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허(呑虛·1913~1983) 스님은 선(禪)의 입장에서 불교와 유교, 도교에 두루 능통한 이 시대를 대표하는 선사다. 또 스님은 <육조단경> <금강경> <기신론> ''서(序)'' 등 불교학 연구와 발전에 일생을 바친 우리 곁에 온 부처였다. 하지만 스님이 출가를 결심한 직접적인 동기부여를 제공한 책이 <장자>였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드물다. 때문에 많은 불자들이 출가 전 스님의 생애에 대해 많은 궁금증을 가지고 있는 것도 사실. 출가 전 스님의 삶과 사상을 엿볼 수 있는 사진 2장을 본지에서 독점 공개한다.
#. 탄허 스님이 출가하기 2년 전인 20살 때의 모습. 충남 보령군 죽포면 송악리 서당에서 포즈를 취했다. 당시 스님은 이극종 선생에게 한학을 수학했다고 전해진다.
1913년 전북 김제 만경에서 태어난 스님은 토정 이지함 선생의 16대 종손 이복근씨와 17살 때 결혼해 처가인 충남 보령으로 거처를 옮긴다. 부인 이복근씨도 한학에 있어서 만큼은 스님과 어깨를 나란히 할 정도의 실력을 갖췄다고 전해진다. 이곳에서 <사서>와 <삼경>을 마스터한 스님은 <장자>를 접하면서 출가를 결심하게 된다. <장자>의 심오한 사상과 뜻이 무척이나 궁금했던 스님은 한암 스님과 문답형식의 서신을 통해 이미 사제지간의 교(交)를 통했다고 전한다.
#. 탄허 스님의 절친한 친구였던 월강 배인기 선생과 서울의 한 사진관에서 기념 촬영한 모습. ''이인동심(二人同心) 기리단금(其利斷金) 동심지언(同心之言) 기취여란(其臭如蘭)'', 즉 ''두 사람의 마음이 맞으면 쇠를 자를 수 있고 두 사람이 한마음이면 그 향기가 난초와 같다''는 사진 속 글귀가 눈에 띈다. 월강 선생은 충남 보령의 서당에서 스님과 함께 한학을 수학한 사이다. 사진 당시 스님의 세수는 32살이었다.