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보호될 것으로 짐작되는 학교 울타리 안에 있는 보물지정 문화재에 대한 관리가 도리어 ‘0점’ 수준으로 드러났다.
보물 제235호로 지정돼 있는 종로구 세검정초등학교 내 장의사지 당간지주. 빛이 바래고 낙서투성이인 안내판만이 이곳이 통일신라시대에 사찰 터였다는 것을 묵묵히 증언해주고 있다. 운동장 한편 수풀에 파묻혀 있어 눈여겨보지 않으면 발견하기도 힘들 정도다.
군산시 발산초등학교 내 발산리 5층 석탑(보물 제276호)도 관리가 소홀하긴 마찬가지다. 안내판이 부식돼 안내문을 알아보기 힘들며 탑 주변에는 쓰레기와 오물로 악취가 진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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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검정초등학교 이신자 교장은 “귀중한 보물급 문화재가 학교 운동장에서 사장되고 있는 것이 안타까워 서울시에 관리를 잘해 줄 것과 많은 사람들이 볼 수 있는 박물관 등으로의 이전을 몇 번이나 건의를 해 봤지만 소용없었다”며 “보물급 문화재를 보기 위해 찾아온 관광객들이 관리소홀로 훼손된 당간지주의 모습을 봤을 때 어떤 생각을 하겠느냐”며 행정당국의 무관심을 지적했다.
군산문화원 이복웅 원장도 “발산리 5층 석탑은 고려시대의 탑사 양식을 잘 나타낸 석탑으로 중요한 문화재임에도 제대로 된 안내판도 없이 방치되고 있는 것은 행정당국의 직무유기라고 밖에 볼 수 없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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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대해 문화재청 관계자는 “훼손된 문화재 관리와 안내판 등의 개·보수 작업을 연중 실시하고는 있지만 지자체별로 관리해야 할 문화재가 워낙 많다 보니 개·보수 대상에서 누락된 곳이 있을 수 있으며 넉넉지 않은 문화재 관리 예산도 관리상 한계”라고 말했다.
# 관리소홀 성보 20건 넘어
이밖에도 당국의 관리 소홀로 방치되고 있는 불교 문화재는 본지에서 조사한 것만도 약 20여건. 강화 하점면 5층 석탑(보물 제10호)은 지반유실로 토사가 밀려들어온 데다 탑 자체가 전체적으로 기울어 있다. 또 통도사 대웅전 및 금강계단(국보 290호)의 경우도 대웅전 배면 벽체에 낙서 및 일부 탈락 등 인위적인 훼손이 일어났고 벽체의 균열이 심하다.
# 전문화 된 관리 인력이 열쇠
이처럼 문화재 훼손이 심각하게 벌어지고 있는 원인은 전문인력이 확보되지 못해서다. 현재 문화재청과 지자체를 비롯해 유형문화재를 관리 및 보수하는 전문 인력은 50여명뿐이다. 인력확보와 더불어 △향토사학자를 비롯한 관계전문가와의 유기적 네트워크 형성 △문화재 관리 업무매뉴얼 준수 △행정 당국의 예산확충도 선행돼야 할 과제다.
결국 일선 시·군의 문화관광계에 문화재 담당요원이 배치된 경우는 손에 꼽을 정도로 찾아보기 힘들다. 특히 읍·면·동 하부조직에서는 총무계에서 문화재 관리 업무를 맡고 있어 문화재 관리가 그야말로 형식에 그치고 있다. 따라서 지역 문화원을 비롯해 향토사학자들에게 문화재 관리·감독권을 부여해 문화재 담당 기관과 유기적인 네트워크를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
현재 문화재 복원과 정비는 문화재청 보수과에서 설계지침을 작성해 일괄 관리토록 돼 있다. 그러나 통상적으로 전문위원에 의해 간단한 조사가 진행된 뒤 외형과 규모 등이 조절되고 설계변경요인 발생시 문화재 보수업체에서 정비하는 것이 관행이다.
때문에 실제로는 정비, 복원을 위한 정밀한 조사가 이뤄지지 못하고 있으며 비지정문화재의 경우 형식적인 조사에 그치는 경우가 다반사다.
‘문화재 보존 관리 업무 매뉴얼’이 무용지물의 ‘누명’을 벗어야 제대로 된 관리도 이뤄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