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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들 간식으로 가장 잘 먹는게 뭐지요” “나-면”
“나-면이 아니라 라면이에요. 자 따라해 보세요. 라면” “라아면”
“자-아 오늘배운거 꼭 다시써오세요. 새끼손가락 걸고 약속 합시다….”
“섹씨 손가락을 걸고 약속….” “하-하-하-”
무엇이 그리 즐거운지 연신 싱글벙글이다. 지난 7월 16일 오전 10시. 화성 용주사 효행교육관안에서 들려오는 소리쪽으로 귀를 쫑긋 세우니 한글을 배우고 있는 듯 했다. 분명 아이들의 목소리는 아닌데…. 알고보니 우리나라에 와서 살고 있는 외국인 근로자와 한국으로 시집온 주부들을 대상으로 한 한글교육 시간이었다. 외국인들에게 어렵게만 여겨지는 한글을 가나다라 기초부터 가르치고 있는 것이다.
매주 일요일마다 운영하는 용주사 외국인 무료 한글교실의 수업 풍경이다. 이 프로그램에 출석한 학생은 어림잡아 10여명. 그러나 강사 선생님들과 함께온 한국인 남편들이 있어 강의실은 북적거렸다. 그중에는 아이를 안은 채 분유를 먹이면서 한글을 배우는 여성이 있는가 하면 한국에 온지 한달도 안돼 의사소통이 전혀 불가능한 근로자도 있었다. 하지만 한글을 배우겠다는 의지로 눈망울은 모두 초롱초롱 빛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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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을 배우러 온 주부와 근로자들은 베트남 출신이 가장 많고, 스리랑카, 태국, 중국 순이었다. 피부색은 달랐지만 여러 경로를 통해 소개받아 한국으로 와서 화성 지역에 가정을 이루거나 지역 공장에서 일하고 있는 20~30대의 젊은이가 대부분이라는 것이 공통점이다. 이들은 대개 우리나라에 온지 2~4년 정도가 됐다. 그래서 한국말은 귀에 익숙한데 그것을 읽고 쓰기는 여전히 어렵다고 했다.
현재 포장공장에서 일하는 스리랑카 출신의 부셰만(30)씨는 “한글은 발음이 어렵고 비슷한 낱말도 많아 스리랑카어보다 정말 배우기가 어렵다”면서도 “그래도 하나를 배우면 금방 공장에서 써먹을 수 있어 너무 재밌고 즐겁다”고 함박웃음을 띠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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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을 배우면서 낯설기만 하던 대한민국이 이젠 조국이 되었다는 베트남 출신의 레티캄 로안(29)씨는 “지난주에 개강해 비록 한번 밖에 수업을 안 받았지만 한두마디씩 배운 단어나 말이 남편과 얘기할 때 큰 도움이 된다”며 “한글교실이 열리는 매주 일요일이 무척 기다려 진다”고 즐거워 했다. 곁에서 공부하는 것을 지켜보고 있던 남편 김영관씨(38)도 “집에서 한글을 가끔씩 가르치지만 솔직히 체계적이지 못해 실력이 금방 늘지 않으며, 인근 대학교에 개설된 한글학교는 학기당 1백만원이 넘어 부담이 됐는데 이런 무료 교육이 생겨 용주사측에 감사한다”고 흐뭇해 했다.
지난 7월 9일 문을 연 용주사 외국인 한글교실은 화성 지역에 유독 많은 외국인 근로자와 이주부녀자들의 의사소통 능력 및 한국 문화 이해를 증진시키기 위해 화성시청의 지원으로 만들어 진 것. 이번 한글교실은 대학생, 시청 공무원, 학원강사, 현직교사 등 다양한 직업의 11명 강사들이 자원봉사 형식으로 매주 일요일마다 두 시간에 걸쳐 12월 31일까지 주부반, 하급반, 상급반 등 세 개 반으로 나눠 지도한다. 교재도 외국생활 경험이 풍부하며 현재 서울대에서 한국어지도자 과정을 밟고 있는 정경숙씨와 강사들이 3개월에 걸쳐 철저히 연구해 수준별로 자체 제작했다. 현재는 개강한지 1주일 밖에 안돼 수강생들의 실력을 측정하느라 공통된 교재로 한글 기초교육을 하고 있는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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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교실 강사로 참여하고 있는 동탄중학교 강명숙(44) 교사는 “어릴적 아버지가 사우디아라비아 근로자로 일했고, 현재 아들이 인도에 가서 공부하고 있어 외국인들이 현지정착을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이 언어소통 문제라는 것을 누구보다도 뼈저리게 경험했다”며 “문맹이나 다름없는 이들의 한국생활은 정착을 힘들게 하고 특히 이주여성들에게는 자녀교육의 문제로 이어져 심각한 사회문제로 발전되고 있다”고 안타까워했다.
이번 한글교실에는 7월 16일까지 총 23명이 접수한 상태이며 교육이 진행되는 중간에도 용주사측은 계속 접수를 받을 계획이다. (031)234-0040<화성=김주일 기자, 사진=박재완 기자>
외국인 한글교실 기획 포교국장 덕본 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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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한글교실은 화성시청의 지원아래 화성지역을 4개군으로 나눠 두개지역은 교회가, 한개 지역은 동사무소에서 그리고 나머지 병점 지역은 용주사에서 열고 있습니다. 특히 교회는 3년전부터 하고 있었지만 용주사는 사찰로선 화성지역에서 처음이라 책임감이 무겁게 느껴집니다.”
용주사 외국인 한글교실을 총 기획한 포교국장 덕본 스님은 늦게 출발한 만큼 내실있는 프로그램으로 승부하겠다고 타지역 한글교실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실제로 덕본 스님은 8월부터는 1시간 30분정도만 한글교육을 하고 나머지 30분 정도는 다도 등 전통문화교육을 할 생각이다. 또한 스님은 문화프로그램도 처음에는 다도와 같은 실내교육을 위주로 운영하다가 차츰 외국인들이 불교에 대한 거부감이 없어진다고 판단되면 장소를 외부로 옮겨 지역내 고찰 답사 및 인근 성보박물관 탐방과 같이 장소를 외부로 넓혀 자연스럽게 불교문화 프로그램을 체험 시킬 복안도 강구중이다.
덕본 스님은 “화성시에서는 3개월정도의 한글교실 비용만을 지원하지만 용주사는 이와 상관없이 올해연말까지 1차적으로 프로그램을 계속 운영할 계획”이라며 “올해 성과를 봐서 반응이 좋다고 판단되면 내년에도 계속해서 자체적으로 한글교실을 열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