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10.22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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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칙 지킨 불사(佛事), 사찰 '역사' 바로 세운다
[집중기획]마구잡이 불사 막을 수 없나
사찰 불사(佛事)에 대한 일반의 시선은 그리 곱지 않다. 대형불사 또는 호화불사, 그리고 자연의 조화를 깨뜨리는 불사와 전통에 어긋나는 불사 등등 불사와 관련한 잡음은 항상 끊이지 않는다. 최근 몇 년 동안에는 일부에서 벌인 거대불사로 따가운 눈총을 받기도 했다. 특히 문제가 되는 곳은 전통사찰들이다. 전통을 지켜야 할 불교가 오히려 전통을 훼손하고 있는 것이다. 전통사찰의 불사와 관련한 문제점과 그 원인을 분석하고 이를 해소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한다.


▷공간 활용방안 분석없이 크게만…

사찰 건물의 크기가 스님의 원력과 비례한다거나, 또는 건물만 지으면 그만이라는 식의 잘못된 인식이 ‘대형불사’를 부추겨 왔다. 이는 그동안 스님들과 신도들이 사찰에서 필요로 하는 적정 공간과 활용 방안에 대한 철저한 분석 없이 한정된 사찰공간에 무조건 큰 법당과 선방 등을 짓고 보자는 잘못된 불사관이 빚어낸 결과다.

그러다보니 한정된 사찰 공간과 근대식 대형 법당의 불균형적 가람배치, 가람 내 건축물을 짓기 위한 형식적 문화재 시ㆍ발굴 조사, 환경훼손 등의 문제가 불거져 나온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 모른다.

우선 전각이 유형문화재로 등록돼 있음에도 불구하고 신도 수가 늘어남에 따라 예전에 사용하던 주불전을 옆으로 옮기거나 철거해서 주불전을 아예 새로 짓는 경우처럼 마구잡이식 불사를 지적할 수 있다.

경남 Y사의 경우 17세기에 만들어진 법당(약 20평 규모)이 작아 바로 옆쪽에 대웅전(약 50평)을 새로 지은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또 4년 전 공주의 K사가 강당 지붕해체보수작업을 하다 대웅전 앞마당을 넓게 사용하기 위해 문화재위원회에 현상변경 절차도 없이 번개 불에 콩 구워먹기 식으로 아예 건물을 2m가량 옮긴 것도 좋은 예다.

이뿐만이 아니다. 서울의 한 사찰은 범종루 해체 복원 작업 시 아예 대형 범종루를 만들려다 서울시로부터 철거 명령을 받은 사례도 있다. 강원도의 한 사찰도 몇 년 전 대웅전 옆에 1층짜리 전각 공사를 허가받았지만 2층으로 지은 후에 현상변경 신청을 다시 해 물의를 빚었다.

대웅전 앞에 정원수를 가꾸는 등의 왜색적(倭色的)인 불사도 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원래 우리의 전통적인 가람은 대웅전 앞마당을 신도 법회 공간으로 활용하는 등 다목적 용도로 사용해 식재를 삼갔으나 근래들어 정원수를 심고 다듬는 사찰이 늘고 있다.
불사를 하기 전 의무사항인 문화재 시ㆍ발굴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것도 큰 문제다. 시·발굴을 하지 않고 건물을 짓게 되면 그 과정에서 지하에 있는 유구나 유물이 훼손되기 때문이다.

시·발굴을 한다해도 문제가 해소되는 것은 아니다. 현장에서 작업이 무성의하게 이루어지는 예가 허다하고 시굴성과를 축소해서 발굴하는 경우도 있다는 얘기까지도 나도는 실정이다.

이처럼 일부 사찰에서 무분별하게 불사가 이루질수 있는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우선 당국의 솜방망이 처벌을 들 수 있다.
문화재보호법이 정한 절차를 따르지 않는 불사의 경우 벌금형, 철거명령, 징역형이 가능하지만 실제로는 징역형을 받는 경우가 거의 없다.

지자체 문화재위원회가 제기능을 하지 못하는 것도 문제를 가중하는 요인이다. 문화재위원회가 자주 열리기 어렵다보니 안건이 상정되기까지 기다리는데 불편함이 많다. 현상변경을 하려면 문화재위원회의 승인을 거치는 것은 의무사항이다.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다. 문화재위원회가 제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려면 최소한의 전문 인력이 확보돼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게 현실이다. 현재 각 지자체 학예실에 학예사를 두고 운영하는 곳은 10% 내외다.

인각사는 장기적인 복원불사 계획하에 수년째 시발굴을 진행하고 있다. 사진제공=조계종문화유산발굴단


이에 반해 군위 인각사(주지 상인)의 복원 과정은 모범적인 사례로 꼽을 수 있다. 인각사는 일연 스님 당시의 가람을 복원하기 위해 지표조사(2000년)와 시굴(2002년)을 거쳐 두 차례 걸쳐 발굴을 진행했다. 이를 통해 법당지를 밝혔으며, 가람배치의 기본 축을 확인하는 등 성과를 올렸다. 이에 근거해 인각사는 2008년부터 극락전을 중창할 예정이다.

인각사지 발굴을 책임지고 있는 조계종문화유산발굴단 임석규 책임연구원은 “인각사 복원은 장기적인 복원계획 하에 지금까지 모범적인 수순을 밟아오고 있다”며 “정상적인 시·발굴을 통한 복원은 결국 사찰의 역사를 복원하는 과정이다”고 강조했다.


▷‘불사’ 관리할 시스템 없나?

전통사찰 불사와 관련해 정부는 전통사찰보존법을 통해 일정한 통제를 하고 있다. 그러나 이 법은 재산권이나 사찰 보존과 관련한 행정절차에 비중을 두고 있어 불사를 효율적으로 통제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불사와 관련해 조계종도 몇 가지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 놓고 있다. 조계종은 무분별한 불사와 그에 따른 부정적 인식을 줄이기 위해 총무원장 직속기구로 불사심의위원회를 두고 있다.

우리나라 전통사찰의 대부분을 소유하고 있는 조계종의 불사심의위원회는 기존의 환경위원회와 성보관리위원회를 통합한 기구로, 사찰의 불사를 관리ㆍ감독하도록 돼 있다. 하지만 인력부족으로 전국 단위로 이루어지는 불사를 모두 심의하는 것은 불가능한 실정이다. 또 각 사찰이 자체적으로 불사금을 만들어서 불사를 하는 실정이기 때문에 강제력을 행사하는 데도 한계가 있다.

조계종 종헌종법의 ‘사찰 부동산 관리령’은 사찰 부동산의 임대, 처분, 신축 등을 할 때 종단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는 조항이 있지만 실제로는 사찰 재산의 보존에 주안점을 두고 있어서 불사의 관리·감독과는 다소 거리가 있다.
사찰운영위원회법에서는 불사에 대해 협의하도록 하고 있지만 ‘협의’의 개념도 모호할 뿐만 아니라 불사문제와 관련한 직접적인 언급은 없다.


▷‘불사심의위’ 제 기능 하도록

조계종 불사심의위원회의 기능을 실질적인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것이 일차적인 관건이다. 총무원과 교구본사 간 불사심의에 대한 정보네트워크 형성은 반드시 필요하다. 현재 총무원에서 전국 모든 사찰의 불사에 대한 심의를 하다 보니 심도 있는 관리감독 기능을 상실한 상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때문에 말사에서 이루어지는 불사는 교구본사의 불사심의위원회가 맡고 이를 종단 불사심의위원회와 긴밀하게 협의하는 체계도 대안이 될 수 있다.

조계종 총무원 김영일 총무차장은 “불사가 생활공간으로서의 측면과 문화재로서의 측면이 조화를 이룰 수 있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이에 대한 논의가 부족한 것이 사실”이라며 “이 문제에 대한 종합적인 접근이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차원에서도 문화재위원회가 제 기능을 할 수 있도록 전문 학예사 확충 등의 법제도를 보완해 전통과 환경을 고려한 불사가 이뤄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보다 근본적으로는 사찰 관계자의 인식 전환이 필수적이다. 불사는 전통과 문화재를 지키면서 불교의 역할과 사회적 공익을 고려해야 한다.

총무원의 한 관계자도 “지금은 많이 달라졌지만 몇년 전만 해도 스님들이 불사 심의를 ‘불사를 방해하는 짓’으로 인식, 불사심의를 위해 사찰을 방문하면 쫓아내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며 인식의 문제를 지적했다.

한 문화재단체 관계자도 “문화재보호법을 잘 아는 주지스님들조차도 현상변경 절차를 어기는 경우가 허다하다”며 “사회법에 의한 처벌 이전에 종단이 의무화된 교육을 통해 주지스님들에게 문화재의 소중함을 각인시키는 것이 시급하다”고 꼬집었다.


▷불사, 진행절차는?

문화재가 있는 사찰의 경우에는 문화재보호법, 성보보존법 등에 의거해 규제가 가능하다. 정상적인 경우 불사는 문화재청(또는 시·도)과 종단의 이중적인 규제 하에 진행된다.

사찰은 사업계획을 세워 우선 문화재위원회의 현상변경 허가를 받아야 건축허가를 얻을 수 있다. 조계종 소속 사찰은 건축허가를 근거로 총무원 신축 승인 요청서를 제출한다.

문화부의 타당성 검토를 거쳐 종무회의가 신축 승인을 하면 이때서야 비로소 신축 불사가 가능해진다. 하지만 적지 않은 사찰이 문화재위원회의 허가를 득하면 총무원의 승인절차를 생략하는 것이 현실이다.

승인절차를 거쳐 건물이 지어졌다 해도 문제는 남아있다. 새 건물이 애초 사업계획대로 지어졌는지 확인하기가 만만치 않다는 점이다. 문화재청 한 관계자는 “현상변경 허가를 위해서는 현장에 나가보지만, 공사 완료 후에 현장을 방문해 점검하기는 어려운 것이 현실”이라고 토로했다.

한명우·박익순·노병철 기자 |
2006-08-01 오전 9: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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