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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불교계가 세계화로 나아가고 있다. 최근들어 세계여성불자대회, 세계종교지도자대회, 불교학결집대회, 금강대 국제불교학술대회, 동국대 국제생태학술대회, 세계시인대회, 참여불교세계대회, WFBY한국포럼 등 굵직굵직한 국제행사를 연이어 초치하고 있다. 분야도 학술대회 위주였던 예전에 비해 명상·문화·NGO 등 교류의 장도 다양해지고 있다.
그러나 3개 이상 국가의 사람들이 모인다고 무조건 ‘국제대회’라고 불릴 수는 없다. 국제대회라는 명칭에 걸맞는 규모와 내실, 평가가 따라야 하기 때문이다. 한국불교계가 주최한 국제행사들은 늘어났지만 마친 후 뒷말도 많다. 기획력 부재나 준비미흡으로 ‘국제’라는 이름을 붙이기도 부끄러운 경우가 종종 있기 때문이다.
불교계 국제행사의 문제점은 무엇이고 그 보완책은 무엇인지 짚어봤다.
▷ 어떤 대회가 있었나
올 상반기에는 ‘세계종교지도자대회’ ‘한국불교학결집대회’ ‘명상치유 공연예술 및 심포지엄’ ‘국제생태학술대회’ 등이 열렸다.
만해사상실천선양회가 6월 개최한 ‘세계종교지도자대회’에는 18개국 8대 종교단체 35명의 지도자가 참석했고, 개ㆍ폐회식에는 3000여 명의 종교인들이 참석했다. 4월 열린 ‘제3회 한국불교학결집대회’에는 7개국 130여 명의 학자들이 참석해 논문 130여 편을 발표했다.
동북아음악연구소가 세 차례에 걸쳐 개최한 한ㆍ중ㆍ일 불교음악 학술대회, 천태국제불교학술대회도 꾸준히 명맥을 이어가며 국제학술대회로 자리 잡은 행사이다. 동국대 한국문학연구소(소장 김태준)의 한국문학 국제학술회의 등도 개최됐다.
7월 20~21일에는 한국학중앙연구원에서 한국 일본 중국 러시아 미국 인도 등 세계적인 학자들이 참가하는 일연삼국유사국제학술대회가 열릴 예정이다.
지난해 전 세계 시인들이 한 자리에 모여 그들의 시세계를 교류하며 극찬을 받았던 세계시인대회는 한 번으로 그쳐 아쉬움을 자아냈다. ‘부처님의 딸들’이라는 뜻의 사캬디타(Sakyadhita, 세계여성불자대회)는 2004년 한국에서 개최돼 호응을 얻으며 성공적인 개최로 평가받기도 했다.
▷ 무엇이 문제인가
● 기획 전문성 부재
국제대회 개최의 가장 큰 문제점으로 지적되는 것은 바로 기획ㆍ준비단계의 전문성 부족이다. 대부분의 대회가 충분한 시간을 확보하지 못하고 촉박하게 추진되다보니 전문적인 기획이 이뤄지지 않고, 준비 역시 주먹구구식으로 되기 일쑤다.
과거 한 국제학술대회를 준비했던 김모(동국대 불교대학원)씨는 “당시 보름 만에 국제대회를 준비를 하느라 정말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고 토로한다. “촉박한 마감 시간에 쫓긴 국내 교수들은 예전에 쓴 논문을 짜깁기하거나 아예 초록만 작성해 보내기도 했습니다. 논문집은 아예 개회식이 끝난 후에 나왔습니다. 외국 참가자들은 행사 당일까지도 참석 인원이 확정되지 않았고, 간신히 행사장에 도착한 참가자는 10분간 발표하고 질문도 받지 않고 행사장을 떠났습니다. 도대체 왜 이런 행사를 해야 하는지 회의감이 들 정도였습니다.” 김씨는 한숨을 쉬며 이같이 덧붙였다.
5월 2~4일 에이팬 한국본부와 조계종 총무원이 주최한 ‘명상치유 공연예술 및 심포지엄’ 역시 팸플릿이 나온 이후에도 공연자 명단이 확정되지 않아 촉박한 일정에 쫓겼음을 보여주었다.
● 행사 목적 ‘아리송’
국제대회를 개최하는 명확한 목적의식이 없다는 것도 문제다. 세 나라 이상만 모이면 행사 이름에 ‘국제’라는 타이틀을 달 수 있다 보니, 친분 있는 외국 인사 두세 명만 초청해 놓고 ‘국제대회’라 홍보하는 경우도 있다. 이렇게 될때 국제대회 목적이 연구 성과 발표와 상호간 교류라기보다 ‘친목의 장’에 머물게 된다. 특히 학술대회의 경우 세계의 유명 학자들이 ‘제 돈 내고 찾아오는’ 곳은 다섯 손가락 안에 꼽을 정도라는 말도 나오고 있다.
● 언어 불통
전문 인력 부족도 심각한 문제. 적게는 수십 명에서 많게는 100여 명이 넘는 자원봉사자를 모집하고, 이들을 적재적소에 배치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특히 불교 용어를 제대로 번역·통역할 수 있는 인력을 찾기란 그야말로 ‘하늘의 별 따기’다. 논문 번역과 통역이 영어로라도 이뤄지면 그나마 다행이다. 논문발표가 이런 상황이니 심도 깊은 토론이 이뤄지지 않는 것은 당연지사. 국제대회의 기본이라 할 수 있는 참석자들간의 원활한 의사소통마저 뒷전이 된다.
● 기획ㆍ진행 노하우 안 쌓인다
국제대회 기획 및 진행 노하우가 축적ㆍ공유되지 않는 점도 문제점. 그간 불교계에서 열린 국제대회가 적지 않지만, 기획 단계에서부터 평가에 이르기까지의 과정과 평가를 담은 보고서가 발간된 적은 드물다. 국제대회가 열릴 때마다 같은 실수가 되풀이 되는 이유다. 2004년 열린 세계여성불자대회처럼 아예 대회 진행을 일반 행사 업체에 맡겨버리기는 경우도 있다. 대회 준비 단계에 참여했던 한 비구니스님은 “불교계 인력들이 큰 대회를 개최해보고, 이것이 불교계의 노하우로 축적되어야 하는데 외부 기관에 수탁하다보면 1회성 행사에 그칠 뿐이다”고 지적했다.
사정이 이러다보니 행사의 실질적인 내용이 부족한 것을 ‘규모’로 메우려는 마인드도 팽배해 있다. 개회식은 주최측이 동원한 인원으로 가득 차지만, 정작 학술대회나 세미나, 토론회 등 본론에 들어가서는 썰렁하다. ‘규모만 국제적’이란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
▷ 내실있는 대회가 되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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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최목적 뚜렷해야
국제행사의 성패를 결정짓는 가장 중요한 요소는 ‘명확한 목적의식’이다. 왜 대회를 개최하며, 왜 ‘국제’ 대회여야 하는지에 대한 충분한 고민이 선행될 때, 비로소 대회의 존재 이유가 명확해지고 초청대상들도 걸맞게 ‘모실 수’ 있다.
● 불교용어 번역 통일안 마련을
불교 전문 통역ㆍ번역가가 부족할 뿐만 아니라 불교용어의 번역 통일안도 마련되어 있지 않다보니 번역자가 스스로 새로운 용어를 만들어 쓰기도 한다. 하루빨리 불교계가 나서서 불교용어에 대한 외국어 번역 통일안을 만들어야 하는 이유다. 이는 ‘종단 차원의 번역 전문 기관 설립’ 등 그동안 끊임없이 문제제기가 돼 왔던 부분이다. 번역 전문 기관을 설립하고 전문 동시통역 인력을 배출해 내야 하는 일이 시급하다.
동국대 등 불교종립대학들도 행사기획자 양성에 나서야 한다. 불교적인 마인드를 지닌 행사기획자가 없는 만큼 불교적인 소양을 갖춘 전문 행사기획자들을 키우는 것도 절실한 과제로 떠오른다.
● 노하우 공유 창구 만들자
지속적인 국제행사를 진행하는 곳이라면 해외 연수 등을 통해, 또는 불교계 밖의 우수 사례 등을 끊임없이 벤치마킹해야 한다. 5월 열린 정신치료학회 학술연찬회에서는 ‘세미나 발표자 평점표와 개선점 기술란 서식표’를 참가자 전원에게 배포해 발표자들의 논문에 대한 평점과 개선해야 할 문제점들을 참가자들이 적어 낼 수 있도록 해 신선한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종단을 중심으로 이러한 노하우를 공유할 수 있는 창구를 만들어야 한다. 행사 기획 단계에서부터 하나하나 잘못될 수 있는 점을 보완해 전철을 밟지 않도록 제도적인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다.
● 공공지원금 적극 활용을
국제행사를 치르는 데 있어 예산은 빼놓을 수 없는 문제다. 가뜩이나 부족한 재정 대부분이 외국학자들의 항공료와 체재비용으로 쓰이다 보니 정작 대회 진행 비용은 줄어들 수 밖에 없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한국문화예술위원회나 로또기금 등 다양한 공공지원책들을 적극 활용해야 한다. 하지만 공공기금을 활용하기 위해서는 인정받을 만한 실적을 쌓아야 하는 만큼, 결국 최선의 노력을 다한 최고의 행사를 치러야만 이후 지원의 길도 더 폭넓게 열린다고 할 수 있다.
모든 비용을 참가자 자신이 부담해야 했던 2006 불교학결집대회에 많은 외국학자가 몰렸던 것은 지난 3년간 대회를 국제행사로 키워온 주최측의 노력 덕분이다.
6월 말레이시아에서 열린 세계여성불자대회에 자비를 내고 참가했던 국내 참가자가 50여 명에 이르는 것 역시 대회 자체가 그들에게 꼭 필요한 행사였기 때문이다. 이처럼 필요한 행사라면 자신이 비용을 부담하고서라도 참석할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하는 것이다.
김종명 교수(한국학중앙연구원)는 “북미쪽에서 한국 학회에 초청받아 오는 학자들 대다수가 ‘투어성’이라고 까지 생각할 정도로 우리나라 국제행사 수준을 낮게 본다”며 “행사를 주최하는 단체가 명예욕과 외국인 참가자 머릿수에만 급급하지 말고 행사의 질을 높여 자비로라도 참가하게끔 실력으로 승부해야 한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