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10.22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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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연있는 고승들 이름 붙여 노거수 보호 ‘눈길’
[108사찰생태기행]대구 팔공산 동화사
동화사 상수원 조수지

대구 팔공산은 신라가 국태민안을 기원하던 오악(五嶽) 가운데 하나였다. 그러나, 927년 후삼국 통일전쟁이었던 동수대전의 피비린내나는 전쟁터로 바뀌고 말았다. 당시 후백제 견훤이 고려 왕건을 대파한 데는 백제계 법상종 사찰이었던 팔공산 동화사가 있었다.

신라 흥덕왕의 아들 심지(心地)에 의해 창건된 동화사가 친견훤 편에서게 된 데는 당시 미륵불교의 등장과 무관하지 않다. 백제 유민의 후손인 진표율사에 의해 불이 당겨진 미륵불교가 모악산 금산사에서 속리산 법주사를 거쳐 팔공산 동화사로 전해졌다. 이는 당시 미륵불교가 처음부터 친후백제적 성향을 띠고 있었음을 쉽게 짐작케 해준다.

팔공산은 낙동정맥의 중간에 위치한 보현산에서 서남쪽으로 뻗은 곁가지에 솟아오른 암산이다. 팔공산지는 해발 1192m의 비로봉을 중심으로 가산-동봉-관봉-환성산을 연결하는 주능선과 외곽을 둘러싸듯이 분포하는 환상산맥, 그리고 이들 사이에 형성된 분지로 구성된다.

동화사는 들어가는 출입구가 두 곳으로 나뉘어져 있다. 근래에 조성된 집단시설지구 쪽에 동화문이 있고, 들머리 계곡 옆에 봉황문이 자리하고 있다. 사람들의 출입은 동화문이 잦지만, 원래의 배치로는 봉황문이 일주문이다.
팔공산 향탄봉표

집단시설지구 분수공원 화단에 ‘綏陵香炭禁界(수릉향탄금계)’라고 새긴 표지석이 있다. 이 금표(禁標)는 조선 헌종의 아버지인 익종의 능인 수릉묘에 쓸 향탄[木炭]을 생산하기 위해 백성들의 산림 출입을 통제하는 경고판 같은 것이다. 이 금표는 당시 동화사가 팔공산 산림수호와 향탄생산 책임을 맡았던 봉산수호사찰이었음을 증명해주는 역사물이다.

일주문 앞 절벽에 마애부처님이 천년을 변함없이 정좌하고 있다. 마애불 문화는 자연조건의 결과물이다. 팔공산은 백악기 중기 이후 한반도 남부지역에 형성된 소규모의 불국사 화강암이 퇴적암 지역에 관입된 지 오래되지 않은, 비교적 젊은 암산이다. 따라서 다른 지역의 화강암보다 상대적으로 세립질을 보이고 있어서 우수한 마애불을 만들어 낼 수 있었다.

약사대불로 가는 계류를 건너면 오른쪽 숲 그늘에 장뇌삼(長腦蔘)들이 빨간 열매들을 매달고 있다. 장뇌삼은 산삼의 씨앗을 산지에 심어 재배한 것으로, 뿌리의 머리 부분이 길다고 해서 그런 이름이 붙은 것이다.

산삼이 예나 지금이나 천금같이 여겨지는 것은 발아조건이 까다롭기 때문이다. 방위, 온습도, 배수, 지질, 지형, 일조량 등을 매우 깐깐하게 따진다. 붙임성 또한 좋지 못해서 이웃한 나무들의 종류에 대해서도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데, 피나무, 오동나무, 옻나무, 가래나무 등과는 비교적 친하게 지낸다. 장뇌를 심을 때도 그런 조건을 살펴보고 심어야 한다.

동화사에 봉황과 관련된 건물이나 석조물들이 유난히 많은 것은 심지대사의 동화사 창건 드라마와 깊은 관련이 있다. 심지대사가 절터를 구할 때, 겨울철인데도 절 주변에 오동나무꽃이 만발했다고 해서 이름을 동화사(桐華寺)로 지었다고 전한다.

오동나무 숲에만 봉황이 깃든다는 전설에 따라 동화사 경내에는 일주문인 봉황문을 비롯하여 봉서루(鳳棲樓), 누각 앞 봉황알 등 봉황과 관련된 상징물들이 많다. 동화사가 앉은 형국도 봉황포란형으로 전해진다.

오동나무는 다른 나무에 비해 성장 속도가 빠르다. 자라면서 줄기에 구멍이 나면서 대나무처럼 속이 비는데, 용맹정진으로 마음을 비워가는 수행자들의 삶을 연상케 해준다.

요사채를 지나면 부후현상으로 속이 빈 노거수 느티나무 한 그루가 비스듬히 서 있다. 수령이 5백년에 이른다는 이 나무를 이름하여 ‘인악대사나무’라고 한다. 나무를 사랑하는 시민들이 동화사의 큰스님이었던 인악대사를 기려서 최근에 그렇게 이름을 붙인 것이다.

그런가하면, 동화사 칠성각 부근의 오동나무에는 동화사 창건주인 심지대사 이름을 붙였고, 성전암의 늙은 전나무는 성철 스님의 이름을 붙여놓았다.
사찰 경내에는 보호해야할 나무들이 많다. 이같이 해당 사찰과 관련된 고승대덕과 노거수와의 결연은 나무도 보호하고 역사인물도 기리는 일거양득의 좋은 방편이다.

대웅전 뒤로 돌아가면 거미고사리가 무리를 지어 석축에 붙어서 자라고 있다. 거미일엽초라고도 하는 거미고사리는 주로 산속의 바위나 노거수에 붙어서 자라는 양치식물이다. 잎은 녹색을 띠고 있는데, 뾰족한 잎 끝이 땅에 닿으면 거기에서 뿌리가 생겨 독립된 개체로 특이하게 번식한다. ‘거미’라는 접두사가 붙은 것도 그 때문이다.
으아리

약사암은 오솔길이 끝에 있다. 길 주위로는 꽤 판작한 농경지가 있고, 장마철인데도 햇볕이 양명하여 숲 가장자리에 다양한 곤충들이 관찰되고 있다. 메뚜기류로는 실베짱이, 여치, 방아깨비, 등검은메뚜기, 두꺼비메뚜기 등이 있고, 나비류로는 거꾸로여덞팔나비, 산호랑나비, 긴꼬리제비나비, 사향제비나비 등이 관찰된다. 팔공산밑들이메뚜기는 특정 지명을 머리에 달고 다니는 메뚜기이다. ‘팔공산’이라는 지명을 달고 다니지만, 전국 각지에 분포되어 있다. ‘밑들이’는 날개가 퇴화되어 흔적만 조금 남아 밑을 다 드러내놓고 다니기 때문에 붙은 이름이다. 날개가 퇴화된 것 외에는 벼메뚜기와 흡사하다.
거꾸로여덟팔나비

거꾸로 여덟팔나비는 봄과 여름 두 차례에 나타나는데, 여름에 나타나는 것은 검붉은 날개에 흰색 줄무늬가 선명하다. 날개를 펼치면 줄무늬가 여덟 팔(八)자를 거꾸로 세운 모양을 하고 있다고 해서 그런 이름을 가졌다. 주로 계곡 주변이나 숲 가장자리에 많이 나타난다.

약수암은 절이 크게 퇴락하여 현재는 상주하는 이가 없다. 마당 한켠에 왕원추리들이 제철을 맞아 꽃들을 피워내고 있다. 왕원추리는 우리나라 전국의 산지 풀밭에서 자라는 여러해살이 초본이다.

일반 원추리보다 꽃이 크고 색깔이 진해서 왕원추리라고 부른다. 겹꽃도 있고 홑꽃도 있다. 미국에서 인기있는 데이릴리는 우리의 왕원추리를 가져다가 개량한 원예화라고 한다.

동화사에는 주차장이 여럿 있는데, 모두가 시멘트로 포장되어 있다. 땅이 숨을 쉬고, 땅이 빗물을 받아마실 수 있도록 생태주차장으로 개선할 필요가 있다. 주차장 뿐만 아니라 비로암-부도암-내원암-양진암-염불암 등 산내 암자들을 잇는 길도 모두 자동차를 위한 시멘트 포장도로로 되어 있다. 도로 곳곳에 금이 가 있고, 지반이 내려앉은 곳도 있다.

지난번 집중호우 때 흙이 무너져내려 곳곳에 뻘건 상처들이 드러나 있다. 서둘러 방책을 세우지 않으면 흙이 비바람에 계속 유출될 것이 분명하다. 이 경우 지반을 탄탄하여 흙이 흘러내리지 않도록 하는 데는 조팝나무를 식재하면 효과적이다.
조팝나무는 습한 곳에서도 잘 자라고, 추위에도 강하고, 생육도 좋다. 토질도 별로 가리지 않고, 생장 또한 빨라서 심은 후 3년 정도면 키가 1m를 넘는다.

비로암-부도암-내원암에 이르는 골짜기는 팔공산의 대표적인 등산로이다. 옛날부터 이 골짜기를 ‘탑골’이라고 불러왔다. 근래에 팔공산 인근에 사는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나서서 점차 잊혀져 가는 팔공산 골짜기 이름 되찾기운동을 벌인 적이 있다. 자연을 사랑하는 또 다른 방편이 아닐 수 없다.

내원암에서는 미나리꽝을 두고 생활하수를 생태적으로 정화시키고, 거기서 나오는 미나리로 반찬을 만들어 먹는다. 미나리는 물속의 부유물질을 걸러주고, 물속의 각종 중금속과 유해 화학물질을 무해한 형태로 바꾸어주며, 물속의 질소와 인 등을 섭취하여 물이 썩는 것을 막아준다. 미나리꽝을 만드는 데는 여름이 제철이다. 미나리는 고여있는 물보다 흐르는 물을 좋아하기 때문에 배수구가 있어야 한다.

염불암에 이르는 동안 숲은 나무 목책 등으로 보호되어 있다. 장마가 끝나고 여름이 깊어가는 즈음이면, 으아리, 까치수영, 이삭여뀌, 짚신나물 등등이 햇볕 좋은 자리를 찾아 꽃을 피운다.
비로암에서 부도암-내원암-양진암-염불암-염불봉에 이르는 구간은 참나무류를 비롯하여 활엽수 터널이다.

팔공산은 활엽수들이 대세를 장악하고 있는 혼효림이지만, 소나무도 곳곳에 군락을 이루며 튼실하게 자리하고 있다. 소나무지역은 주로 팔공산 중턱에 자리하고 있다. 아직 재선충 감염은 없으나, 며칠 전에 예방 차원에서 항공방제를 실시하였다.
꾀고리. 사진제공=원우 스님

동화사 주변에서 관찰되는 조류는 대개 15종이다. 여름새들로는 지빠귀류, 꾀꼬리, 파랑새, 뻐꾸기, 노랑할미새 등 14종이 관찰되었다. 꾀꼬리는 몸이 밝은 연두빛을 띠고 있다. 사찰의 전설이나 벽화에 자주 등장하는 파랑새가 바로 이 꾀꼬리이다. 아름다운 분홍색 부리를 갖고 있으며, 눈가에서 뒷머리를 돌아 검은띠가 있다. 주로 활엽수 높은 나뭇가지에다 둥지를 틀어 4개 정도의 알을 낳는데, 대개 장마가 끝나면 부화한다.

그동안 나온 보고서를 종합해보면 팔공산에는 고라니와 멧돼지 등 14종의 포유류가 서식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 가운데 들고양이는 생태계의 문제아로 지목받고 있다.

http://cafe.daum.net/templeeco
글·사진=김재일 | 사찰생태연구소장
2006-08-17 오후 1:4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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