강생들은, 엄격한 전통방식으로 경학을 공부하며 마음을 가다듬었을 선배 수행자들의 서릿발 같은 수행 정신을 듬뿍 배웠다고 회향식때 입을 모았다. 또한 이번 공개수업에 참여한 스님들 대다수는 이런 공개특강이 매년 열렸으면 좋겠다는 뜻을 비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